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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보건의료원 지원 포기한 의사 “연봉 3억 6천에 안 가는 이유 있더라”

내과 전문의 A 씨, 근무조건 안 뒤 포기
“하루 80명 진료에 응급실, 검진도 해야”
“계약서에 업무범위 구체적 명시 없어”

정창현 기자 승인 2023.01.23 07:17 | 최종 수정 2023.01.28 00:43 의견 0

최근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에 연봉 3억 6천만원에도 지원자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며칠간 오지 근무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

여론의 한편은 "저 정도의 연봉인데 의사들 배 부르다"고 했고 또다른 쪽에선 "오지이니 저렇게 거액의 연봉을 준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채용을 문의 했던 한 의사의 말은 달랐다.

23일 산청군보건의료원과 내과 전문의 A 씨에 따르면 A 씨는 최근 산청군보건의료원 채용 공고를 보고 몇 차례 연락을 했다가 근무 조건이 불확실해 지원을 포기했다.

A 씨는 병원 채용 자리를 찾던 중, 오지이지만 주5일 근무에 연봉 3억 6000만원이란 조건에 관심이 가 전화로 문의를 했다.

하지만 거액의 연봉에 가려진 업무 부담이 상당히 컸고, 의료사고 책임도 개인이 져야 해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산청에 중대형 병원이 없어 지난 1989년부터 군 보건소를 보건의료원으로 확대, 보건소를 겸해 진료가 가능한 의료원 형태로 운영 중이다. 큰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들은 가까운 진주에 있는 중대형 병원을 찾는다.

산청보건의료원 전경. 산청군 제공

A 씨의 채용 관련 전말을 들어보자.

■ 채용 조건 명확하지 않아

그는 지난 13일 산청군보건의료원에 연락해 근무 조건 등을 수차례 물었다고 말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A 씨의 문의에 입원 환자는 없고 외래환자 진료만 보고 하루 평균 80여명을 진료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위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한다고 했다.

A 씨는 위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는 날엔 외래환자 80명을 다 진료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는 "환자가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고 의료원 진료 여건을 설명했다고 한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의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전체 외래환자는 150명 정도 되는데 60~70%는 당뇨 등 만성질환자이고, A 씨가 지원하려던 내과는 하루 80명 정도 진료한다. 하루 8시간 근무 중 1시간에 10명을 진료하는 것으로 횟수가 적지는 않다.

응급실에 의사(공중보건의)가 따로 있지만 이들이 빠지는 특별한 경우 주간에 가서 보조로 진료를 봐줘야 한다. 즉 하루에 외래환자 80명씩을 보면서 응급실 근무도 같이 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동안 해온 관례였다.

근무 시간은 주 5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주말(공휴일 포함)이나 야간 당직 근무는 없지만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출근해 응급환자를 봐줘야한다.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는 야간근무이나 주말근무와 관련 "현재 명확한 업무 범위 계약 조건을 만들어 놓은 게 없다"고 했다.

현재 산청군보건의료원에는 원장과 공중보건의사 7명(한의사 제외)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조만간 4명의 복무기간이 끝나 몇 명을 충원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A 씨가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불명확한 업무 범위였다. 대체로 문제 없는 하루가 되겠지만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는 "내과라고 해서 딱 잘라 내과 진료만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진료를 하다가 외과 의사가 없으면 봐줄 수 있지 않으냐"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데 까지만 하면 된다"고 두루뭉슬하게 답했다.

하지만 A 씨로선 의료사고는 소송 분쟁까지 갈 수 있어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산청군보건의료원 관계자는 A 씨가 재차 전화를 걸어 확인하자 "업무 범위가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계약서에 내과 진료만 넣을지 ‘내과 진료 외’로 할지는 원장과 상의해서 정하겠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서 대신 업무대행계약서만 있어

소속인으로서 쓰는 근로계약서는 따로 없었다. ‘산청군보건의료원 지역보건의료사업 업무 대행에 관한 조례’에 따라 업무대행계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이를테면 정식직원이 아닌 의사면허를 가진 개업의가 산청군과 진료 업무협약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청군보건의료원 측은 "관련 조례에 따라 업무를 대행하는 계약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계약서(제6조)에는 ‘‘업무대행자는 업무와 관련한 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과 ‘산청군수를 피보험자로 하는 손해보험을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예컨대 산청군보건의료원에서 공보의 배치가 줄어든다든지 군수가 응급실 진료도 하라고 하면 계약서에 따라 해야 한다. 특히 손해보험을 개인이 별도로 가입해야 한다는 약조건은 의사에게 상당히 불리했다.

A 씨는 “군수가 어떤 일을 시킬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업무대행계약서에는 군수의 지시를 성실히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적시돼 있었다. 굉장히 불리한 계약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봉을 5억원 이상 준다고 해도 저런 조건이면 지원할 의사가 몇 명이 되겠냐”며 “높은 연봉을 제시했는데도 지원자가 없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네티즌은 "오지 지자체의 열악한 여건은 많겠지만, 적당한 인건비로 의사 두 명을 쓰면 지원자가 없을 수 있고 따라서 한 사람을 채용하면서 고액 연봉으로 포장한 채 이런 일 저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무루뭉슬하게 열어둔 게 이런 논란을 부른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한들 1년 365일 24시간을 혼자서 근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라며 "유사시에는 투석 업무까지 볼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고 근무 여건을 지적했다.

한편 산청군 보건의료원은 보건소를 겸해 진료가 가능한 의료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산청군은 중대형 병원이 없어 지난 1989년부터 보건소를 보건의료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하지만 산청군이 외딴 지역이고, 이에 따른 적정 보수를 주기가 여의치 않아 보건의료원장이나 진료과장 공모가 나도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아 있어 애를 먹고 있다. 따라서 공중보건의사들이 전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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