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자 유소년 축구 훈련 기관인 ‘SON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손웅정 감독이 아동학대 혐의로 피소된 가운데, 손 감독 측과 피해 아동의 아버지 간에 합의금 액수를 두고 흥정하는 녹취록이 28일 공개됐다.
아동학대 혐의는 'SON아카데미'에서 진행한 지난 3월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발생했다. 체력 훈련 선착순 달리기에서 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한 선수들에게 코너킥 깃대봉으로 허벅지를 한 대씩 때렸다. 피해 아동의 허벅지에 전치 2주의 멍자국이 났다.
인터넷 연예 매체엔 디스패치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손 감독 측 법률대리인인 김형우 변호사(법무법인 명륜)는 지난 4월 19일 피해 아동의 아버지 A 씨와 모처에서 만나 합의금 흥정을 했다.
당시 A 씨는 손 감독 측에 합의금 5억 원을 요구했다. 손 감독이 손흥민의 아버지인 점 등 유명인이라는 이유였다.
A 씨는 "저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얘기 할 것 아니냐. 변호사가 '20억이든 불러요. 최소 5억 밑으로는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진짜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어떤 변호사냐. 알려주면 직접 얘기해보겠다"고 물었다.
김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합의는 아이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이의 정신적 피해를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하자 A 씨는 "그런 정신 피해는 다 지났다. 부모의 정신 피해도 있다. 아이로 계산하면 1500만 원이 맥시멈(최대)이다. 아이한테 보장할 수 있는 금액은 그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 특이 상황 아니냐"고 했다.
그는 "손 감독하고 손흥윤(손흥민 형)하고 다 껴 있다. 합의하려면 돈이 중요한데 이미지 실추 생각하면 5억 원 가치도 안 되냐"며 "연예인이 택시 타서 기사 싸대기 한 대 때렸다고 2억~3억 원씩 주고 합의하고, 김○○이 술 마시고 사람 때렸다고 5억 원씩 주고 합의하는 판국"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가 "5억 원은 좀 심하지 않으냐"고 하자 A 씨는 "심한 거 아니다. 지금 (손흥민이) 4000억 원에 이적한다 뭐 한다고···."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엄밀히 따지면 손흥민 선수의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A 씨는 "손 선수 일이 아니어도 손웅정이 에이전시(대행사)를 차려서 본인이 하고 있다"고 받았다.
A 씨는 이어 "저는 20억 원 안 부른 게 다행인 것 같은데···."라며 "언론사나 축구협회에 말해서 (아카데미)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다"고 겁박성 말을 던졌다.
김 변호사가 "아카데미도, 감독님도 그렇게 돈이 없다"고 하자 A 씨는 "저는 그런 거는 모르겠고. 나 봐주는 변호사가 이XX 변호사이에요. 판사장 출신. 저도 사업하다 보니 변호사 쓸 일이 많아요. 고민하지 마세요. 그냥 얘기하셔서 정리하시면 되지"라고 했다.
또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축구 감독 하는 친구도 있다. '축구협회에 넣으면 어떻게 되냐' 안 물어봤을 것 같나. 자격증 정지 또는 취소지 않나. 5억 원이든, 10억 원이든 돈이 아깝냐"라고도 했다.
그는 "5억 원이라고 전달해라. 전 그쪽(아카데미)에서 연락 오면 3억 원까진 해드릴 용의가 있다. 그 밑으로 할 용의는 없다"고 했다. 특히 "그쪽에서 5억 원을 준다면 내가 김 변호사한테 현금으로 1억 원 주겠다"며 뒷거래를 제안했다.
그는 "언론에 나갈 일 없고, 보도할 일도 없고, 경찰에서 새어 나가도 오해라고 말하겠다"며 스스로 '비밀유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손 감독은 단호했다.
그는 'SON 축구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욕설과 체벌에 대해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할 생각은 없다"며 인정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피해 보상을 위해 3000만 원의 합의금을 준비했다. 지난 4월 9일 손흥윤 코치 등이 직접 찾아가 사과도 했다. 손 감독은 A 씨와 변호사 간에 어느 정도 합의가 조율되면 다시 약속을 잡을 계획이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A 씨는 "언론에 보도 되든 말든, 신경 안 쓸 거면 2000만~3000만 원에도 합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김 변호사가 "그럼 비밀유지 조항 없이(넣지 않고) 2000만 원은 안 되냐"고 묻자 A 씨는 "변호사비 하면 남는 것도 없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비 해서 3000만 원은 어떠냐"고 물었다. A 씨는 "아니다. 제가 처벌불원서까지 써가면서 뭐 하려고 그런 짓을 해야 하는지"라고 했다.
두 사람의 합의금 협상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A 씨는 "인터넷에 물어볼까요? 그럼 10억 얘기할까요?"라며 "제가 인터넷에 글을 띄웠어. '이런 사건 합의하려고 하는데 얼마 받을까요' 하면 댓글 뭐라고 나올 거 같아요? 100억 불러라, 30억 불러라 할 거에요"라고 했다.
