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호우에 농경지 침수 피해가 매년 증가하는 것은 한국농어촌공사의 관리 부실과 시설 결함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5년간 농경지 침수 피해 면적은 총 4976ha로, 축구장 약 7100개에 달한다. 특히 2023년 1552ha, 올해 9월 기준 1448ha 등 피해가 지속되고 있지만 현장의 배수펌프와 수문이 제때 가동되지 않아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어 사실상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침수된 경남 진주시 사봉면 북마성 배수펌프장 모습. 한국농어촌공사가 지난 7월 19일 극한호우가 내리자 오후 3시 배수장 가동 중단 1시간 43분 후인 오후 4시 43분 찍은 모습이다. 배수장에 모터(기계 왼쪽)와 연결된 대형 펌프 두 대가 설치돼 있고, 흙탕물이 펌프 설치 바닥까지 찼다. 북마성 주민 제공
대규모 침수 피해로 인재 논란의 중심이 된 진주시 사봉면 북마성배수장 지하 1층 모습. 19일 오후 가동 중지 후인 23일 오전 대형 배수기(펌프) 앞에 연결된 대형 모터가 제거된 상태다. 가운데 바닥에 침수 직전 모터를 제거한 흔적이 보인다. 1층 난간에서 기계실 지하 1층을 내려다보며 찍었다. 정창현 기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서천호 국민의힘 의원(경남 사천·남해·하동)이 농어촌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사가 관리하는 배수펌프장 중 절반에 가까운 152개(49.5%)이 제방보다 낮게 설치된 ‘설계 결함 시설’으로 밝혀졌다.
20년 전인 2005년 태풍 '매미'로 인한 대규모 수해 이후 배수펌프장은 제방보다 높은 위치에 설치하도록 기준이 변경됐음에도, 공사는 20년이 지나도록 절반도 개선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제방이 범람하면 펌프장 자체가 침수돼 가동이 중단되면서 배수 기능이 마비돼 오히려 피해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최근 3년간 펌프장 침수로 인한 피해액만 92억 8500만 원, 복구비는 174억 360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농어촌공사는 이 문제의 전면 개선 목표를 '2036년까지'로만 정해 둔 채 미루고 있어, 앞으로 10년간 폭우에 무방비로 노출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또 전국 1051개 배수장 중 22.9%(241개)는 침수 시 즉시 가동이 멈추는 '횡축 펌프'를 여전히 사용 중이며, 특히 경남에만 92개가 집중돼 있다. 횡축 펌프는 전기모터가 외부에 노출된 구조로 침수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수차례 지적됐음에도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또 수리시설을 수동으로 관리하는 감시원 7321명의 평균 연령은 66세이며, 70세 이상은 31.9%에 달한다.
이들 고령 인력이 소류지 등 전국 13만여 개 수문을 손으로 돌려 물 수위를 조절하고 있어 극한호우 상황에서 실시간 대응이 미흡하다는 것이 현장의 일관된 호소다. 문제는 농촌엔 젋은층이 지극히 부족해 이들 고령 인력이 동원되는 불가피한 것도 현실이다.
농어촌공사는 이런 여건에 '만 70세 이하'만 채용하도록 규정한 자체 지침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문 조절 자동화율은 22.7%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관련 예산은 2021년 346억 원에서 2025년 147억 원으로 60% 이상 삭감됐다.
서천호 의원은 "농어촌공사가 스스로 만든 운영 지침조차 지키지 않고, 설계 결함 펌프장 개선은 10년 이상 미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어떤 재난 대응 체계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관련 예산을 깎는 국회의 인식 전환이 먼저 선결돼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서 의원은 "농어촌공사는 현 상황을 기후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기술과 관리 실패로 인한 인재임을 인정하고, 전면적인 구조 개선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