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자 슬로시티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주민들이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획한, 작은 프로그램 '악양 소풍'이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13~14일 1박 2일로 진행된 행사에는 전국에서 온 23명과 자원봉사자, 실무자 등 30여 명이 함께하며 악양의 자연과 문화, 마을을 두루 체험했다.

'악양 소풍' 참가자들이 악양 들판과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구재봉 언덕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악양 소풍' 행사에는 24세부터 7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가했다.

대가족이 모인 것 같은 잔치 분위기에서 ▲서촌단감 따기 ▲밤 줍기 ▲구재봉 활공장에서 악양 들판과 섬진강 보기 ▲한밤중 들판 거닐기 ▲마을미술관 관람 ▲마을 탐방 등 다양한 체험을 즐겼다.

▶자연 속 쉼표, 악양

참가자들은 캄캄한 한밤중 악양 들판을 거닐며 하늘의 별도 실컷 보았고, 마을 안길 가로등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가로(등)별’도 보았다.

한 참가자는 "세상에···, 들판에서 반딧불이를 봤어요!"라며 별빛 아래 청정마을 밤 산책이 주는 감동에 탄성을 질렀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농장 체험과 농가 일손 돕기에도 나섰다.

밤 줍기에서는 밤송이 가시를 피하면서 바구니에 한가득 채웠다. 서촌마을 단감 따는 체험에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참가자들은 "벌써 단감이 익었다는 걸 몰랐다"며 "따는 재미, 먹는 재미에 일손에 보탬도 돼 너무 좋았다"라며 흡족해 했다.

▶ 속 깊은 악양의 맛과 정

저녁엔 지역 특산물인 악양막걸리로 차린, 조촐했지만 마음 넉넉한 한상 뒤풀이가 이어졌다. 악양 주민이 손수 만든 두부와 순두부를 안주로 웃고 떠들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아침은 하동의 진국인 섬진강 재첩국으로 몸을 깨운 뒤 구재봉 활공장에서 그림과 같은 악양 들판과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초가을을 즐겼다.

이어서 마을 탐방과 마을 미술관을 관람하고 마을식당에서 점심 식사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악양 소풍' 행사 참가자들이 서촌마을 단감밭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상 하동군

▶ "악양요? 또 와야죠"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꽤 컸다.

부산에서 가족 5명과 함께 온 참가자는 “보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숨 쉬는 것 모두가 '청정 악양'이 준 값진 선물이었다”며 찬사를 연발했다.

서울에서 온 참가자는 "언젠가 악양에서 한해살이를 해보고 싶다"고 했고, 경남 창원에서 온 이는 "11월 대봉감 잔치에 친구들과 함께 다시 오겠다"며 다음 방문을 기약했다.

소개팅으로 함께 왔다는 두 참가자는 "1박2일 짧은 일정이었는데도 악양의 매력에 젖어들면서 오랜 시간 사귄 것처럼 가까워졌다"라며 '악양의 중매'의에 고마움을 전했다.

​이처럼 '악양소풍'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마을을 이은 '만남의 장, 때 뭇은 허물을 벗은 자리'였다. 짧은 하룻밤이지만 깊은 정들이 오갔다.

행사를 준비한 주민 모임 공동대표 박부식 씨는 "악양의 자연이 주는 힘이 있어 무사히, 즐겁게 마쳤다. 도시에 나가 있는 우리 가족, 형제들이 악양소풍을 오는 것이라 여기고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앞으로도 꾸준히 '악양 소풍'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참가자들도 '악양 소풍'을 계절마다 나눠서 할 수 있다면 좋겠다며 행사를 준비한 주민들에게 박수로 화답했다.

손성숙 악양면장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이런 행사를 만들고 직접 진행하니 참가자들이 마을 주민들과 더 깊게 섞이고, 악양 구석구석을 함께하는 것 같다"며 "평생을 악양에 살아서인지 악양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무덤덤한 편인데, 참가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참 복 받은 땅이란 것을 새삼 느낀다.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악양을 더 활기차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행사를 마무리하며 오는 11월 8~9일에 있을 '대봉감잔치' 때 다시 함께하자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주민들과 참가자들은 '악양 소풍' 행사가 지역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하동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새로운 모델로 자리할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