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8일)은 24절기 중 15번째인 백로(白露)입니다. 처서(處暑)를 보냈고 추분(秋分)을 맞는 자리입니다.
백로를 풀이하면 '흰 이슬'입니다. 이때엔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 등에 이슬이 맺힌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불과 2~3일 전만 해도 폭염주의보(체감 온도 33도 이상)가 내려지는 등 늦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백로 무렵에 찬이슬과 서리가 내리면 농사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여물어가는 오곡백과에 해가 되기 때문이지요.
양력으론 9월 7~9일에 들고, 음력으론 8월 초순인데 올해는 7월 24일입니다. 지난해엔 음력 8월 13일로 추석 2일 전이었지요. 하지만 올해는 2월 윤달이 끼여 추석이 20일 정도 남았습니다. 음력 7월 백로 때엔 수확이 늦어져 오곡의 작황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백로에서 추분까지를 5일씩 나누어 시기별로 특징을 지었는데 이를 삼후(三候)라고 합니다.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 오고, 중후(中侯)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했다네요.
백로 전후에는 여름철 장마가 끝나고 맑은 날씨가 계속되지만 간혹 태풍과 함께 오는 폭우로 곡식 피해 등 물적 인적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백로 다음에 오는 '중추(仲秋)'란 말이 있는데 음력 8월을 달리 하는 말이고 이 때는 찬이슬과 서리가 내립니다. 이 중추는 추석을 뜻하는 '중추(中秋)'가 아니고 가을이 한창인 때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음력 8월 보름은 추석 명절인 '한가위'인데 가배절, 가우절로 불립니다.
벼논의 나락은 백로 전에 패고 여물어야 합니다.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알곡이 부실합니다. 농작물이 일부 시들고 말라버리지요.
늦여름~초가을에 내리쬐는 하루 땡볕은 전국에 걸쳐 쌀 12만 섬(1998년 기준)을 더 거두게 한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오곡이 익을 때 날씨는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제주에 '백로전미발(白露前未發)'이란 속담이 있는데 이때까지 패지 못한 벼는 더 이상 크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충남에서는 백로 이전에 이삭이 패어야 그 벼를 먹을 수 있고, 백로가 지나도 이삭이 패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경남에서도 백로 전에 패는 벼는 잘 익고, 그 후에 패는 것은 쭉정이가 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기후온난화로 오곡의 자람과 익음에는 도움이 되고, 종자 개량과 재배 기술이 향상돼 큰 영향은 안 받습니다.
결론적으로 백로는 농사 흉풍의 변곡점이 되는 절기입니다. 농부가 벼이삭을 유심히 살피는 것도 이때입니다.
백로 전후에 바람이 불면 벼농사에 해가 많고, 나락이 여물어도 색깔이 검게 된다고 여겼답니다.
거꾸로 "백로에 비가 오면 대풍년이 든다"는 농사 속담도 있습니다. 다소 엉뚱한 말이라서 고개가 갸웃해지지만, 경남의 섬 지방에선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늘린다'는 말이 실제 전해집니다. 역설적으로 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봅니다.
이때쯤 쓰는 '포도순절(葡萄旬節)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로에서 추석까지 농익은 포도가 많이 나오고 맛이 가장 단 시기라는 의미에서 나왔습니다.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다소 빨리 나옵니다.
옛 사람들은 이 무렵 편지를 보낼 때 첫머리에 '포도순절에 기체만강하시고...'라고 썼답니다.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올리고 이어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렁주렁 달린 포도알이 다산(多産)을 상징하기 때문이지요. 조선백자에 포도 무늬가 많은 것도 이 같은 뜻을 담은 것입니다. 거꾸로 시집 안 간 처녀가 포도를 많이 먹으면 "망측하다"며 야단을 쳤다고 합니다.
'포도지정(葡萄之情)'은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짓을 했을 때를 쓰는 사자성어입니다.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씩 입에 넣어 껍질과 씨를 가려낸 다음 입에 넣어주던 그 정을 말합니다.
백로 무렵은 고된 여름농사를 끝내고 추수 때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여서 부녀자들은 근친(覲親)을 가기도 했습니다. 여기서의 근친은 시집간 딸이 오랜만에 친정을 찾아 부모님을 뵙는 것을 말합니다. 근(覲)은 '뵙고, 만난다'는 뜻이어서 가까운 친척이란 근친(近親)과는 다른 뜻입입니다.
옛날에는 '출가외인'이라 해서 친정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사돈집(처갓집)과 뒷간(화장실)은 되도록 멀리 있는 것이 좋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아마 이웃이나 이웃 동네 간에 혼사를 맺는 경우가 많아 가능한 한 왕래를 덜하게 하려고 만든 말인 듯합니다.
근친은 특별한 날( 친정부모님 생신, 명절, 제삿날)에만 허락이 됐습니다.
간혹 시댁에서 첫 농사를 지은 뒤 근친을 허락했습니다. 근친을 갈 때에는 햇곡식으로 떡을 만들고 술을 빚어 가져가는데 형편이 넉넉하면 버선, 의복 등도 마련해 친정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시댁으로 돌아올 때도 보답으로 떡과 술 등을 마련해서 왔다고 합니다. 일부 경상 지방에서는 이 떡을 '차반'이라고 합니다.
근친과 관련한 다소 엉뚱한 속신(俗信)도 있습니다.
출가 후 3년 안에 근친을 하지 못하면 평생에 한 번도 못했답니다. 3년 후에 근친하게 되면 단명한다는 속신 때문이랍니다. 가능하면 친정을 못 가게 하려는 봉건시대의 유산이겠지요.
그런데 시댁이 엄해 근친을 못하거나 특별한 사정이나 액(厄)이 있어 친정에 가지 못해도 양가(兩家)에서 미리 의논해 중간 쯤 경치 좋은 곳에서 친정 식구를 만났다고 하네요. 이를 '반보기(中路相逢)'라고 하는데 장만해 간 음식을 먹으며 회포도 풀고 하루를 즐기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근친은 결국 유교적인 엄한 가족제도가 빚어낸 풍속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에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가족의 가치관과 제도도 많이 바뀌어 사라졌거나 달라져 있겠지요.
가을의 가을이 영글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