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폭염 등으로 인한 쌀 공급 불안 우려와 산지 재고 부족에 따른 쌀값 상승 등의 영향으로 지난달 농수축산물 분야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통계청은 8월 소비자물가지수 조사 결과 농축산물 분야에서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고 2일 밝혔다. 앞선 7월 2.1% 상승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상승폭은 지난해 7월 6.2% 상승 이후 13개월 만에 최고치다. 쌀값이 11% 오른 것을 비롯 수산물 7.5%, 축산물 7.1%, 가공식품 4.2%, 외식 3.1% 등 먹거리 가격은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지난해 11월 경남 진주시 진성면 구천마을 벼 수매 현장에서 지게차가 수매를 마친 톤백을 트럭에 싣고 있다. 이 물량은 인근 농협 보관창고(미곡종합처리장·RPC)로 옮겨져 장기 보관된다.
8월의 전체 소비자물가는 1.7% 올랐다. 이는 7월(2.1%)과 비교해 0.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올해 가장 낮다. 다만 대규모 '유심 서버 해킹'을 당한 SK텔레콤이 통신요금을 큰 폭으로 낮춘 영향으로 공공서비스 분야가 7월 1.4%에서 8월 -3.6%로 크게 하락했다. 통계청은 통신요금 할인 영향을 제외하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품목을 보면 찹쌀(45.6%), 복숭아(28.5%), 고등어(13.6%), 쌀(11.0%), 돼지고기(9.4%), 한우(6.6%), 빵(6.5%), 상수도료(3.1%), 사립대 납입금(5.2%), 보험서비스료(16.3%), 공동주택관리비(4.1%) 등이 전년 동월 대비 많이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 감자(7.6%)와 배추(4.8%)도 크게 올랐다. 감자와 배추 주생산지인 강원의 극심한 폭염과 지속된 가뭄 때문이다.
전월 대비로도 배추 51.6%, 파프리카 52.1%, 파 27.1%, 상추 34.1%, 시금치 50.7% 올랐다.
배추는 올해 4월 15.6% 이후 4개월 만에, 감자는 지난해 4월 8.7% 이후 2년 4개월 만에 최대 상승을 기록했다.
콤바인으로 벼 수확을 하고 있다. 이상 정창현 기자
특히 쌀값은 지난해 쌀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 유통업체들이 원료벼(쌀을 가공하거나 특정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벼) 품종 확보 경쟁에 나서면서 전년 동월 대비 11% 급등했다.
수산물은 7.5% 올라 2023년 2월(8.2%)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명태 등 일부 수산물은 하락했으나 갈치, 고등어 등이 오른 영향이다.
축산물의 경우 한우의 전년 기저효과, 돼지고기 국제 가격 상승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7.1% 상승했다.
돼지고기 9.4%, 국산 쇠고기가 6.6% 증가했다.
돼지고기의 경우 도축 마릿수가 줄었고 수입 물량도 감소했다. 한우의 도축 마릿수도 줄었다.
홍인기 농림수산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한우는 지난해 공급 과잉으로 8월 소매가격이 연중 가장 낮았었다. 기저효과로 큰 폭의 상승을 한 것"이라며 "현재 한우 가격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 평년보다 낮다"고 했다.
홍 정책관은 "돼지는 국제 축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국내산 수요 증가 등의 영향으로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며 "9월에는 국내 돼지 도축 물량이 증가해 가격이 점차 안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백화점의 한우 진열 판매대. 이상 정기홍 기자
계란은 소비 증가 및 산지가격 인상 등의 영향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원예 농산물은 여름철 폭염과 폭우로 수급 불안을 보였으나 정부 가용물량 공급, 품목별 생육관리 등을 통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배추는 8월 하순 출하량이 일부 감소했지만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보한 정부 가용물량(3만 5500t)을 시장에 공급해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 중이다. 추석 성수기 출하 면적도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해 향후 공급 여건도 안정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무, 당근, 양배추 등은 생산량 증가로 가격이 하락했고 애호박·청양고추 등 시설채소도 일조량이 충분하고 생육도 양호해 안정적 공급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일 중 사과, 배는 폭염에 따른 생육 지연으로 출하가 늦춰졌으나 과실 크기 증가 등 생육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전년 동월 대비 복숭아(28.5%)가 가장 크게 오른 반면 포도(-7.3%), 사과(-1.8%)는 내렸다.
추석 성수기 출하량은 늦은 추석에 맞춘 농가의 출하 의향도 높아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공식품은 커피, 코코아 등 일부 원재료 가격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인건비 등 경영비 부담에 더해져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지만 전월보다는 0.2% 상승에 그쳤다.
품목별로 보면 김치(15.5%), 햄 및 베이컨(11.3%), 커피(14.6%), 빵(6.5%) 등의 가격이 올랐다.
최근 팜유, 설탕 등 일부 원재료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기업의 추가 인상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외식 분야는 원재료 가격 상승, 인건비, 배달앱 수수료 등 복합 요인으로 전년 동월 대비 3.1% 올랐으나 전월 대비 추가 상승은 없었다.
정부는 분야별 대책을 내놓았다.
농식품부는 농축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주요 품목별로 수급 상황과 리스크 요인을 상시 점검하기로 했다.
추석 명절에 대비해서는 농축산물 성수품 공급 대책과 대규모 할인 지원 방안을 9월 중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쌀의 경우 정부 양곡 3만t을 대여 방식으로 산지 유통업체에 공급 중이며 9월 말까지 쌀로 가공해 전량 시중에 방출할 계획이다. 대형 유통업계 할인 행사를 통해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다.
축산물의 경우 추석 성수기 한우 공급량을 확대하고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해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관리하는 자조금 및 주요 유통업체 등과 협업해 한우·한돈 할인 행사에 나설 계획이다.
자조금 제도는 특정 산업이나 품목의 발전을 위해 생산자나 단체가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소비 촉진, 판로 확대, 수급 안정, 교육 및 연구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또 국내산 축산물 수요 분산을 위해 할당관세를 적용 받는 가공식품 원료육(1만t)의 조기 도입을 독려해 10월 말까지 80% 이상을 도입할 예정이다.
추석 성수기 계란 가격 및 수급 안정을 위해서는 양계농협을 통한 계란 공급을 확대하고 대형마트, 계란 생산·유통단체 등과 협업해 할인행사 등도 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가공업체와 외식업체 부담 완화를 위해 수입 원재료 할당관세 품목을 확대하기로 했다.
국산 농산물 원료 구매자금으로 추가경정예산 포함해 1256억 원을, 외식업체 식재료 구매자금으로 5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공·유통 업체와 함께 추석 성수품 등 주요 소비 품목에 대한 할인행사를 비롯해 공공배달앱 할인쿠폰 지급 등을 통해 소비자 부담 완화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홍인기 농림수산식품부 유통소비정책관은 "농축산물 물가지수가 높게 나타난 것은 미곡종합처리장(RPC) 등 산지 유통업체의 재고 부족에 따른 쌀 가격 상승과 함께 축산물의 전년 기저효과 및 국제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하고 추세적 물가를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1.3%, 가계지출비중이 높은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는 1.5%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