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현 기자
승인
2022.02.15 12:52 | 최종 수정 2022.04.07 03:20
의견
0
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소소하고 세세해 지나치는 궁금한 것들을 찾아 이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코너를 마련합니다. 유레카(eureka)는 '알았다!'라는 뜻입니다.
첫 사례는 보리밟기입니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보리밟기'란 게 있었습니다. 해마다 지금쯤에 했던 밭농사 작업의 하나입니다. 먹을 게 여의치 않을 때 보리 증산을 위한 농사법인데 공무원, 학생 등이 많이 동원됐었지요.
보리는 겨우내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 뿌리가 들떠 있어, 밟아줘야 땅 속이 마르지 않고 뿌리도 뜨지 않아 땅에 잘 내립니다. 겨울철 서릿발로 공간이 뜨기 때문이지요. 요즘 같은 가뭄 때 수분 공급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뿌리가 땅의 습기를 빨리 흡수해 성장이 빨라진다는 뜻입니다.
또 보리가 웃자라서 동사하는 것을 막고 겨우내 영양분을 몸에 담아 잎이 여러 장으로 움트도록 돕는다고 합니다.
이 말고도 용도가 있네요. 밟을 때 보리 몸체에 생기는 상처로 인해 수분 증산이 많아져 세포 속의 농도가 높아지고, 생리적으로 내한성(耐寒性)을 높이는 효과가 있답니다.
조금은 다른 듯하지만 봄동은 날씨가 춥거나 가물 땐 이를 이기기 위해 영양분을 뿌리로 내려 내성을 강화합니다. 이래서 봄에 먹는 뿌리가 꽤 달다고 합니다. 인기가 있어 상품화 돼 값도 제법합니다.
힘들게 왜 보리밭을 밟지 했는데, 이런 과학적인 내면이 있었네요.
보리밟기는 보통 음력 12월~정월에 합니다. 개별 농가에서 하지만 가족이 하기엔 큰 일이지요. 학창 시절 전교생이 보리밭으로 나가 줄지어 서서 밟았지요. 3355 짝을 지어 걸으며 조잘대 들판이 소란스러웠지만 밟기는 좀 지루했단 생각이 듭니다.
1950년대에는 전국에 보리밟기 동원령이 내려져 '보리밟기 소리'란 말도 생겼다고 합니다. 관련 동영상을 보니 뒷집을 쥐고 천천히 보리를 밟는데, 중간에 덩싱등실 춤 사위도 나옵니다. 지루함을 더는 추임새이겠지요.
그 이후인 20~30년 전에는 롤러 기기인 답압기(踏壓機)가 나와 겨우내 부풀어져 있는 보리밭을 다졌습니다.
일각에서는 보리밟기에 강제 동원을 했다느니 비판을 하는데, 그 때 그 시절 농촌 상황을 고려하면 별 설득력을 못 가집니다. 서로를 돕는 우리의 미풍양속인 두레는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 두레도 농번기에 혼자서 하기에 힘들어 한 방면으로 만들었다면 보리밟기도 이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것같습니다. 학생들의 보리밟기도 요즘으로 치면 야외학습정도 되겠지요.
저렇게 겨울과 가뭄을 이기고 자란 보리는 6월달 쯤에 누렇게 익어 벱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