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농업과 어업과 관련한 속담(俗談)을 찾아 그 속담에 얽힌 다양한 의미를 알아봅니다. 속담은 민간에 전해지는 짧은 말로 그 속엔 풍자와 비판, 교훈 등을 지니고 있지요. 어떤 생활의 지혜가 담겼는지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지난 6일은 백중(百中)이었습니다. 음력 7월 15일, 달이 둥그렇게 뜨는 보름날이고 여름내 몸집을 키운 벼가 물을 한창 먹어야 할 때여서 벼논에 물이 가득해야 할 시기입니다.

특히 만생종 벼의 경우 벼의 꽃이라는 이삭이 나와 자라는 출수기를 거치는 시기여서 물이 많이 필요합니다. 논에 물이 없거나 적으면 이삭의 수량이 감소하고 알곡이 부실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조생종 벼이삭이 고개를 숙인 가운데 벼논에 물을 듬뿍 대놓은 모습. 백중 무렵엔 벼가 왕성하게 물을 먹는 시기로 논에 물을 듬뿍 대줘야 한다. 정창현 기자

따라서 '백중에 물 없는 나락 가을 할 것 없다'는 속담은 백중 무렵에 가뭄이 들거나 벼논에 물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가을 풍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극심한 가뭄으로 식후마저 고갈돼 가는 강원 강릉의 벼논은 올해 풍년을 기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일부에서 '백중에 물 없는 나락 가을 할 것 없다'는 속담을 백중 때는 논매기 등 한여름 농사일이 마무리되고 잠시 쉬는 시기로 나락을 추수할 때가 아님을 나타낸다고 해석하지만 맞지 않습니다.

논매기 등으로 지친 머슴을 보양식에다 쉬게 한다고 '머슴의 날'이라고도 하는 백중은 논에 나는 풀, 즉 잡초를 뽑는 세벌 논매기가 끝나는 등 일단 고된 여름 논 일은 끝납니다.

농업인들은 풍년을 기원하며 잠시 쉬면서 즐기는 날이지요.

속담 '백중에 물 없는 나락 가을 할 것 없다'를 풀어 봅니다.

나락은 벼를 뜻하는 남부 지방의 말입니다.

'가을 할 것 없다'는 가을을 말할 것 없다거나 가을 추수할 것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위의 말을 다시 언급하면 이삭을 키우고 쌀이 되는 알곡을 더 튼실하게 키워야 하는 백중 무렵엔 벼가 물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이 시기에 물이 없으면 가을 추후는 보나마나 흉작이란 의미이지요.

기자는 농사를 짓던 동네 어르신들이 '할 것 없다'는 말을 쓰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보나마나 뻔하니 생각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는 것을 담고 있습입니다.

농촌에서는 이처럼 일반인이 들으면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말이 많습니다. 예각이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곡선의 논두렁, 밭두렁과 같은 말들입니다. 앞 뒤 말을 생략해 굳어진 말도 많지요. 두루뭉슬, 알듯 말듯한 말이지만 들어있어야 할 의미는 다 담고 있지요.

'가을 할 것 없다'는 어차피 벼 알곡이 양 것 크지 못하고 죽정이나 속이 꽉 차지 않은 나락이 많아 소출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가을을 기대하거나 가을 풍작을 말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백중에 물 없는 나락 가을 할 것 없다'와 비슷한 백중 속담도 몇 개 소개합니다.

'백중날은 논두렁 보러 안 간다'는 머슴이 쉬는 날임을 의미합니다.

백중 시기는 한 해 농사를 마무리짓고 여름내 김매기로 굽혔던 허리를 펴고서 추수를 기다리는 때입니다. 일꾼들에게 음식을 푸짐하게 마련해 대접하며 하루를 쉬게 했던 풍습에서 비롯된 속담입니다.

이날은 논두렁이나 들에 나가지 않고 일손을 쉬는 날입니다. 백중은 '호미씻는 날', '머슴날'로도 불리며, 마을잔치를 하며 조상 등에 천신례를 지냈습니다.

'칠월 백중사리에 오리 다리 부러진다'는 보름(7월 15일)은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큰 '사리' 시기가 겹쳐 바닷물의 흐름이 매우 세차고 강해 바다에서 오리가 헤엄치기 힘들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백중 무수기에는 메밀농사 끝에 늘어진 불 보려고 구멍에 든 소라 다 나온다'는 무수기(조수의 간만의 차가 큰 시기)인 백중엔 메밀농사가 끝나고, 메밀집을 태우는데 썰물로 빠져나간 갯벌에 있던 소라가 이 불을 구경하기 위해 구멍 안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돌 틈에 숨은 소라가 잘 보여 손쉽게 잡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