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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 한 그릇 맘 놓고 못 먹어"…국민은 지금 외식 물가가 두렵다

두 명이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면 6만~8만원
직장인 즐기 는 김치찌개는 이미 1만원 자리잡아
풀린 코로나 지원금에 우크라 사태 장기화 영향

정창현 기자 승인 2022.05.24 21:59 | 최종 수정 2023.02.14 03:22 의견 0

2년 전 정년퇴직을 한 60대 A 씨는 소위 말하는 서민음식을 좋아한다.

순대국은 물론 김치찌개, 치맥은 거의 1주일에 한 두번씩은 먹는다. 이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막걸리나 소주, 호프를 곁들인다. 돈이 궁해서가 아니라 천성이 이런 음식을 좋아한다.

그런 그가 요즘 지갑을 닫았다. 식당에 가서 국밥을 먹을 땐 술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는 "안 먹는 버릇 하니까 안 먹게 되더라"며 "고물가가 습관 하나를 잘 고쳤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돼지국밥. 김두수 독자 제공

그의 말을 들어보자.

그의 단골집들은 대체로 싸면서도 가성비가 좋았던 집이다. 그런데 최근 몇달 새 모든 단골집 메뉴판이 바뀌었다. 채소값, 밀가루값, 식용유값 등 음식을 만드는 재료비가 너무 올랐다는 게 이유다.

국밥집은 한 그릇에 7000원 하던 순대국을 8000원으로 올렸다. 여기에다가 좋아하는 막걸리가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평소엔 순대국에 막걸리 두병은 먹는다. 이전엔 1만 3000원이면 족했던 게 저녁 한번 먹으면 무려 3000원을 더 내야 한다. 몇푼 안 되는 것 같지만 의식적인 부담이다.

그는 주일에 한번 씩 지인들과 술 한잔 씩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요즘 뜸해졌다고 했다. 코로나 중에도 종종 한잔 하자며 전화 하던 직장 가진 후배들의 기척도 거의 없다고 전했다.

전국이 물가고에 아우성이다. 올라도 너무 오른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진주의 한 식당 모습. 정창현 기자

가격을 올렸다고 음식점 주인이 더 버는 것도 아니다. 재료값에다 직원들의 인건비 등 부담이 너무 커졌다. 코로나 지원금이 너무 많이 풀리면서 시중에 돈이 너무 돌아 인플레 현상이 생겼고, 여기에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원자재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 같은 큰 걱정 속에서도 다행스런 것은 코로나 거리두기가 해제돼 손님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직장인들 세상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인 점심 대표메뉴인 김치찌개는 이제 1인 '1만원' 시대로 자리를 잡았다.

김두수 독자 제공

40대 개인사업자인 B 씨는 최근 친구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했다. 입가심으로 시원한 물냉면 한그릇씩을 먹었다. 6만 6000원이 나왔다. 삼겹살 3인분 4만 2000원(1인분 1만 4000원)에 소주 3병 1만 2000원, 냉면 2인분 1만 2000원이다. B 씨의 경우는 약과다. 이 음식점은 많이 싼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내심 부담스러웠다. 별다른 부담 없이 먹고 다니던 삽겹살 자리도 신경 써 줄여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자리에서 삽겹살과 소주를 추가 주문했으면 10만원이 나올뻔 했다.

요즘 급격히 치솟는 물가는 통계로도 확인되고 있다. 24일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삼겹살집 1인분 가격은 올해 4월 1만 4538원으로 2년 전 같은 달 1만 3923원보다 4.4% 올랐다.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통계상으로 4.4%이지만 맨날 접하는 실제 체감 상승률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도심의 삼겹살 값은 1인분에 1만 6000원~1만 8000이다. 술 값도 많이 올랐다. 음식점은 보통 막걸리를 1200~1300원(마트 기준)에 사와 3000원에 내놓았으나 지금은 4000원이 가장 싸다.

40대 직장인 C 씨는 "주말에 아내, 아들과 함께 삼겹살집에 가 고기를 조금 추가해 먹었더니 10만원 가까이 나왔었다"며 "차 기름값 등도 엄청 올랐는데 앞으로 외식도 부담스러워 많이 줄일 작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서민과 학생들의 부담이 훨씬 커졌다는 사실이다. 분식집에서 라면에 김밥을 먹어도 1만원 가까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체감 가계 지출이 지난해보다 50~60%는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가계가 무너질 판국이다.

서울 종각역에서 삼겹살집을 하는 D 씨는 "한돈 삼겹살·항정살 가격이 4월에 비해 10% 이상 올랐다"며 "가게로 들여오는 고기는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가격 변동이 있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번꼴로 값이 오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6개월 전과 비교하면 원가가 20~30% 올랐고, 깻잎 등도 가격이 올랐는데 보통 이러면 소매 음식점에서는 50% 정도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전했다.

참가격에 따르면 깻잎은 100g 기준 2193원으로 1년전 1553원보다 41.2% 급등했다. 삽겹살집에서 기본으로 나오던 깻잎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국내 물가상승률은 4.8%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10월(4.8%)이후 13년6개월 만의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5월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에 따른 '보복소비' 효과까지 더해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가 확실시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물가 인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는 점이다. 올해 하반기 도미노 가격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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