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69)이 29일 오후 사찰의 화재로 입적(入寂·스님 사망) 했다. 화재 현장 인근에서는 자승 스님이 쓴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 2장이 발견됐다. 세수(歲壽·세속 나이) 69세, 법랍(法臘·출가 후 나이) 44년이다.
소방 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29일 오후 6시 50분쯤 경기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칠장사에서 화재가 발생해 스님 1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이 시신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인 것으로 확인했다.
소방 당국은 소방 대원 63명, 펌프차 등 장비 18대를 동원해 약 한 시간 만에 큰 불길을 잡았고, 요사채(사찰 내 숙소) 내부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자승 스님의 시신을 발견했다.
현장에는 자필로 보이는 메모(유서) 2장이 발견됐다.
'자승'으로 쓰인 한 장의 메모에는 ‘검시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CCTV에 다 녹화되어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다른 하나의 메모에는 '칠장사 주지스님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하는 내용을 적었다.
경찰은 메모 필적을 자승스님이 직접 작성한 것인지를 조사 중이다.
자승은 조계종 총무원장, 승가학원 이사장, 서울 강남구 봉은사 회주(會主·법회를 주관하는 법사)를 지냈고 현재 동국대 건학위원회 총재로 있다.
자승은 조계종단의 대표적인 사판승(事判僧·사찰의 운영과 여러 사무만을 관장하는 승려)으로 꼽힌다. 사판승과 대별되는 이판승(理判僧)은 속세를 떠나 절에서 수도만 하는 스님을 일컫는다. 이판사판이 여기서 나왔다.
자승은 1954년 강원 춘천에서 태어나 18세 때인 1972년 해인사에서 대표적인 학승(學僧)인 지관스님(동국대 총장 역임)을 계사로 사미계를, 74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을 거쳐 1992년 10대 중앙종회 의원으로 종단 중앙무대에 발을 들였고 1994년 종단 개혁 과정에서 승적 정정 문제로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1996년 11대 중앙종회에 재입성해 종회 사무처장, 12~14대 중앙종회 의원을 지냈다.
자승은 특유의 친화력과 조정력으로 지난 2009년 55세의 젊은 나이로 제33대 총무원장이 된다.
당시 선거에서 총 317표 중 290표를 얻어 역대 최고 지지율로 당선됐고 2013년에 재선됐다. 조계종단에서 견제했던 4대 종책모임(화엄회·무량회·보림회·무차회)이 연대해 자승 을 밀었다. 하지만 이 선거 과정에서 총무원장 때인 1년 전 승려들의 도박 파문이 일어 전국선원수좌회 등에서 연임을 반대했다.
지승은 템플스테이와 사찰 음식을 통해 한국 불교를 알리는 데 힘썼고, 사찰 재정을 공개하는 등 불교계 재정을 투명화에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인사권을 무리하게 행사해 비판을 받았다.
2010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를 조계종 직영 사찰로 지정하는 것을 둘러싸고 당시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최근에는 죽산면에 있는 아미타불교요양병원의 명예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아미타불교요양병원은 조계종 스님들의 노후를 돌보는 무료 병원으로 지난 5월 개원했다.
자승은 가끔 칠장사에서 머물렀고 이날도 칠장사를 찾았다.
2021년에는 동국대 건학위원회 고문이자 총재로 학내 실권까지 잡아 총무원과 동국대란 조계종 내 가장 큰 2개의 권력을 모두 잡았다.
자승은 최근까지 외부 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이달 27일에는 봉은사에서 불교계 언론사와 간담회를 갖고 “앞으로 10년간 대학생 전법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칠장사(七長寺)는 궁예, 임꺽정, 어사 박문수와 관련한 설화로 유명한 천년 고찰이다. 1983년 9월 경기도문화재 24호로 지정됐다. 다만 화재로 인한 문화재 훼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자세한 화재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