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적한 자승스님이 흰 통 2개 들고 사찰로 들어간 뒤 화염
경찰, 경기 안성 칠장사 화재 합동감식
CCTV 확인 결과 다른 출입자 없어
‘검시 말라’ 등 메모 2장 필적 감정 의뢰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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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30 21:51 | 최종 수정 2023.12.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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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69) 스님이 입적한 칠장사 화재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스스로 극단 선택을 한 것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
불교에서 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친다는 '소신공양(燒身供養)'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다만 의문점은 최근까지 언론 간담회를 하는 등 강한 포교 의지를 보여 극단 선택의 동기가 적다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경기남부경찰청은 30일 화재 현장에서 원인 규명을 위한 합동 감식을 벌였다. 감식팀은 최초 발화점과 불에 탄 흔적 등을 토대로 화재 원인을 찾는 데 주력했다.
전날 오후 6시 50분쯤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천년고찰인 칠장사 내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에서 불이 나 조계종 33대·34대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이 입적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자승은 전날 오후 3시 11분쯤 자신의 차량으로 칠장사에 도착했다. 주지 스님을 만난 자승은 메모지와 펜을 빌렸고, 주지 스님은 자승에게 요사채의 문을 열어 준 뒤 떠났다.
경찰이 확보한 CCTV에는 자승이 요사채로 드나든 모습 등 법구로 발견되기 이전까지 장면도 담겨 있다.
자승은 오후 4시 24분쯤 가연성 물질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하얀색 플라스틱통 두 개를 들고 요사채로 들어갔다. 이후 요사채에서 나와 주차된 차량을 이동시키고 다시 요사채에 들어간 지 몇 분 후 오후 6시 43분쯤 화염이 치솟았다. 자승은 화재가 일어나기 7분 전쯤 요사채 창문을 닫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찰 내·외부 CCTV 영상 확인 결과 불이 날 당시 요사채에는 자승 스님 외 다른 출입자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며 “화재 당시 사찰 내 다른 장소에 있던 주지 스님 등 3명은 참고인으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자승이 타고 온 차 안에서 발견된 2쪽 분량의 메모도 자승이 직접 작성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필적 감정을 전문기관에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메모에는 “이곳에서 세연을 끝내게 돼 민폐가 많았소. 이 건물은 상좌들이 복원할 것이고, 미안하고 고맙소. 부처님법 전합시다”라고 칠장사 주지 스님에게 전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또 “검시할 필요 없습니다.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CCTV에 다 녹화돼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라는 내용이 사인과 함께 있었다.
소방 당국은 오후 6시 50분쯤 칠장사에 머물던 보살의 119 신고를 받고 18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진화 작업을 시작했고, 오후 7시 47분쯤 건물 내부에서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이날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등 17명은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자승의 입적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확인하라.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충격에 휩싸였고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조계종 대변인 겸 총무원 기획실장인 우봉 스님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자승 스님이 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으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밝혔다.
우봉 스님은 “자승 스님께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송(스님이 입적에 앞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남기는 말이나 글)을 남겼다”고 전했다.
자승의 장례는 5일장인 조계종 종단장으로 진행된다. 전직 총무원장의 종단장을 조계사에서 엄수하는 것은 자승이 첫 사례다. 장의위원장은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이 맡는다.
분향소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마련됐다.
진우 스님이 가장 먼저 분향한 데 이어 유인촌 문화체육관강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분향소를 찾았다.
영결식은 오는 3일 오전 10시 열린다. 다비장은 자승의 소속 본사인 경기 화성 용주사 연화대에서 거행된다.
자승은 두 번의 총무원장을 역임하는 등 지난 10여년간 조계종의 최고 실력자였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의 회주(기업의 명예회장 직책)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상월결사를 만든 뒤 부처의 말씀을 널리 퍼뜨리는 전법 활동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