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추수가 끝난 들녘은 소슬합니다. 말 그대로 인기척 없이 찬바람만 휙휙 부는 공허한 분위기이지요.

농가에서 이맘 때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쟁기질입니다.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을 갈아엎는 작업입니다.

트랙터에 원판쟁기를 끼워 논을 갈아엎는 작업. 원판쟁기는 일반 쟁기와 달리 갈아놓은 논을 평평하게 해줘 요즘 많이 이용한다.

쟁기질(로터리 작업 포함)을 왜 하냐고요?

벼를 수확한 뒤 논에 남아 있는 벼 그루터기를 그대로 두면 썩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년 봄에 모내기를 할 땅을 갈아 엎으면 통기성(공기가 통하는 정도)을 증가시켜 흙에 새 공기를 쐬어 영양소를 만들고, 한편으로 벼 그루터기와 잡초는 땅 속에 묻혀 썩습니다.

논이 얼기 전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의 논밭 갈이는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강원 지방에서는 ‘보냄’이라고 해서 새해 들어 처음 논밭을 가는 날을 따로 받는다고 합니다.

특히 강원 정선 지방에서는 밭 갈기 열흘에서 한 달 전쯤 해일(亥日·돼지 날)에 쟁기를 멘 소를 밭에 세우는데, 머리를 동서남북 가운데 빈 방위쪽으로 가도록 한다네요. ‘돼지날’을 잡는 이유는 돼지가 땅을 뒤집어엎듯 논밭이 잘 갈리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다고 합니다.

논갈이를 마친 논의 모습. 벼 그루터기가 흙과 섞여 땅 밑으로 묻혀 겨우내 삭는다. 봄 모내기 때의 좋은 거름이 된다. 이상 정창현 기자

참고로 요즘은 트랙터 쟁기(로터리)로 작업을 하지만 옛날엔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했습니다.

목에 멍에를 얹은 소는 '이럇~!' 하는 농업인의 고함에 쟁기를 끕니다.

가을걷이 후 외양간(경상 지방에선 마구라고 함)에서 느긋하게 여물 소죽만 먹던 소가 오랜만에 나와 일을 하는 때이지요.

이 모습이 눈에 선한 독자분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