오늘(22일)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입니다.

입동(立冬)과 대설(大雪) 사이에 위치하고, 이날부터 15일간 절기를 이릅니다.

첫눈은 고사하고 포근합니다. 지난해에도 포근했고 2년 전엔 바가 약간 내렸네요.

중국에서는 24절기를 초후(初候), 중후(中候), 말후(末候)로 5일씩 나누는데 이를 3후(三候)라고 합니다.

소설의 초후엔 비가 그치니 무지개가 걷히고, 중후에는 천기(天氣)는 오르고 지기(地氣)는 내리며, 말후에는 폐색 되어 겨울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소설 절기는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추워집니다. 통상 하루 평균 기온이 5도 이하에 머무릅니다.

이 절기에 김장을 서두르는 이유입니다. 김장 땐 이웃이나 친척이 둘러앉아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배추 속에 버무립니다. 힘든 작업이지만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추운 소설 절기에 보는 포근한 광경이지요.

이어 김장 과정에서 나온 무청 시래기와 배추를 엮어 처마 밑에 달고, 무도 썰어 말려 무말랭이를 만듭니다. 예전 겨울철 농촌 집의 풍경입니다. 시래기는 요즘 최고의 식재료로 인기를 구가하지요.

경남 진주시 경전선 폐선 자전거 전용도로변 텃밭에 심어 놓은 김장용 배추를 짚으로 감싼 모습. 짚으로 둘레를 감싸야 배추 속이 꽉 찬다. 옆엔 배추를 수확한 뒤 다듬고 버린 겉대인 우거지. 정기홍 기자

요즘엔 보기 힘들지만 목화를 따서 솜을 만드는 때이기도 합니다.

속담으로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사라진 말이지만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 농사가 잘 된다는 뜻입니다. 해충이 얼어죽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소설 무렵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하며 뱃사람들은 이 무렵에는 배를 잘 띄우려 하지 않습니다.

손돌과 손돌바람에 관련된 전설이 있네요.

시기는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몽진(蒙塵·임금의 피난)을 가던 때라고도 하고, 조선시대에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仁祖)가 한강을 건너던 때라고 엇갈립니다.

몽진이란 먼지 진(塵), 어두울 몽(蒙)으로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입니다. 임금이 난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떠남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파천(播遷)이라고 하는데 임금에게는 피난, 도망 등의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어쨌든 뱃사공 중에 손돌(孫乭)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손돌은 왕을 서둘러 피신시키려고 물살이 급한 뱃길로 노를 저었습니다. 겁에 질린 왕이 신하들에게 물살이 세지 않은 안전한 곳으로 뱃길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손돌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왕은 결국 선상에서 손돌을 참수(斬首·목을 베는 형벌)했습니다.

손돌은 임금을 빨리 피신시키려고 했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했지만 소용이 없음을 알고 참수되기 전에 바가지를 하나 내놓으며 "바가지를 물에 띄워 바가지가 가는 길로 뱃길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왕이 탄 물살은 점점 급하게 흘렀습니다. 임금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손돌이 가르쳐 준대로 바가지를 물에 띄웠습니다. 바가지는 세찬 물살을 따라 흘러갔고, 배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무사히 뭍에 내린 왕은 그때야 손돌의 재주와 충심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손돌과 관련해 이어지는 전설이 더 있습니다.

왕이 손돌을 죽인 후 바람이 더 세차게 불고 물살이 급해졌고, 어쩔 수 없이 싣고 가던 말의 목을 잘라 제사를 모셨더니 파도가 잠잠해졌다고 합니다.

왕은 뭍에 도착했고 손돌을 죽인 것을 후회했지만 손돌의 목숨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지요.

왕은 이후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덕포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손돌의 장지(葬地)를 정해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합니다.

이때가 음력 10월 20일이었는데 소설 절기엔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집니다.

소설 무렵 차갑게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