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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사진관] 무꽃입니다

정창현 기자 승인 2023.06.13 15:39 | 최종 수정 2023.06.15 01:32 의견 0

경남 진주시 진성면 와구터널 근처 감자밭의 한 평 남짓한 구석 공간에 핀 무꽃입니다. 이 밭의 주인은 지난 3월 무씨를 심었는데 최근에 꽃이 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무꽃은 사판화(四瓣花·꽃잎이 4장인 꽃), 즉 십자화로 흰색과 자주색으로 핍니다. 꽃말은 '계절이 주는 풍요'라고 하네요. 무꽃을 장다리꽃으로도 불립니다. 장다리는 무나 배추, 수수에 달려 있는 꽃줄기(꽃대)를 이릅니다.

연자주빛 무꽃. 꿀벌 한 마리가 꿀을 빠는데 여념이 없다.

무꽃은 온라인에서 사진을 찾아보고서야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하지만 지난 시절엔 별 관심을 갖지 않았었지요. 집 근처 남새밭 등 지척에 있어서 그랬던 건가요? 하찮게 홀대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꽃'보다는 '무'에 더 관심을 뒀던 거지요.

이래서 상당수 사람들은 무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잘 모르는 편입니다.

아래 사진 몇 장을 잘 관찰하면 김치를 담가먹는 무가 아닌, 또다른 꽃의 예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채소가 아닌 야생화 느낌이지요. 토종 야생화는 화려하지 않고, 겉모습이 수수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시구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모습이 보이는' 그런 꽃입니다. 토종 꽃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하얀 나비가 무꽃을 찾았습니다. 색상이 잘 어울리네요.

본래 이맘 때 무밭의 무꽃과 나비(흰나비, 노랑나비)는 장다리 꽃밭의 명물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나비 자태입니다.

꽃에 꿀 빨대를 꽃고 큼지막한 날개를 아래로 늘어뜨린, '꽃과 나비' 그림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무 뿌리와 줄기(장다리)입니다. 뿌리가 꽤 굵어졌네요. 대도 실하고요. 그 위에 흰색꽃, 자주색꽃이 앞의 사진들처럼 피어있습니다. 이상 정창현 기자

그 옛날 보릿고개 시절, 이 장다리꽃이 지고 열매가 열릴 때면 삘기, 찔레꽃 순과 함께 장다리 열매를 부지런히 따먹었다고 합니다. 몹씨 매웠다고 합니다.

■가수 정태춘 '애기2'의 '장다리꽃 피어있는 학교길 보리밭' 가사

저 들밭에 뛰놀던 어린시절
생각도 없이 나는 자랐네
봄 여름 갈 겨울 꿈도 없이 크며
어린 마음뿐으로 나는 보았네

도두리 봄 들판 사나운 흙바람
장다리꽃 피어있는 학교길 보리밭
둔포장 취하는 옥수수 막걸리
밤 깊은 노성리 성황당 돌무덤
달 밝은 추석날 얼근한 농악대
궂은 밤 동구 밖 도깨비 씨름터
배 고픈 겨울 밤 뒷동네 굿거리
추위에 갈라진 어머님 손잔등을

이 땅이 좁다고 느끼던 시절
방랑자처럼 나는 떠다녔네
이리로 저리로 목적지 없이
고단한 밤 꿈 속처럼 나는 보았네

낙동강 하구의 심난한 갈대 숲
희뿌연 안개가 감추는 다도해
호남선 지나는 김제벌 까마귀
뱃놀이 양산도 설레는 강마을
뻐꾸기 메아리 산골의 오두막
돌멩이 구르는 험준한 산계곡
노을 빛 뜨거운 서해안 간척지
내 민족 허리를 자르는 휴전선을

주변의 모든 것에 눈뜨던 시절
진실을 알고자 난 헤매였네
귀를 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어설프게나마 나는 듣고 보았네

서울로 서울로 모이는 군중들
지식의 시장에 늘어선 젊은이
예배당 가득히 넘치는 찬미와
정거장마다엔 떠나는 사람들

영웅이 부르는 노래와
젖은 논 벼 베는 농부의 발자욱
빛 바랜 병풍과 무너진 성황당
내 겨레 고난의 반도땅 속앓이를

얼마 안 있어 이제 내 아이도 낳고
그에게 해 줄 말은 무언가
이제까지도 눈에 잘 안띄고
귀하고 듣기 어려웠던 얘기들
아직도 풋풋한 바보네 인심과
양심을 지키는 가난한 이웃들
환인의 나라와 비류의 역사
험난한 역경속 이어온 문화를
총명한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과
당당한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깨었는 백성의 넘치는 기상과
한뜻의 노래와 민족의 재통일을

■무꽃 전설(인터넷서 도는 내용)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한양 땅 마포나루에 한 과부가 살았습니다.

이 과부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마포나루는 그녀의 소문을 들은 남정네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는데요. 그 덕분에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천하일색인 그녀에게도 사람들이 모르는 허물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다리가 못 생긴 것이었어요. 어쨌거나 그녀의 곧은 심성 때문에 남정네들은 일년 삼백 육십일 속만 태우고 있을 수 밖에요.

그러던 어느 가을 밤 초승달이 구름에 가린 틈을 타서, 남녁 지방에 사는 한 뱃사공이 드디어 그 여인을 보쌈해 갔더랍니다.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여인은 남정네에게 딱 한가지 맹세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백일이 되기까지는 자기를 건드리거나 자기의 알몸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뱃사공은 아쉬웠지만 어쩌겠습니까? 대쪽같은 여인네의 심성을 아는지라 들어줄 수 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꿀맛같은 날을 보낸 것도 어언 석달이 지난 어느날,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밤늦게 들어온 뱃사공은 부인의 몸을 보고 싶었습니다.

술을 너무 마신 탓에 그만 부인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긴 것이지요. 부인이 잠든 것을 확인한 뱃사공, 촛불을 켜고 이불을 살짝 들췄습니다. 그런데 이불의 맨 아래쪽을 들추고 다리를 본 순간, 그렇지 않아도 가슴이 콩딱콩딱 뛰고 숨이 막히던 남자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이튿날, 싸늘하게 식은 남편의 몸을 붙잡고 울던 여자는 남편을 죽게 만든 자기의 다리를 한스럽게 바라보다가 그만 다리를 자르고 강물로 뛰어들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여름 여인이 뛰어든 강가에는 청초한 잎이 돋아 나오고 그 가운데로 기다란 대가 자라더니 그 여인의 모습처럼 예쁜 꽃이 피어났습니다.

그 자리를 파보니 땅속에서는 그녀가 그렇게 감추고 싶어했던 다리를 닮은 무가 나왔고,

사람들은 그녀를 기리는 뜻으로 빨간 핏물같은 깍두기도 담그고, 강물같은 동치미도 담궜다는 슬픈 전설이....

※믿거나 말거나. 흥미는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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