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주요 민생 업종 금융지원 정책으로 지난 2022년 10월 시작했던 ‘새출발기금’의 운영에 커다란 구멍이 났던 것으로 확인됐다.

새출발기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운영하면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를 조정해 재기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윤석열 정부 때 만들어 이재명 정부 들어서 지난 9월 지원 규모를 확대했다.

감사원은 15일 ‘한국자산관리공사 정기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 4~5월 했다.

감사 결과, 소상공인 재기 지원 취지와 달리 월 소득 8000만 원 등 변제 능력이 충분한 고소득 차주 1944명에게도 총 842억 원을 감면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캠코는 2022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3조 9038억 원을 들여 금융권에서 부실채권을 매입한 뒤, 이 채무를 부담해야 하는 3만 2703명의 채무 원금을 60~90%로 차별화 해 탕감해 줬다.

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최소 60%는 원금을 감면 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는 의미다.

채무 감면 신청 전후로 가상자산(코인)을 1000만 원 이상 보유한 269명(최고 5억 7600만 원 보유), 가족에게 재산을 증여한 77명(최고 7억2900만 원 증여)이 있었지만 캠코는 정보 접근 권한 한계 등으로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

감사원은 애초부터 이 같은 도덕적 해이를 걸러낼 장치가 미비해 채무를 감면해 줘서는 안 될 사람들이 대상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 A 씨는 월평균 소득이 8084만 원에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641만 원에 불과했는데도 새출발기금으로 채무 원금 3억 3329만 원 가운데 2억 602만 원(61.8%)을 감면받았다.

재산을 숨겨놓고 탕감을 받은 '도덕적 해이' 사례도 확인됐다.

새출발기금으로 채무 원금을 3000만 원 넘게 감면받은 1만 7533명 가운데 269명은 가상자산을 1000만 원어치 넘게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감면받은 채무 원금은 225억 원에 달했다.

B 씨는 지난해 7월 새출발기금을 신청해 같은 해 11월 채무 원금의 77%인 9190만 원을 감면받았다. 하지만 B 씨는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가상자산거래소 계좌에 4억 5229만 원을 갖고 있었다.

C 씨도 빚 1억 2000만 원을 감면받았는데 알고 보니 4억 원어치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캠코가 재산 조사 과정에서 관련 금융기관 시스템과 연계가 불가능해 자산 보유 현황 등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앞고 악용한 것이다.

새출발기금으로 채무를 감면받기 직전이나 직후에 증여를 해준 경우도 있었다.

채무 원금을 3000만 원 넘게 감면받은 1만 7533명 가운데 77명은 새출발기금 신청 직전이나 직후에 증여를 해놓고 새출발기금으로 원금 66억 원을 감면받았다.

D 씨는 2022년 말 자녀에게 토지와 오피스텔 6억 원어치를 증여했는데 이듬해 6월 새출발기금을 신청해 채무 원금 6466만 원을 탕감받았다.

비상장 주식을 갖고 있었던 경우도 적발됐다.

비상장주식 소유 1만 7533명 가운데 39명은 1000만원 이상 갖고 있었는데도 채무 34억 원을 감면받았다.

감사원은 캠코에 “새출발기금으로 부실 차주 채무를 조정할 때 소득 등 상환 능력을 고려하고, 감면율에도 감면율 산정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라”고 통보했다.

또 “재산 조사 때 가상 자산, 증여 및 비상장 주식 보유 현황을 확인하는 방안을 마련한 뒤 부정 수령 의심자들에 대해선 추가 조사해 적정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