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의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4일 밤 11시 3분 경북 봉화군의 아연 채굴 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작업반장 박 모 씨(62)와 보조 작업자 박 모 씨(56)가 극적으로 생환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발생한 매몰 사고 이후 무려 10일만(221시간)이다.
이들 광부 2명은 119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된 뒤 소방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대화를 하면서 갱도 밖으로 걸어나왔다. 6일 현재 경북 안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건강 상태는 일반인과 크게 다름없이 상당히 양호하다고 한다
경북소방본부는 "발견 당시 이들은 폐갱도 내에서 바람을 막기 위해 주위에 비닐을 치고,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견뎠다"고 설명했다.
생존자들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나무막대로 막사 모양을 만든 뒤 비닐을 둘러 추위를 막았고, 비닐 막사 안에서 마른 나무로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어 이들은 작업할 때 가져간 믹스커피(30봉지)를 조금씩 먹으며 허기를 달래면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마시며 버텨냈다. 평상시 흔하고 하찮게 여겼던 믹스커피가 밥 대신 비상식량 역할을 한 것이다.
믹스커피엔 차가운 갱도 안에서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칼로리와 영양소가 모두 들어있었다. 믹스커피 한 봉지의 가격은 인터넷에서 100원 정도다.
동서식품의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제품의 경우 1봉지 열랑은 50kcal다. 그리고 탄수화물 9g, 당류 6g, 지방 1.6g, 포화지방 1.6g, 나트륨 5mg이 들어있다.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1개의 열량은 45kcal다. 탄수화물 8.0g, 당류 5.1g, 지방 1.5g, 포화지방 1.5g, 나트륨 5mg이 들어있어 맥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인 남성의 경우 하루 열량을 채우려면 2000kcal 정도 섭취해야 하는데, 믹스커피 40봉지를 섭취해야 한다. 극적생환 한 두 광부는 하루 섭취량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부족한 수분을 떨어지는 물로 보충하며 구조를 기다린 것이다.
두 생환자의 주치의인 방종효 안동병원 신장내과 과장은 “미스커피 30봉지를 3일에 걸쳐 나눠서 식사 대용으로 드셨다고 한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장 박 씨는 가족들을 처음 만나 “(갱도) 안에서는 시간 개념이 없었다”며 “3일밖에 안 지났는데 왜 이렇게 많이 왔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또 안동병원 응급의학과 나현 과장은 5일 이들에 대한 1차 검사 직후 브리핑에서 “구조된 두 분 모두 열흘 정도 못 드시고 굶으신 것에 비하면 상태가 양호하고 생체 징후도 안정적”고 진단했다.
나 과장은 “피 검사에서도 탈수가 많이 됐거나 염증이 안 보인다. 단지 딱딱한 공간에 장시간 누워 계셔서 근육 효소 수치가 조금 올라있다”면서 “경미하게 혈액 검사 수치가 오른 상태지만 수액 치료를 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체온은 34~35도로 낮지만 의학적으로 저체온증이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생리 식염수나 담요로 몸을 덮어주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믹스커피는 구호식품으로 활용하거나 식사 대용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매몰됐던 두 분이 믹스커피를 먹으며 생환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경남 진주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50대 김 모 씨는 "평소에는 아메리카노를 자주 먹지만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꼭 봉지 커피를 따끈하게 타서 마신다"면서 "봉지 커피가 10일만의 기적을 만들었다니 새삼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구조 21시간 전인 4일 새벽 1시 31분 한 네티즌이 관련 기사 댓글에 '믹스커피를 갖고 계신다고 하더라. 내일 커피믹스 드시면서 나타나실 것'이란 예언 글을 올려 화제를 낳았다.
네티즌들은 '로또 번호 알려주세요', '혜안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생명줄 커피믹스 판매량이 늘겠어요', '커피광고 모델 하면 대박 날 듯' 등의 댓글을 남겼다.
한편 봉화 광산 매몰사고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경북 봉화 재산면 아연 채굴광산 제1 수직 갱도에서 펄(토사) 약 900t(업체 측의 추산)이 수직 아래로 쏟아지며 발생했다.
이 사고로 작업반장인 박 씨 등 2명이 제1 수직갱도 지하 190m 지점에서 고립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