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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의료 오지' 경남 산청군의 군보건의료원장이 1년 만에 쫓겨난 사연

권현옥 전 원장 "의료봉사 하는 마음으로 지원"
산청에 병원 없어 입원·검진 활성화 하려다 발목
대리처방으로 고발 당해, 산청군은 직위해제
"의료원에 노조 있는 한 공공의료 활성화 어려워"

정창현 기자 승인 2023.01.23 22:18 | 최종 수정 2023.01.24 10:09 의견 0

최근 시골 지자체 경남 산청군에서 연봉 3억 6천만원을 책정해 내과 전문의를 공모했으나 지원자가 없어 화제가 되면서 3년전 직위해제 됐던 산청보검의료원장의 사연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네티즌들은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잊혀져 있던 당시 상황을 전한 기사를 끄집어내 SNS와 커뮤니티를 달군다.

다음은 온라인에서 도는 의학 전문지인 '메디게이트뉴스'의 기사(2019년 11월 30일자) 내용을 요약했다. 사진도 메디게이트 기사의 것이다.

권현옥 당시 경남 산청군의료원장은 지난 2019년 10월 15일 산청군에 의해 직위해제 됐다. 이유는 원장으로 있으면서 직원들의 명의로 노인요양원에서 대리처방을 한 것이 의료법에 위반했다는 것이다.

당시 산청군은 이와 관련 의료원 인사를 최종 승인하는 경남도에 권 원장의 중징계를 권고했었다.

권현옥 원장이 검진을 하려온 할머니를 반기고 있다.

이 기사는 기자가 경남 진주에 사는 권 원장을 찾아 지난 1년간 일어났던 일을 물었다. 다만 더경남뉴스는 기사 내용이 권 원장이 밝힌 입장과 주장임을 밝힌다.

10여년간 진주에서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해오던 권 원장은 주의 분의 추천에 공공의료에서 또 한번 봉사를 하기로 하고 2018년 10월 산청보건의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민 3만 5000명이 사는 산청군의 유일한 여자 의사였다.

틈만 나면 의료봉사를 다니는 것이 취미였던 그는 마지막으로 공공의료원에서 봉사한다는 생각에 다른 의사들이 꺼리던 그 자리에 지원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보건소를 겸해 진료가 가능한 의료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산청군은 의료 수준이 열악해 큰 병원이 없다보니 1989년부터 보건소를 보건의료원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산청군은 워낙 외딴 지역이다 보니 보건의료원장이나 진료과장 공모가 나도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상당수는 공중보건의사들이 진료의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원장으로 오자마자 많은 할머니들의 사랑을 받았다. 산청군에는 독거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이 많이 살지만 큰 병원이 없어 환자들이 인근 진주까지 가야해 권 원장의 진료는 단비와 같았다.

권 원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산청의 의료 수준은 정말 열악하다. 주민 3만 5000여명 중 1만 5000명은 독거 노인으로 파악된다. 병원이 없어 환자들이 진주까지 가서 치료를 받다가 여의사, 특히 산부인과 의사가 왔다고 하니 여성 할머니 환자들이 매우 좋아했다”고 말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에 구비된 산부인과 초음파는 권 원장이 오기 전까지 한번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권현옥 원장이 진료를 받으러온 할머니들 사이에 앉아 사진 한장을 찍었다.

이런 분위기에 흥도 나 의료봉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의욕적으로 진료에 임했다. 취임 직후 열악한 의료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입원과 검진 활성화부터 시작했다.

권 원장은 2008년 11월 '산청군 보건의료원 개선 지침'을 작성했다.

입원실을 활성화 하고 입원실 가동에 모든 의료직 직원이 참여하도록 했다. 직원들이 따르지 않으면 보건지소로 이동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또 입원 전담 간호사 2명을 지정해 환자가 빠르고 편하게 입원 수속 절차를 밟을 수 있게 했다.

이어 환자들의 외래진료 편의를 위해 간혹 평일 오전 진료 시작 시간을 앞당겼다. 토요일에는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해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건강을 살폈다.

권 원장은 직원 교육에도 신경을 썼다고 했다.

외래진료부는 단체복이나 가운을 입고 사복을 입지 못하게 했다. 직원들은 잡담이나 큰 웃음을 조심하도록 하고 환자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지시했다.

