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시장이 "계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 중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 1년을 앞두고 사과를 공개 촉구한 건 박 시장이 처음이다.
박 시장은 지난 23일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주제로 열린 시사 대담에서 "곧 계엄 1년인데 상대가 아무리 입법 독재를 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자제하지 못해 정권을 3년 만에 헌납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분명하게 국민에게 정말 잘못된 일이고 미안한 일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 시사 대담 포스터. 미래도시혁신재단 제공
국민의힘이 최근 장외 투쟁과 강성 지지층 결집에 당력을 집중하는 전략을 택한 가운데, 박 시장은 당 지도부와 선을 긋는 모습이다.
보수 우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부산의 여론이 심상치 않고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당 지도부의 행보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계엄 사과)조차 무서워한다면 보수의 가치가 분명해지지 않는다"며 "대한민국 보수는 이승만부터 윤석열 대통령까지 성과와 얼룩을 함께 남겼고 보수가 희망이 있는 건 얼룩에 대해 성찰하고 다시 얼룩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혁신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에게 사과하는 걸 두려워하고 주저할 필요가 없다"며 "상대가 밉고 정말 잘못한다고 해서 우리의 잘못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며 그런 태도와 기준으로 다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효과 없는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지역 '10·15 부동산 대책' ▲ '7800억 원대'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비리' 항소 포기 ▲민주당이 반대했던 4000억 원대 미 '론스타 소송' 승리 등 이어지는 여권의 각종 악재에도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20~21일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부산·울산·경남(PK)에서의 민주당 지지율은 43.1%, 국민의힘은 41.2%로 민주당이 1.9%포인트(p) 앞섰다.
한국갤럽의 18~20일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PK에서 민주당(31%)이 국민의힘(29%)보다 2%p 높았다.
무당층은 30%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는 전통적인 보수 우위 지역인 PK의 유권자가 국민의힘에 큰 실망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민주당의 악재 시리즈 속에서도 당 지도부가 극우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면서 지지율은 되레 내려가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특검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우리가 황교안"이라고 외치며 극우 세력을 옹호했다.
이 같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행보에 중도 성향과 비판적 보수층이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박 시장의 '계엄 사과 발언'은 이 같은 여론 흐름의 구도 속에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박 시장은 평소 합리적인 보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