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뉴스] 옛날 밭에서 따던 하얀 목화솜 '미영' 아십니까?
정창현 기자
승인
2022.09.27 15:15 | 최종 수정 2023.09.23 13:12
의견
0
오랜만에 '그리움의 꽃' 목화(木花)를 소개합니다.
요즘엔 목화를 재배하는 농가가 거의 없어 하늘에 별따기만큼 보기 힘듭니다.
목화를 진주를 비롯한 경남에서는 '미영'이라고 하는데 이는 '무명'의 경상·전라의 사투리입니다. 경남에서는 목화를 '미영'이라고 하고, 무명은 '무명실로 짠 피륙'으로 지칭해 조금 달리 사용합니다.
경남 함양군에서 천연 목화솜을 수확해 말리는 귀한 사진들을 보내주었습니다. 함양군 관계자는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에 사는 임채장 씨가 이 고장에선 유일하게 밭에다 목화를 해마다 재배한다"고 전했습니다.
목화나무는 수정 후 속의 종자가 커지고 자방이 발육해 과실이 되는데 이것을 '다래'라고 합니다. 다래는 녹색 또는 진한 녹색을 띠며 둥글거나 달걀 모양이고 표면에는 홈모양으로 된 무늬가 있습니다. 꽃이 핀 뒤 다래가 되고 면모를 노출합니다.
달린 하얀 솜털을 모아 솜을 만들고, 솜 속에는 검은색 씨가 있는데 씨는 기름을 짭니다.
우리나라 면화 시배지는 함양 인근의 산청군입니다.
고려 말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삼우당 문익점 선생이 1363년 공민왕 때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몰래 면화 씨 10개를 붓두껑에 넣어왔고, 고향인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장인 정천익과 함께 5개씩 나눠 심었습니다. 다 죽고 그의 장인이 심은 한개의 씨가 발아해 3년간의 시험 재배 끝에 목화가 국내에서 확대재배 되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당시로선 백성들의 의식주 중 의, 즉 옷과 이불을 널리 보급한 획기적인 사건이었지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미영 따는 모습입니다. 중년층 이상의 분들은 미영밭을 가꾸던 엄마와 함께한 그 귀했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를 겁니다. 목화가 피기 전에 따 먹던 다래는 단맛에 두어개 먹던 기억도 날 겁니다. 미영을 딸 때 "부~웅" 하며 지나던 비행기 소리마저 함께 추억한다면 의미는 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