그는 '비밀 유지'도 5억 원의 근거로 들었다.
A 씨는 "비밀을 다 보장하고 묻으면? 10억이든 5억이든 아까울 게 없다는 거죠. 본인들 이미지 타격 없이 여기서 정리한다는데. 그럼 5억도 싼 게 아니냐고요"라고 했다.
녹취록 말미에 A 씨는“(합의를 안 할 경우) 손 감독만 잘못되는 게 아니지 않나. 손흥윤도 집 어마어마하게 크게 사서 지었지 않냐”며 “진짜 짜증나면 (금액) 더 올라갈 수 있으니까 얘기 잘해보길 바란다”고 했다.
이렇게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다 끝났다.
손 감독은 “잘못한 부분은 처벌받겠다”며 합의금 부분을 양보하지 않았다.
A 씨가 바빠졌다. 5월 5일(어린이날) 그는 김 변호사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그는 "변호사님 봐서 저도 양보할 테니 2억에 그냥 합의해요. 더는 양보 힘듭니다. 저도 솔직히 이렇게 나오시니 할 말도 없고. (변호사비) 3000~4000만 원은 줘야 하는 상황인데. 변호사님 얘기가 맴돌고 저도 계속 고민도 많아지고 더 이상 결단을 내야지 안 되겠습니다"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아버님,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협상 단계가 아니라 이미 지난 금요일에 저희 합의가 불발되었다고 통보해 드렸는데요"라며 잘랐다.
그러고서 한참 뒤인 5월 30일 A 씨가 김 변호사에게 다시 전화로 합의금을 물었다.
그는 "변호사님. 저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도 그거 받아서 뭐 이것저것 하고···. 그냥 1억 5000만 원 이야기해 보세요"라고 말을 던졌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제가 사정하고 설득해서 1억 원을 말씀드렸는데. 그때도 워낙 단호했어요. 1억 5000원은 말을 안 한 것만 못한 것 같은데요"라고 댑했다.
A 씨는 "안 한 것만 못하다? 알겠어요. 저도 움직일게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A 씨는 이후 아이의 허벅지에 멍이 든 사진을 한 언론사에 제보하고 일부 매체와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이 사건을 알렸다.
A 씨는 또 손 감독과 손 감독의 큰아들 손흥윤 코치 등 3명을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현재 검찰에 송치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A 씨 측은 "아들이 코치로부터 허벅지 부위를 코너킥봉으로 맞아 2주간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또 코치가 꿀밤을 때리고 구레나룻을 잡아당겼다고 주장했다. 손 감독으로부터 욕설을 들었다고도 했다.
A 씨 측의 변호를 맡은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손 감독은 아무런 사과도, 연락도 없는 상태에서 김 변호사를 통해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제출할 것', '언론에 절대 알리지 말고 비밀을 엄수할 것', '축구협회에 징계 요구를 하지 말 것' 등 3가지를 조건으로 제시했다"며 "이런 태도에 분노한 피해자 측이 분노의 표현으로 감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일 뿐이고, 진지하고 구체적인 합의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했다.
A 씨도 이날 방송된 SBS '모닝와이드'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손 감독 측의 조건 제시에 저는 '얼마나 사람을 우습게 알고 가볍게 봤으면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이런 조건을 달면서 합의하자고 하는 거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화가 나서 '그럼 5억 원 주시던가요'라는 얘기가 거기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집사람하고 저하고 지금 파렴치한, 돈 뜯어내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부모가 됐다.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가 흥정한 녹취록이 온전히 공개되면서 A 씨의 말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온라인에서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A 씨의 흥정 행태를 맹비난하고 있다.
한편 이후 합의금 요구를 둘러싼 녹취록이 나오자 A씨의 변호사는 한 언론 매체에 "이번 갈등으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피해 아동이다. 이 논쟁이 더 이상 불거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꼬리를 내리는 듯한 입장을 내놓았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장서 생긴 일
'SON축구아카데미'는 중등부 축구리그 출전을 앞두고 실전 훈련차 지난 3월 7~12일 일본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갔고 체벌 건은 9일에 일어났다. 손 감독은 현장에 없었다.
손 감독의 큰아들 손흥윤 수석코치가 주관한 체력 훈련에서 체벌이 있었다. 추가 체력훈련 하프라인 선착순 달리기에서 20초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허벅지를 맞기로 했다.
4명의 선수가 20초를 끊지 못했고 그 안에 A 씨의 아들도 있었다. 손흥윤 코치는 코너킥 깃대봉으로 4명의 허벅지를 1대씩 때렸다. A 씨의 아들 허벅지에 전치 2주의 작은 멍이 들었다.
SON아카데미 훈련은 부모가 언제든지 참관할 수 있는 등 공개로 진행된다. 오키나와에는 학부모 2명이 동행했다. 현장에 있던 유소년 선수 B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도 20초 안에 들어오지 못해 허벅지를 맞았다"며 "4~5년을 다녔는데 체벌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는데 과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훈련 과정 중 하나로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훈련을 끝내고 웃으며 밥을 먹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