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논두렁 밭두렁] 고물가 시대의 '못난이 과일' 단상

정기홍 기자 승인 2023.11.07 18:46 | 최종 수정 2023.11.08 23:49 의견 0

요즘 생채기가 난 과일과 채소에 주부들의 손길이 자주 가는 모양입니다. 언론에선 물가가 너무 올라 상품(上品)을 구매하기엔 부담이 가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독자분들도 다 느끼고 있지만 당분간 고물가 현상이 풀릴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코로나19 사태 2년에 경기를 살린다며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인플레이션 상황이 됐고,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시장 곡물 파동으로 원자재값이 크게 올랐었지요. 또 원유가도 지속 오르니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국제 화물 운임도 크게 올랐습니다.

여기에다가 점점 영향력을 키우는 이상기온이 덮쳤습니다. 지난 봄에는 과일 꽃이 필 무렵 한파가 두어번 몰아쳐 냉해로 수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데다 여름철엔 폭염과 폭우가 잇따랐습니다. 고온다습, 즉 습한 폭염이 이어져 탄저병과 무름병 등이 추수철인 요즘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중부 지방에선 수확철인 최근 큰 우박이 내려 사과 재배 농민들의 상심(傷心)이 이루 말할 수 없나 봅니다.

야산에 있는 단감나무에 열린 단감 모습. 볼품은 없어도 충분한 가을 햇살을 받아 제맛을 낸다. 정기홍 기자

지난 추석 직전 때 마트에 갔더니 사과와 배의 상품은 한 개당 1만 원에 육박했습니다.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에 언감생심 심정이었지요.

요즘에 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밥상 물가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0월 대부분의 채소류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하네요. 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11월 사과 도매가는 10㎏에 5만~5만 4000원으로 1년 전보다 79.9~94.2% 오를 것으로 본답니다.

당연히 과일 진열대로 발길을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자는 대학을 다닐 때까지 선친이 지으시던 여러 과수원에서 틈 나는대로 일을 도왔습니다. 주로 매실, 자두, 복숭아, 포도, 감 등이었고 농약을 치거나 나무 껍데기를 벗기고, 꽃이 피면 속아 주고 영글면 따는 작업이었지요.

오늘 '논두렁 밭두렁'에서는 고물가 시대에 '못난이 과일' 단상과 함께 기자가 농사 현장에서 터득한 맛있는 과일 고르는 방법을 소개해봅니다. 요즘엔 소비층에서 '워낙 깔끔을 떨어' 다음의 내용이 실제 독자분들께 제대로, 잘 먹힐 지 장담은 안 됩니다.

가장 대별이 잘 되는 포도의 경우를 소개합니다.

대형마트나 포도농원 등에서 포도를 고를 때 포도알이 듬성듬성한 송이를 고르면 맛으로는 실패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포도알이 듬성듬성한 포도송이. 햇빛을 속까지 골고루 받아 촘촘한 포도송이의 포도보다 제맛이 더 난다. 포도 특유의 향도 그만이다.

'둘러앉은밥상' 포도 상품 소개. 이상 홈페이지 캡처

기자는 여름방학이면 원두막에서 부모님이 길러 놓은 포도를 따서 팔았습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송이가 큼지막하고 꽉찬, 보기 좋은 것은 도시로 팔았습니다.

원두막에선 동네분들이나 차를 타고 지나는 분들께 팔았는데, 성근 포도송이를 큰 대야(다라이)에 담아놓고 팔았지요.

"한 번 드셔보세요. 좋은 송이를 따서 드릴 수는 있지만 선물 할 것이 아니면 이걸 가져가 드세요. 맛은 비할 바가 아닙니다. 가격도 쌉니다"

원두막으로 오는 손님에게 이 같은 내용의 말을 참 길게도 설명했었지요. 더 강하게는 "포도알이 촘촘히 박힌 송이를 사 먹는 것은 비싸게 돈 주고 덜 익은 것을 먹는 바보스런 짓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여건으로는 엉뚱하고, 파격적인 제안이었다고 봅니다.

경험만한 게 어디 있습니까? 포도 수확철에 숱하게 따면서 먹어본 경험에서 도출된 말이지요. 포도 농사를 지어본 분들은 수긍을 하는 내용입니다.