그는 1년 동안 하루 최대 100명을 진료하는 등 무려 9000여명을 진료했다.

권 원장은 “처음에는 직원들이 잘 따르는 듯 하더니 일이 늘어나자 불만이 이어졌다. 군 공무원노조까지 나서기 시작했다. 원장 자리가 직원을 평가하거나 환자를 위해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높은 평가점수를 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의사가 아닌 행정직이 인사권을 갖다 보니 의사가 환자를 위해 열심히 진료를 하려고 해도 직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직원들이 권 원장에게 반기를 드는 사건이 생겼다.

권 원장이 의료원 직원들의 이름으로 평소 의료봉사를 다니던 요양원 장애인들에게 대리처방을 해줬는데 해당 직원들이 이를 고발했다.

권 원장은 2018년 12월에 의료원 직원 4명의 이름으로 6차례 대리처방을 했다.

권 원장은 의료봉사에 필요한 약을 확보하기 위해 요양원 장애인들이 여성 질염 및 감기 증세로 진료한 것처럼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고 처방전을 발급했다.

6회 대리처방에 들어간 12만 5040원의 보험 급여(공단 부담금)를 받았다. 진료비 4만 5360원과 처방약 7만 9680원이었다.,

결국 권 원장은 의료법 위반과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의 혐의를 받았다.

권 원장은 문제가 불거지자 "선의의 의도였고 죄가 있으면 마땅히 받겠다"며 감사를 자청했다.

그는 감사 과정에서 “산청군보건의료원장 취임 초기부터 노인요양원 입소 노인, 다문화 가정 임산부 등 의료기관 방문이 곤란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해왔다. 이런 환자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의료봉사 활동 중 거동이 불가능한 노인요양원 환자 치료에 전문의약품인 질염 치료제가 필요했다. 아무리 선의의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법령을 위반해선 안 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산청군 내 환자 건강을 책임지려는 과정에서 법령의 내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점을 감안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 일과 관련해 권 원장은 자신이 대리처방을 해준 환자들과 의료봉사에서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로부터 수십장의 탄원서를 받아 검찰에도 제출했다.

창원지검 진주지청은 2019년 6월 27일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 위반으로 권 원장에게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청군보건의료원에 허위(부당)청구 금액을 환수결정을 통보해 12만 5040원도 반환했다.

검찰은 당시 기소유예 사유로 "이 범행에 대해 피의자(권 원장)는 스스로 감사를 청구했다. 또한 피의자가 직원들에게 처방전 발급의 승낙을 구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강압적인 수단을 행사하지 않은 점, 피의자는 봉사활동을 위해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 보이고 실질적으로 취득한 이익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의자가 자신의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며 재발 방지를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은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권 원장은 기소유예를 받기는 했지만 형사처벌에 이어 행정처분의 책임도 떠안았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9월 20일자로 권 원장에게 2020년 3월 30일부터 2020년 5월6일까지 1개월 7일간 의사면허 자격정지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자격정지 기간 중에는 국내외 의료봉사를 포함해 일체의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권 원장은 곧바로 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는 “의료법에서 인정하는 대리처방이 가능한 것으로 잘못 판단해 의료법을 위반했다. 하지만 본인이 의료법을 위반한 점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 앞으로는 의료법령을 반드시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행정심판에서 참작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또 20년간 의료계에 종사하면서 의료법 위반 사실이 단 한 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처분의 대상이 되는 위법 행위도 일시적이고 일회성이었다고 밝혔다.

권 원장은 면허정지 행정처분으로 의료봉사를 할 수 없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는 “경남도에서 1000회 이상의 의료봉사 활동을 해왔고 60여 회에 걸친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해왔다. 의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의료봉사 활동에 매진해왔다"며 "면허정지를 당하면 진료는 물론 의료봉사를 할 수 없다. 행정심판에서도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권 원장은 "1999년 3월부터 경남도 13개 사회복지시설의 장애 여성, 성폭력 피해 여성, 빈곤 여성 등 사회 취약계층 여성을 대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해왔다. 2006년부터는 해외로 확대해 사비를 써가면서 인도, 네팔, 아프리카 등 약 7만여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해왔다"고 소개했다.

