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이바구 민심] 정치판에 '파전과 동그랑땡' 자주 올리자

정기홍 기자 승인 2022.03.23 19:56 | 최종 수정 2022.04.07 03:14 의견 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집무실 앞에 있는 '천막 기자실'을 방문해 15분 간 기자들과 차 간담회를 했습니다. 기자들이 이곳을 '프레스다방'이라고 붙였다네요.

이른바 '차담'인데, 글짜 짜맞추기를 좋아하는 기자들이 만든 억지성 단어입니다. '차담(談)', 차를 놓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차 다(茶)이니 '다담(談茶)'이 정확하겠지요. 극히 일부에선 '茶'를 차 차로 합니다만 정석은 아닙니다.

기자들이 '티타임'을 건네자 윤 당선인은 종이컵에 둥굴레를 타고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네요.

일반인들이 자주 들르지 않지만 기자실은 아주 서민적입니다. 윤 당선인이 "냉장고에 뭐 있나?"며 열어봤다는데 별 거 없습니다. 물과 음료수 정도로 단촐하지요. 냉장고 옆에는 대체로 봉지커피도 기자들이 직접 타서 먹을 수 있고요. 커피 한잔 타 먹을 때 가는 지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자들더러 "소주만 얻어먹고···"라고 했지만 기자실은 대체로 이 정도입니다.

이날 한 기자가 지난 16일 점심으로 먹었던 통의동 김치찌개 얘기를 꺼냈다네요. 윤 당선인은 "그 집 김치찌개가 시원하더만…우리 학교 다닐 때도 파전에 동그랑땡 파는 집이 많아서 옛날 생각나더만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글쎄요. 서울대 근처 먹자골목인 신림동 동그랑땡집을 말한 건 지는 모르겠지만, 인수위 건물이 있는 통의동엔 통인시장이나 시장같은 골목길(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 파전과 동그랑땡을 붙이는 서민 식당이 많이 있습니다.

광화문에는 신문사가 많아 기자들도 종종 들러 막걸리 한사발을 하는 곳입니다. 기자들이 자주 가니 인근 정부 청사 공무원들에게도 알려지고, 이어 입소문이 나 있고요. 물론 시민들도 자주 들릅니다. 코로나19 공습 이전엔 평소에도 음식점 안이 많이 붐빕니다.

파전과 동그랑땡 말이 나오니 종로의 명물이던 '피맛골'이 생각납니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말을 타고 다니던 고관대작들을 피해 하급관리나 서민들이 지나다니던 ‘피마(避馬)’에서 유래된 지명입니다.

2006년 피밋골 전경. 서민풍이 물씬 풍기던 곳이다. 더경남뉴스 DB

오세훈 현 시장이 이전 시장으로 있을 때 이 일대를 재개발한다며 피맛골을 없앴습니다. 없앤다는 말이 나왔을 때 무척 아쉬웠지요. 없애지 마라는 기사들도 이어졌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건물주들의 고집이 있었겠지만 '오세훈식 개발지상주의'가 피맛골 추억을 지웠다는 판단입니다. 정책 판단의 중요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건물을 올릴 때, 통로는 내고 옛길 흉내는 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길을 지나는 시민들이 피맛골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골목 위로 엉겼던 전깃줄과 아무렇게나 달린 간판 등 골목 정취는 깡그리 없어졌지요. 가게 바깥에서는 생선구이를 많이 팔아 점심 때면 생선을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었습니다. 딱딱했던 싸구려 탁자는 이젠 더더욱 흔적을 찾기 힘듭니다.

지금의 신식 빌딩 1~2층 외벽에 피맛골 골목 집들의 외부를 떼네 그대로 붙였다면 지금쯤 지나는 시민마다 한마디씩 하겠지요. 유명한 포토존이 됐을 겁니다. 코로나피해도 어렵지 않게 넘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울시와 건물주들의 단견을 생각하면 무척 속이 쓰립니다

기자와 가깝게 지냈던 서울 출생 선배가 대학 때 피맛골에 자주 와서 동그랑땡을 시켜먹었다며 이 목목에서 점심·저녁 약속을 자주 했었습니다. 동그랑땡 등 빈대떡이 맛 있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서민 분위기에 취해 막걸리잔도 무척 많이 기울였지요. 찍어 먹는 간장엔 양파 몇 조각을 썰어 양념한 게 전부였습니다. 딱딱한 의자에 오래 앉아 있기가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은 깊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피맛골 비슷한 경우가 광화문광장입니다. 이것도 오 시장의 작품이지요. 서울을 새로 디자인 한다고 하면서 이름을 '서울 르네상스'라고 했었나요? 덩그렇게 광장을 만들어놓고 국적도 없는 파라솔을 많이 두었지요. 기자는 자주 오갔지만 파라솔에 앉은 시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정이 가지 않는 휑한 광장일 뿐이었습니다. 결국엔 아무 쓸모 없이 시위 현장으로 바뀌고 말았지요.

윤 당선인은 이날 기자실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이전 하면 저녁에 김치찌개 양을 많이 끓여 대접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기자실을 자주 가고, 기자와 서민들을 자주 만나는 대통령은 무조건 좋습니다. 현장을 알면 실패하기 힘듭니다. 이래서 서민의 말 한마디가 무서운 겁니다.

윤 당선인은 김치찌개, 국밥 등 서민 음식을 좋아하고 먹성이 좋다고 알려졌습니다.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 하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시쳇말로 '잇발을 갔다'는 말입니다. 서민적인 품모는 일단 괜찮다고 봅니다. 한번 딜인 입맛은 크게 바꾸질 못합니다.

윤 당선인 당선 후 메뉴 선택권과 관련해선 "주는대로 먹고, 예약한 데로 간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가 인수위 관계자들과 했던 김치찌개 점심 모습을 보면서 다시는 '피맛골 참사'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다신 시위 공간으로만 활용되는 '광화문의 섬'을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앞으로 2개월 10일이면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선거 때 말고, 동네시장 자주 찾는 후보를 뽑으면 실패는 없겠습니다. 선거 운동에 고생했다고 저녁에 고급 고깃집이나 횟집만을 찾는 후보를 가려냅시다.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