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거울에 붙어있던 비인가 게시물을 떼낸 여중생을 경찰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 송치해 온·오프라인이 시끄럽습니다. 시민들의 항의 목소리가 해당 경찰서 홈페이지에 쏟아집니다.
경기 용인동부경찰서 자유게시판에는 이 사건이 알려진 지난 3일부터 지금까지 사건과 관련한 항의성 글이 1천 건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글은 '여기가 엘리베이터 불법 부착물 떼어냈다고 여중생 검찰에 송치한 곳입니까', '(전단지 뗐는데) 검찰에 송치될까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자수합니다. 저 좀 잡아가세요', '전단지가 현관 문고리에 부착되어 있는데 문을 못 열어요', '경찰서에 전단지 붙여드릴게요. 없어지면 재물손괴죄로 신고합니다', '비인가 게시물을 붙인 사람을 처벌하는 게 적절한 처분 아닌가', '현관문에 불법 전단을 붙이고 가면 전화해서 허락 받고 떼라는 건가' 등 항의성 내용입니다.
시민들의 생활 속의 법 상식과 법 잣대 및 경찰의 판단이 옳았는지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현장입니다.
네티즌들은 집 현관문 등에 붙은 전단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에도 관심이 높았습니다.
'현관 문틈에 불법 전단지 붙여서 문을 못 열면 어디다 신고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검찰 송치 당하지 않고 불법 전단을 뗄 수 있니요' 등 생활 속의 상식과 동떨어진 경찰의 잣대에 대한 지적입니다.
한 네티즌은 '경찰과 여중생의 통화 내용을 들어 보니 신고한 사람이 강경하게 나와 어쩔 수 없다는 듯 범죄자로 낙인 찍고 적극행정을 하더라'며 '신고한 사람에게 비인가 전단을 붙였으니 대화로 잘 해결하라고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법을 기계적으로 단순 해석한 판단을 나무랐습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일 처리하면 안 잡혀갈 사람이 어디 있나'고 반문했습니다.
일부는 '경찰은 수사할 때 아파트 관리규약도 안 읽어보나. 어느 아파트가 관리사무소 도장도 없이 아무 데나 전단을 붙이느냐'고 지적하더군요.
대체로 '법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니 상식을 벗어난 판단을 하는 것'이라는 비난 글입니다.
사안의 자초지종을 알아봅니다.
용인동부경찰서는 지난달 8일 중학생 A 양을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A 양에게 적용된 혐의는 지난 5월 11일 자신이 사는 용인시 기흥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거울에 붙어있던 비인가 게시물을 제거한 것입니다. 당시 A 양은 거울을 보던 중 게시물이 시야를 가려 이를 뗐다고 합니다.
이 여중생 말고도 게시물을 뜯은 이 아파트 60대 주민 B 씨와 이 게시물 위에 다른 게시물을 붙인 관리사무소장 C 씨도 함께 송치됐다고 하네요.
이 아파트에선 지난해 7월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해 주민 2명이 재물손괴 혐의로 송치됐다고 합니다.
A 양 측은 경찰의 송치 판단에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사무소의 인가를 받지 않은 게시물이었습니다. 주민 자치 조직이 하자 보수에 대한 주민 의견을 모으기 위해 붙였다고 합니다.
이 주민 자치 조직은 그동안 아파트 하자 보수 범위를 놓고 관리사무소와 갈등을 빚어왔다고 합니다.
아무튼 경찰의 판단을 비난하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용인동부경찰서 상급 기관인 경기남부경찰청은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며 보완 수사를 결정했습니다.
용인동부경찰서 관계자도 "과거 송치 사례와 달리 A 양은 거울의 기능을 방해하고 있는 게시물을 뗀 것이기 때문에 달리 판단할 요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용인동부경찰서장도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면담을 요청하는 등 여론이 악화되자 4일 "우선 어제부터 시작된 언론보도 관련하여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린 점 서장으로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다"며 "해당 사건 게시물의 불법성 여부 등 여러 논란을 떠나서 결과적으로 좀 더 세심한 경찰 행정이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사과했습니다. 관심과 질타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습니다.
경찰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여론은 법대로 안 하면 무차별 질타를 해댑니다. 실제 징계를 먹습니다. 민원으로 자살을 택하는 공무원도 여럿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워낙 따지는 게 일상화 돼 있어 그렇습니다. 어떨 땐 흉기와 다름 없습니다.
