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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유레카!] 강원 산불 주범 양간지풍(襄杆之風)이란?

정기홍 기자 승인 2022.03.05 13:34 | 최종 수정 2022.04.07 03:20 의견 0

더경남뉴스는 일상에서 소소하고 세세해 지나치는 궁금한 것들을 찾아 이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코너를 마련합니다. 유레카(eureka)는 '아하, 알았다!'라는 뜻입니다.

4~5일 경북 울진과 강원 일대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해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산림·소방 당국은 최근 10년 이내 최대 피해 규모로 보고 있고요. 건조한 대지에 강한 바람마저 불어 대형 산불의 도화선이 됐다고 합니다.

강원 북부 지방엔 이른 봄에 양간지풍(襄杆之風)라고 불리는 바람이 있습니다. 강원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국지풍입니다. 양간이란 강원 동해안의 양양과 간성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달리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고 하는데, 양양과 강릉을 말합니다. 양양 주민들은 '불을 몰고 온다'며 화풍(火風)으로도 부른다고 하네요.

이 바람은 고온건조한 상태에서 풍속도 꽤 빨라 태풍급 국지풍도 붑니다. 따라서 대형 산불의 또하나의 축이 됩니다.

두산백과 제공

이번 울진·삼척과 강릉의 산불이 급속히 확산한 것도 양간지풍의 영향이 큽니다. 5일 오전 4∼6시 울진 온정면과 삼척 원덕읍 월천리에 초속 21.5m와 초속 15.2m의 강풍이 몰아쳤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동해안 일대에는 이날 건조특보와 강풍경보가 발효된 상태였습니다.

지난 2005년 4월 5일 강원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천년고찰 낙산사를 잿더미로 만든 인근 산불 때도 양간지풍의 위력이 대단했었지요. 당시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32m까지 관측됐습니다. 공교롭게도 전소된 이 날은 식목일이었습니다.

2019년 4월 4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발생해 1757㏊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든 '고성 산불' 때도 미시령의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35.6m였습니다. 이례적으로 강풍을 만나 속초 시내를 위협하기도 했네요. 당시 바람 세기는 새가 날아가지 못하고, 물 대포의 물줄기가 꺾여 소방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1만 가구에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 양간지풍 발생 원인

이 바람은 봄철 '남고북서'(남쪽 고기압, 북쪽 저기압) 형태의 기압 배치에서 서풍 기류가 형성될 때 자주 발생합니다.

국립기상연구소 분석을 근거로 양간지붕이 생기는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해마다 봄철에는 한반도 남쪽에 이동성 고기압이 위치하고, 북쪽에는 저기압이 자리하지요.

남고북저의 기압 배치 상태에서 강원 지역에 따뜻한 서풍이 불고 영서와 영동 지방의 차가운 공기 위에 따뜻한 공기가 자리해 역전층을 형성합니다. 역전층은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기온이 상승하는 층입니다.

그런데 역전층 아래에 위치한 차가운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상층의 따뜻한 공기와 태백산맥 사이의 좁은 공간을 압축해 지나면서 풍속을 빠르게 만듭니다. 태백산맥을 지난 차가운 공기가 태백산맥을 가파르게 내려가면서 풍속이 더욱 빨라지며, 고도가 낮아지면서 공기덩어리 내부의 기압과 기온이 높아지고 습도가 낮아집니다.

보통 영동지방에서는 초속 15m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관측된 최대 풍속은 초속 46m입니다.

태백산맥을 지나고 나서 공기가 고온건조해지는 특성은 '푄 현상'인 높새바람과 비슷합니다. 높새바람은 늦봄과 초여름에 영동지방에서 영서지방으로 부는 동풍으로, 태백산맥을 오르는 동안 수증기가 응결해 구름을 생성합니다.

하지만 양간지풍은 발생 과정에서 수증기가 응결하지 않고 역전층을 유지하며 서풍으로 태백산맥을 넘습니다.

또 상층 대기가 불안정한 역전층이 강할수록, 영동지방의 태백산맥 경사가 심할수록, 해풍이 부는 주간보다 차가운 육풍이 부는 야간에 풍속이 강해집니다.

▶ 양간지풍, 진화 무력화 주범

이 때문에 산불 진화 헬기를 무력하게 만듭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실험 결과, 산불이 났을 때 양간지붕급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강풍에 불똥이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飛火) 현상'도 일으킵니다. 비화는 마치 도깨비불처럼 수십∼수백m를 건너뛰어 불씨를 옮겨 산불 진화에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지요.

이번 울진·삼척 산불도 강풍을 타고 최초 발화지점인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도 경계를 넘어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일대까지 확산해 삼척 LNG 생산기지를 위협하기까지 불과 4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다 인화력이 강하고 내화성이 약한 소나무 단순림은 동해안 대형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지요.

산림 당국에 따르면, 울진·삼척 산불로 인한 피해는 5일 오전 11시 현재 3500ha(울진 3240ha, 삼척 260ha)가 잿더미가 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또 주택 116채가 소실되는 등 158곳에서 재산피해가 나고 울진과 삼척 35개 마을 주민 6126명이 대피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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