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4일)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이면서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입니다. 입춘은 '봄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최근 며칠새 날씨가 많이 포근해져 경남 지방에선 여기저기서 봄 기운이 움트고 있습니다. 보름 전 큰 추위의 대한(大寒)이 지나 보름 뒤면 봄기운에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옵니다.
▶악귀 물리치는 입춘방 붙여
예부터 선조들은 입춘날 한해 대길(大吉)하고 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했습니다.
입춘날 가정에서는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방문 기둥)에 붙입니다. 요즘도 많은 가정에서 이 같은 기복적인 습속을 잇고 있지요.
입춘축은 춘축(春祝), 입춘서(立春書), 입춘방(立春榜), 춘방(春榜)이라고도 부릅니다.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춰서 붙이면 좋다는 속설에 밤중이나 새벽에 붙인다고 하네요. 하지만 올해는 오전 11시 43분이 입춘의 시작으로 이 시간에 맞춰 붙이면 좋답니다. 다만 상중(喪中)인 가정에서는 붙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입춘축은 ▲큰방 문 위의 벽 ▲마루의 양쪽 기둥 ▲부엌의 두 문짝 ▲곳간의 두 문짝 ▲외양간의 문짝 등에 붙이는데 붙이는 곳에 따라 내용을 달리합니다.
옛날 대궐에서는 '춘첩자(春帖子)'라고 해서 입춘날 내전(內殿·왕비가 거처하던 궁전)의 기둥과 난관에 문신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 좋은 것을 뽑아 연잎과 연꽃 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다고 합니다.
입춘날 입춘 시간에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해 입춘축이 벽사(辟邪·귀신을 물리침)로 붙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북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춘련(春聯) 붙인다”라고 하고 이는 “봉사들이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전남 구례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방악(防惡)한다’ 또는 ‘잡귀야 달아나라’고 써 붙인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근래에는 입춘축만 붙이는 가정이 있을 뿐 절일(節日)의 기능은 없어졌습니다.
▶아직은 춥지만 대지는 이미 봄 준비
입춘은 봄 농사를 준비한다는 의미로 농경 의례와 행사가 많습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리뿌리점(麥根占)이라 해 농가에서는 입춘날 보리 뿌리를 캐어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데, 보리 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이고,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입춘날 보리 뿌리를 보고 뿌리가 많이 돋아나 있으면 풍년이 들고 적게 돋아나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했고, 경기도 시흥·여주, 인천에서는 입춘 때 보리뿌리를 캐어 보리의 중간뿌리(中根)가 다섯 뿌리 이상 내렸으면 풍년이 들고, 다섯 뿌리에 차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했답니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마산리에서는 입춘 때 보리뿌리를 뽑아 살강 뒤에 놓아두면 보리뿌리가 자라는데, 보리 뿌리가 많이 나면 길하고 적게 나면 그해 보리가 안 된다고 예측했습니다..
충남에서는 입춘날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집안과 마룻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체를 엎어두었다가 몇 시간 뒤에 들어보면 어떤 곡식이 한 알 나오는데, 거기에서 나온 곡식이 그해에 풍년이 들 곡식이라 한다네요.
입춘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병이 없으며 생활이 안정되나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합니다.
입춘날에 눈보라가 치는 등 날씨가 나쁘면 ‘입춘치’라 하는데 ‘치’는 접미사로 보름·그믐·조금 또는 일진의 진사(辰巳)·술해(戌亥) 같은 것에 붙여 그 날 무렵에 날씨의 나빠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여인이 남의 집에 가면 그 집의 논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어 조심한다고 합니다. 또 이날 집안 물건을 누구에게도 내주는 일이 없는데 만일 집 밖으로 내보내면 그해 내내 재물이 밖으로 나가게만 된다고 여겼답니다.
전남 구례에서는 입춘날 절에 가서 삼재(三災) 풀이를 하는데 삼재를 당한 사람의 속옷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이라 쓰고 부처님 앞에 빌고 난 후 속옷을 가져다가 불에 태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경남 창녕군 영산에서는 이날 새알심을 넣지 않은 팥죽을 끓여 먹고 집안 곳곳에 뿌려 벽사(辟邪)를 했다고 하네요.
충청도에서는 이날 보리 뿌리가 내리기 때문에 보리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보리밥을 해 먹었고, 전남 무안에서는 입춘이 일년에 두 번 들면 소금 시세가 좋다고 한답니다.
함남 북청에서는 이날 무를 먹으면 늙지 않는다고 하여 무를 먹고, 잡곡밥은 먹지 않고 흰쌀밥을 먹으며, 이날은 나이 먹는 날이라 해서 명태순대를 해 먹습니다. 함남 홍원에서는 이날 남자들이 명태를 통째로 쪄서 먹으면 등심이 난다고 해 먹었답니다.
입춘날 입춘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함경도에서는 민간에서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습니다.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경기도 산골지방(畿峽)의 육읍(楊根),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漣川)]에서는 총아(葱芽·움파)·산개(山芥·멧갓)·신감채(辛甘菜·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어 임금께 진상했습니다.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오신반(다섯 가지의 자극성이 있는 나물로 만든 음식)을 장만해 수라상에 올렸다네요.
오신반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요리로 엄동(嚴冬)을 지내는 동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게 한 것입니다.
또 이것을 본떠 민간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으며, 춘일 춘반(春盤)의 세생채라 해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간에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습니다.
▶입춘 속담
입춘 무렵의 큰 추위와 관련한 속담이 있습니다.
'입춘에 오줌독(장독·김칫독) 깨진다',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는 속담이 있고,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는 입춘이 지난 뒤에 날씨가 몹시 추워졌을 때를 말합니다.
또 입춘 무렵에 추위가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거나 격(格)에 맞지 않는 일을 엉뚱하게 하면 '가게 기둥에 입춘이랴(假家柱立春)'고 합니다.
■참고 자료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cm, 세로 70cm 내외의 한지를 두 장 마련해 쓴다. 한지를 마름모꼴로 세워 ‘용(龍)’자와 ‘호(虎)’자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입춘축은 대개 정해져 있으며 두루 쓰는 것은 대구(對句)·대련(對聯)·단첩(單帖·단구로 된 첩자)으로 돼 있다.
대구의 내용은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기주오복 화봉삼축(箕疇五福 華封三祝) ▲문신호령 가금불상(門神戶靈 呵噤不祥)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등이며, 대련은 ▲거천재 내백복(去千災 來百福)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계명신세덕 견폐구년재(鷄鳴新歲德 犬吠舊年災) 등이다.
단첩으로는 ▲상유호조상화명(上有好鳥相和鳴) ▲일진고명만제도(一振高名滿帝都)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楣)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등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