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추수가 끝난 지금, 2모작(내년 모내기 즈음에 수확하는 작물)을 하지 않은 농가에서는 땅이 얼기 전에 논갈이를 하는 철입니다. 농가에선 보통 '생(生)갈이'라고 하는데, 애벌갈이(초벌갈이)란 뜻입니다. 바지런한 농가에선 초봄에 한 번 더 논갈이를 합니다.

벼를 수확한 뒤 논에 남아 있는 벼 그루터기를 그대로 두면 제대로 썩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년 봄에 모내기를 할 땅을 겨울이 오기 전에 갈아엎으면 통기성(공기가 통하는 정도)을 증가시켜 흙에 공기가 들어가 영양소를 만들고, 한편으로 벼 그루터기와 잡초는 땅 속에 묻혀 썩힙니다.

이처럼 늦가을과 초겨울의 논밭 갈이는 한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한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영농의 기계화로 그 옛날 쟁기질과 써레질은 농업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처럼 됐습니다. 소의 어깨에 굴레(소 어깨에 거는 기역자 모양 나무)와 부리망(입에 씌운 망)을 씌우고 "이랴! 이랴!" 하며 일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기 어렵지요. 몇 년 후엔 경운기 로터리마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까 짐작도 됩니다. 논갈이 변천사를 살펴봅니다.

▶명줄처럼 남은 쟁기질

충북 단양군 가곡면의 한 산자락 고추밭을 갈고 있는 촌부와 소의 모습.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처럼 와닿는다. 농부의 쟁기와 소의 굴레가 예스런 농촌 모습이다. 2022년 찍은 사진이다. 충북도

충북 옥천군 군북면 대청호 인근 산자락에 위치한 다랑논에서 부부와 일소가 쟁기를 부리며 논을 갈고 있다. 논밭 일에 익숙지 않은 소는 앞에서 고삐를 쥐고서 끌어줘야 일 효율이 오른다. 2021년 찍은 모습. 충북도

▶경운기 로터리

아직 다랑이논 등에선 쟁기질로 논밭 갈이를 하는 곳도 더러 있으니 당연히 경운기를 이용한 갈이도 있습니다. 중소 농가에서는 큰 트랙터보다 활용도가 높지요.

경운기는 큰 트랙터가 진입이 어렵거나 작업장이 좁은 곳에서 유용하게 활용합니다.

최근에는 감자, 고구마 등 땅속 작물을 심기 전 로터리(쟁기질과 다름)를 할 때 경운기에 '수확기'를 장착해 사용합니다. 지금도 이용도가 꾸준해 농기계임대사업소 대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형 농기계가 첨단화 하면 수십 년간 둘도 없는 농삿일 동반자였던 경운기도 쟁기처럼 농촌 현장에서 보기 힘들어질지 모릅니다.

한 농업인이 경운기에 기계 쟁기를 달아 밭갈이를 하고 있다.

▶주력 논밭갈이는 트랙터

대부분 농가에서는 요즘 논밭 갈이를 트랙터로 합니다. 비탈진 밭보다 논에서 트랙터를 주로 활용합니다.

최근 농가의 쟁기 작업을 보면 일반 쟁기보다 원판 쟁기를 많이 사용합니다. 원판 쟁기가 쟁기질을 하면서 논 표면을 고루 평평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트랙터에 원판 쟁기를 끼워 논을 갈아엎는 작업을 하는 모습. 정창현 기자

그런데 요즘엔 논 갈 때 쟁기질을 하지 않고 로터리 작업만 하는 농사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쟁기질로 바닥을 굳이 깊게 갈아엎지 않고 로터리로 얕게 갈아 놓고 봄에 모를 심으려는 것이지요.

또 일부 농가에서는 늦가을~초겨울 첫 쟁기질(생갈이)을 하지 않고, 겨우내 벼를 수확한 그대로 두고서 다음 해 모내기를 앞두고 한 번만 로터리 작업을 하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일손이 달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요즘엔 비료 효능이 좋아졌고 병충해에 강한 품종 개발, 좋아진 농약 효능 등으로 소출(所出·논밭에서 나는 곡식 양)엔 큰 차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언젠가는 벼농사용 논갈이가 없어질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도전과 응전'이란 다소 도발적인 말처럼 쟁기질과 로터리 트렌드도 변천을 하겠지요.

요즘은 농한기이지만 농촌을 지나는 길에 간간이 보이는 논갈이 모습에 옛 농삿일이 단상(斷想·단편적인 생각)으로 다가와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