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추수가 끝난 지금, 2모작(내년 모내기 즈음에 수확하는 작물)을 하지 않은 농가에서는 땅이 얼기 전에 논갈이를 하는 철입니다. 농가에선 보통 '생(生)갈이'라고 하는데, 애벌갈이(초벌갈이)란 뜻입니다. 바지런한 농가에선 초봄에 한 번 더 논갈이를 합니다.
벼를 수확한 뒤 논에 남아 있는 벼 그루터기를 그대로 두면 제대로 썩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년 봄에 모내기를 할 땅을 겨울이 오기 전에 갈아엎으면 통기성(공기가 통하는 정도)을 증가시켜 흙에 공기가 들어가 영양소를 만들고, 한편으로 벼 그루터기와 잡초는 땅 속에 묻혀 썩힙니다.
이처럼 늦가을과 초겨울의 논밭 갈이는 한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한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영농의 기계화로 그 옛날 쟁기질과 써레질은 농업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처럼 됐습니다. 소의 어깨에 굴레(소 어깨에 거는 기역자 모양 나무)와 부리망(입에 씌운 망)을 씌우고 "이랴! 이랴!" 하며 일하는 모습은 더 이상 보기 어렵지요. 몇 년 후엔 경운기 로터리마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까 짐작도 됩니다. 논갈이 변천사를 살펴봅니다.
▶명줄처럼 남은 쟁기질
▶경운기 로터리
아직 다랑이논 등에선 쟁기질로 논밭 갈이를 하는 곳도 더러 있으니 당연히 경운기를 이용한 갈이도 있습니다. 중소 농가에서는 큰 트랙터보다 활용도가 높지요.
경운기는 큰 트랙터가 진입이 어렵거나 작업장이 좁은 곳에서 유용하게 활용합니다.
최근에는 감자, 고구마 등 땅속 작물을 심기 전 로터리(쟁기질과 다름)를 할 때 경운기에 '수확기'를 장착해 사용합니다. 지금도 이용도가 꾸준해 농기계임대사업소 대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형 농기계가 첨단화 하면 수십 년간 둘도 없는 농삿일 동반자였던 경운기도 쟁기처럼 농촌 현장에서 보기 힘들어질지 모릅니다.
▶주력 논밭갈이는 트랙터
대부분 농가에서는 요즘 논밭 갈이를 트랙터로 합니다. 비탈진 밭보다 논에서 트랙터를 주로 활용합니다.
최근 농가의 쟁기 작업을 보면 일반 쟁기보다 원판 쟁기를 많이 사용합니다. 원판 쟁기가 쟁기질을 하면서 논 표면을 고루 평평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논 갈 때 쟁기질을 하지 않고 로터리 작업만 하는 농사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쟁기질로 바닥을 굳이 깊게 갈아엎지 않고 로터리로 얕게 갈아 놓고 봄에 모를 심으려는 것이지요.
또 일부 농가에서는 늦가을~초겨울 첫 쟁기질(생갈이)을 하지 않고, 겨우내 벼를 수확한 그대로 두고서 다음 해 모내기를 앞두고 한 번만 로터리 작업을 하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일손이 달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요즘엔 비료 효능이 좋아졌고 병충해에 강한 품종 개발, 좋아진 농약 효능 등으로 소출(所出·논밭에서 나는 곡식 양)엔 큰 차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언젠가는 벼농사용 논갈이가 없어질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도전과 응전'이란 다소 도발적인 말처럼 쟁기질과 로터리 트렌드도 변천을 하겠지요.
요즘은 농한기이지만 농촌을 지나는 길에 간간이 보이는 논갈이 모습에 옛 농삿일이 단상(斷想·단편적인 생각)으로 다가와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