촘촘하게(경상 사투리론 쏘무게) 영근 포도의 경우 송이 안쪽의 포도알은 햇빛을 고루 풍족하게 받지 못해 익어도 완벽히 농익은 맛이 덜하고 신맛이 다소 남아있습니다. 포도에서 나는 특유의 향 차이가 확연합니다.

복숭아, 자두, 감, 배, 사과 등도 포도와 비슷합니다. 햇빛을 잘 받은 열매가 분명 제맛이 납니다.

다만 썩은 것과 생채기가 난 것은 다릅니다. 썩으면 맛이 많이 변해 제맛이 크게 떨어집니다.

감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감이 빨갛게 익어 맛이 들면 새가 날아듭니다. 까치와 까마귀이지요.

감나무 과수원 인근 숲에서 모여 있다가 인기척이 나자 하늘을 나는 까마귀떼 모습. 까마귀들은 틈 나면 익어가는 감을 공격한다. 정기홍 기자

감나무를 자세히 보면 감을 조아 먹은 흠이 난 감이 간간이 있습니다. 맛이 상대적으로 좋은 감입니다. 까치와 까마귀가 나무에 달린 감 중에 더 맛있는 것을 조아먹는다는 말입니다. 실제 약간 조아먹은 감을 따서 그 부위를 없애고 한 입에 베어 물면 엄청나게 답니다.

요즘 과일값이 비싸 생채기가 난 과일을 찾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비싸도 너무 비싸니 당연한 현상이겠지요.

시장이나 마트 등에서 과일 등을 고를 때 부디 촘촘한 것보다 성겨 볼품없는 것을 고르기를 권합니다. 제대로 크거나 익어 제맛을 잘 간직한 것들입니다. 가격도 꽤 쌉니다.

최근 내린 우박 피해를 본 ‘보조개 사과’는 절반 값에도 살 수 있다고 전합니다. 수확을 며칠 남기고 우박의 습격을 받아, 정상적인 사과 맛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근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월드타워점에 진열된 '못난이 사과'를 고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롯데마트 제공

다만 당뇨를 걱정하는 분은 너무 당도가 높은 과일은 많이 먹지 않는 게 좋겠지요.

사과나 배, 감 등 외형이 못난 농산물은 모양이나 크기에선 최상급은 아니지만 신선도와 맛, 영양면에서는 전혀 이상 없습니다. 포도처럼 더 잘 익어 맛이 더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못난이 농산물'이 제 값어치를 인정 받을 때가 언제 올까요?

포도나 밤도 까먹기 번거로워 먹지 않는다는 젊은이들이 많은 세상, 넘어야 할 언덕은 적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농약 이야기를 하면 눈이 번뜩 뜨일 겁니다.

겉으로 매끈하고 싱싱해 보이는 농산물은 농약을 한 번 더 친 것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실제 수확철인 요즘 감 탄저병으로 울상을 짓고 있는 농가들과 별개로 이웃엔 감 농사를 잘 지은 농가도 더러 있습니다.

"저 집은 올해 감 농사를 잘 지었다고 하대요. 폭우와 폭염이 잦았던 여름 내내 2~3일에 한 번씩 농약을 치더군요"

농삿일을 잘 아는 기자는 이 말을 듣고 내심 놀랐습니다. 겉이 너무 매끈한 감은 꼭 깎아먹어야 하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졌습니다.

농촌에서 큰 기자는 아내와 마트에 가면 항시 약간의 생채기가 있는 과일과 채소 앞에 서는 데 농삿일을 해본 적이 없는 아내는 정반대입니다. '못난이 농산물'의 태생 과정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지요.

농삿일이란 것이 경험해본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묘한 게 있습니다. 어지간하면 '벼가 농민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자신이 아는 만큼만 생각하고, 주장하고, 행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둔함을 말함이겠지요.이른바 헛똑똑이라고 하지요. 그래도 겉이 매끈하게 보이는 과일과 채소만을 택하시렵니까?

그러니까, 넘어야 할 '우둔한 산'은 바로 '제' 옆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