권 원장은 진주시의사회 장애우 봉사동우회 '나누미'를 결성해 지역 장애우들과 함께 10년간 어린이날, 바다캠프, 가을학예발표회, 크리스마스 축제 등을 주관했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 자랑스러운 진주시민상을 받았다.

이 밖에 그는 의료봉사 활동에 대한 공로로 2010년 3월 경남의사봉사대상, 2013년 4월 보령의료봉사상, 2014년 3월 경남도의사회 특별공로상, 2016년 10월 대한적십자 박애상 금상, 부산여고 자랑스런 동문상 등을 받았다. 올해 10월에는 임산부 건강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권 원장은 “산청군 보건의료원장으로 재직하던 올해 10개월간 토요일을 포함한 81일동안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사회취약계층 여성환자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며 “면허정지 기간 동안 의료봉사 활동마저 금지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행정심판에서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재차 밝혔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산청군 여성 환자들의 진료권 확보를 위해서도 면허정지 처분이 취소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권 원장은 “그동안 산청군 보건의료원에서 매일 5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해왔다. 주로 독거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빈곤 계층 등의 여성 환자들이다. 이들의 약 20%가 산부인과 진료를 필요로 한다. 원장이 진료를 중단하면 취약계층 환자들이 진주에 있는 병원까지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했다.

권 원장은 기소유예와 행정심판 청구는 마무리 됐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권 원장은 2019년 10월 15일자로 산청군으로부터 원장 직위해제를 통보 받았다.

산청군은 권 원장의 행위가 지방공무원법 제48조 성실의 의무 위반, 제55조 품위 유지의 의무 위반 및 같은 법 제69조 징계사유에 해당해 경남도에 중징계를 요구했다.

산청군복지의료원장의 인사는 최종 인사결정 승인자인 경남도에서 한다.

하지만 직위해제 조치 이후 50일이 지나도록 인사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에 권 원장은 진료도, 의료봉사도 하지 못해 "차라리 파면이라도 시켜달라"라고 수차례 말했다.

심지어 권 원장은 근로조건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처음에 산청군 보건의료원 근로조건으로 월급과 연구수당을 받기로 했다. 그동안 해왔던 노인요양시설 촉탁의도 취임 이후에 계속 하기로 했고 해외 의료봉사는 연 3회까지 인정 받는 조건을 약속 받았다. 사택도 제공받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매달 월급으로 받은 550만원이 전부였고 직위해제 이후에는 최저임금만 받았다.

권 원장은 “서류상 계약은 없고 구두상으로만 계약했다. 그러던 중 노조가 촉탁의를 하지 못하게 했고 연구비는 서류상 미비하다고 지급하지 않았다. 사택은 불법이라고 지급을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는 개개인의 행정처분만 시행하고 있다. 징계 및 직위해제 여부는 산청보건의료원 내부 규정이나 산청 보건의료원을 소관하는 기관의 규정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경남도는 12월 10일쯤 권 원장의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경남도의사회는 인사위가 열리기 전인 12월 3일 경남도를 방문해 권 원장이 평생 의료봉사에 매진해왔으며 선의로 한 일에 대해 정상 참작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한국여자의사회는 국가인권위에 관련 내용을 전달해 부당한 직위해제 구제에 나서기로 했다.

권 원장은 “원장이 인사권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의욕을 보였다. 그러다가 공무원 신분 직원들의 불만에서 시작돼 공무원 노조의 문제로 연결됐다. 산청군 측에서도 적당히만 하라고 하다가 결국 직원들의 편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며 "대한민국은 공공의료를 강화한다고 하는데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고 노조가 움직이지 않으면 원장이 아무리 의욕을 보여도 진료를 활성화하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이 오지 않고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이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권 원장은 "심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고 왔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왔다. 산청군보건의료원에서 진료를 계속하거나 여기를 떠나더라도 자유로운 신분으로 진료와 의료봉사를 계속하길 원한다"며 "하지만 원장이 산청군보건의료원을 떠나면 산청 여성들이 진주까지 가서 진료를 받고 정작 산청에는 진료 공백이 생긴다. 공공의료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공의료원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고 온 잘못이다. 의사가 공공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마음 편하게 진료하고 의료봉사를 다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당시 인터뷰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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