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해뜰날’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후 ‘차표 한 장’, ‘네박자’ 등 국민 애창곡을 불러온 트로트 가수 송대관(79) 씨가 9일 동료 가수들의 눈물 속에 영면에 들었다.

영결식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과 발인식에서는 태진아, 설운도 등 70여 명의 동료 가수가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 송대관 씨와 태진아 씨가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KBS

절친 태진아 씨는 추도사를 통해 “(사망 소식 이후) 3일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며 “이제 형님이 하늘나라 가서 사시면 제가 아마 방송하고 이러는 것도 별로 큰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둘도 없는 공연 콤비로 잞 알려져 있다.

태진아 씨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제 집사람은 치매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대관이 형이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아이고 어떡해, 왜?’라고 하더라.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했다. 이어 ‘얼마나 형이 우리랑 가까웠으면 기억을 못 하는 우리 옥경이가 대관이 형을 기억해 주는구나’ (싶었다)”라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잘 계시고 좋은 자리, 제가 갈 수 있는 좋은 자리를 만들어 달라. 그러면 제가 언젠가 형님 곁으로 갈 테니까”라며 “대관이 형 잘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며 영정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설운도 씨는 “요즘 우리 가요가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며 “(송대관 선배는) 그 가요를 사랑받게 해주신 분”이라고 했다. 이어 “처음 가수로 데뷔했을 때 우러러봤던 선배님”이라며 “열심히 사셨던 분이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선배님이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고 가셨기 때문에 후배로서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되긴 한다”며 평안한 영면을 기원했다.

고인은 경기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영면에 들었다.

송대관 씨는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하지만 무명 생활은 길었다. 10년 가까운 무명은 1975년 발표한 ‘해뜰날’ 한 곡으로 날려보냈다.

유명세를 타는가 싶더니 1980년 가수 생활을 포기하고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가요계에 복귀했다.

‘차표 한 장’(1992년), ‘네박자’(1998년) 등이 연달아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를 다시 구가했다.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