공직 입장에선 해도 욕 먹고, 안 해도 욕 먹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경찰로선 '법대로' 해야만 하는 어려운 점은 있어 보인다는 소수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 판례가 그렇게 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은 실생활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아이러니한 사례이지요.
문제는 경찰이 이 건의 처리에 참고한 공동주택관리법 판례의 적정성 여부입니다.
경기 평택지원은 지난 2022년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관리 주체(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게시물을 적법하게 철거하기 위해선 부착한 이에게 자진 철거를 청구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강제집행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공동주택관리법에서 공동주택 안에 게시물을 부착하기 위해서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재판의 관건은 입주민이 관리주체의 동의 없이 부착한 게시물을 관리주체가 임의로 철거해도 되는 지였습니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 제2항에는 '입주자 등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려는 경우에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제2항 제3호에서 '공동주택에 광고물·표지물 또는 표지를 부착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공동주택관리법 제63조 제1항 제7호와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 제29조 제2호에는, '입주자 등의 공동사용에 제공되고 있는 공동주택단지 안의 토지, 부대시설 및 복리시설에 대한 무단 점유행위의 방지 및 위반행위 시의 조치'를 관리주체의 업무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들 규정에 따르면, 공동사용에 제공되는 공동주택단지 안에 표지물을 게시하기 위해서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해 게시된 표지물 조치는 관리주체의 업무 범위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평택지원은 위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게시물을 임의 철거한 관리주체(관리사무소)에 손괴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평택지원은 이 판결에서 "공동주택관리법이나 그 하위 법령 어디에도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표지물이나 게시물을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평택지원은 이어 "공동주택관리법의 목적은 공동주택의 '관리'에 관한 사항을 정해 투명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 뿐(공동주택관리법 제1조) 관리주체에 공동주택 입주민 분쟁까지 해결을 하도록 (강제)하는 취지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평택지원은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동의받지 않은 게시물, 표지물을 떼 내려면 게시자에게 자진 철거를 청구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강제집행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을 뿐이라고 판단한 것이지요.
따라서 임의로 게시물을 철거한 관리소장에게 손괴죄를 적용해 벌금을 선고했습니다.
평택지원뿐 아니라 대구지법에서도 비슷한 선고를 내렸네요. 일반인의 법 상식과는 꽤 거리가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이와 다른 주장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이 판결은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9호를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공동주택관리법과 경범죄처벌법 간의 충돌로 보입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9호(광고물 무단부착 등) 제3조(경범죄의 종류) 제9호엔 '광고물을 무단부착한 사람은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최종 개정 2017년 10월 24일)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즉, 제9호에서는 광고물 무단 부착자를 '다른 사람 또는 단체의 집이나 그 밖의 인공 구조물과 자동차 등에 함부로 광고물 등을 붙이거나 내걸거나 끼우거나, 글씨 또는 그림을 쓰거나 그리거나 새기는 행위 등을 한 사람 또는 다른 사람이나 단체의 간판, 그 밖의 표시물 또는 인공 구조물을 함부로 옮기거나 더럽히거나 훼손한 사람 또는 공공장소에서 광고물 등을 함부로 뿌린 사람'으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단체의 집에 해당하겠네요.
이 말고도 불법 전단지 부착은 옥외광고물법 위반 행위도 될 수 있습니다.
A 양의 부모는 “우리 애(A양)는 종이에 관리실 도장이 없으니까 뗀 거다. 거울의 효용성을 떨어뜨리고 불법 전단지를 붙이지 말라고 하는데도 붙인 사람이 재물손괴지 어떻게 종이 한 장 뗀 것이냐"고 주장합니다.
한 네티즌은 "판례를 잘못 적용 했고, 주민들 거울 이용권을 우선시해 불법 공고문을 떼었다면 관리사무소에서 표창을 줘야지 재물손괴죄 적용하는게 우습고 고발한 측을 오히려 명예훼손,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판결도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집니다.
평택지법의 판례는 불법 부착물을 관리주체에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관련 법 조항에 관리주체가 그것을 뗄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것을 중시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불법 게시물을 붙인 사람도 관리주체가 고발하면 벌금을 물어야 하고, 불법 게시물이라도 뗀 사람도 벌금을 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무튼 경찰이 참고한 판례가 일반인의 생활 속 상식과 많이 다릅니다. 이에 대한 여론의 지적 글도 많습니다. 특히 불법 게시물을 수거하면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돼 왔습니다.
국회가 상충되는 법 조항 개정에 속히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