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성향으로 알려진 배우 조진웅(본명 조원준) 씨가 고교 시절의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의혹으로 은퇴를 선언하자 민주당 등 좌파 인사들이 조 씨를 두둔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정치권으로 옮겨붙고 있다. 일종의 '구명 메시지'다.
조 씨는 친여 성향의 좌파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다.
조 씨는 10대 때 강도·강간 혐의로 1994년 형사 재판을 받은 소년범 전력이 알려지자 지난 6일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좌파 진영은 조 씨가 은퇴를 선언하자마자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국무총리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박찬운 자문위원장은 8일 페이스북에서 “조 씨는 ‘갱생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인물로, 비행 청소년들에겐 희망의 상징”이라며 “(비판은) 정의가 아닌 집단적 린치일 뿐”이라고 했다..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진웅 배우 하면 떠오르는 홍범도 장군의 귀환 그리고 몇몇 영화”라며 “대중에게 이미지화된 그의 현재는 잊힌 기억과는 추호도 함께할 수 없는 정도인가”라고 했다.
같은 당 김원이 의원도 “청소년 시절의 잘못을 어디까지, 어떻게, 언제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진다”며 조 씨의 복귀를 촉구하는 송경용 신부와 한인섭 교수의 글을 공유했다.
여권 지지자들은 “수구 친일 언론이 (조 씨를) 친 것”이라며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김어준 씨 유튜브에 고정 출연한 류근 시인은 “소년원 근처에 안 다녀본 청춘이 어디 있느냐”며 “조희대(대법원장)도 은퇴 안 하는데 과거 때문에 은퇴하나”라고 아귀가 맞지 않은 극단적 말도 뱉었다.
친여 성향 유튜브 ‘새날’ 구독자가 모인 한 단체 채팅방에선 “아무리 봐도 이재명 정부 지지했다는 이유로 타깃 삼아 연예인들 입틀막하는 거로 밖에는 안 보인다”, “우리가 살려내자” 등의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커뮤니티 ‘딴지일보 게시판’에도 8일 “지금 사태에선 (언론에 소년범 전과의) 유출 자체가 비판할 내용”이라며 “소년 범죄는 유출 자체가 범죄”라는 글이 올라왔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는 “(소년 보호사건 관련 내용 누설을 금지한) 소년법 위반”이라며 조 씨 의혹을 최초 보도한 기자를 고발했다.
배우 조진웅이 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 우 의원 페이스북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무슨 자격으로 가해자를 두둔하고 용서를 운운할 수 있느냐”며 “섣부른 옹호로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씨는 민주당과 오랜 기간 교류해온 대표적인 친여 성향 연예인으로 꼽힌다.
조 씨는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 부부와 함께 영화관에서 자신이 내레이션을 맡은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을 관람했다.
앞서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맹세문 낭독자로 나선 조 씨가 사전 환담장에서 이 대통령에게 이 같은 영화 관람 이벤트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8월 17일 서울 용산구 CGV에서 영화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을 관람하고 있다. 오른쪽은 배우 조진웅. 대통령실
그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촉구 집회에 응원 영상을 보내고, 지난 8월엔 친여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나와 이 영화를 홍보하기도 했다.
조 씨는 당시 뉴스공장에서 “계엄 선포 날 우원식 의장과 이재명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표)이 월담하는 사진을 봤고, 이후 어떻게든 뜻을 보태고 싶어 영상을 찍었는데, 이 일로 소속사와 약간 척질 뻔했다”고 했다.
2019년에는 영화 ‘블랙머니’ 개봉을 앞두고도 이 채널에 출연했다.
배우 조진웅 씨가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나와 12·3 계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조 씨 의혹을 보도한 인터넷 연예매체 디스패치는 “제보자들이 조 씨가 8·15 경축식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하는 장면을 보고 제보를 결심하게 됐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조 씨와 사적 교류를 몇 차례 가졌다는 민주당 중진 의원은 “조 씨가 영화 ‘대장 김창수’(2017년 개봉)를 찍고 김구 선생에 대해 많이 느껴, 스태프들과 함께 김구 묘소를 해마다 참배하면서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더라”고 했다.
조 씨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당시 ‘국민 대표’ 자격으로 특사단에 참가했다. 당시 홍범도장군기념회 이사장인 우원식 국회의장도 함께했다.
홍범도기념회 관계자는 “조 씨가 영화 ‘독립군’ 내레이션을 흔쾌히 허락해줘서 고마움이 있었다”며 “이사회 단체 톡방에서도 안타깝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올해 1월 15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영화 '독립군' 제작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종찬 광복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조진웅, 우 의장, 이 회장, 박홍근 민주당 의원. 국회의장실
민주당의 이런 행보에 국민의힘 등 우파 야당은 “미성년 강도·강간을 옹호하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여권을 향해 “다들 제정신인가? 좌파 범죄 카르텔 인증하느라 정신이 없다”, “당신들 가족이 피해자라도 청소년의 길잡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나”라고 직격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8일 “좌파 진영에서 조 씨를 옹호하는 이유가 뭐냐”며 “조 씨가 온갖 사회·정치적 문제에 입장을 말하는 걸 보며 피해자가 어떤 심정이었겠느냐”고 했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은 소년기 흉악 범죄 전력을 국가가 검증하고 국민에게 공개하는 ‘공직자 소년기 흉악범죄 조회·공개법’ 발의를 예고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페이스북에 “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언제부터 배우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냐며 진영 논리를 끌어와 조 씨를 ‘상대 진영의 음모’에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국가의 영수(대통령)가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상대적으로 찝찝함이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도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비판하는 쪽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폭행, 음주운전을 했다는데 교정된 게 맞느냐”, “중범죄 이력도 우리 편이면 감싸준다는 것인가”는 등 비난이 거셌다.
이에 반대 의견은 나왔으나 비난세에 기를 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