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가 '길, 골목을 걷다'를 연재합니다. 첫 시작은 '진주역~반성 경남도수목원 간 자전거길'과 '와구터널'을 잡았습니다. 이 길과 터널이 지나온 세월을 반추 하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 길은 지난 2012년 12월 5일 경전선 마산~진주 구간 복선전철이 개통돼 기존 철로가 폐선(2012년 10월 23일 발표) 됨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진주역~옛 남문산역~옛 갈촌역~옛 진성역~옛 반성역~경남도수목원 간을 오고 가는 구간입니다. 라이딩 거리는 왕복 42.4km로 4시간쯤 걸립니다.
경남 진주시 홈페이지는 진주역~반성 경남도수목원 자전거길을 '수목원길'로 이름 붙여놓았군요. 들를만한 곳은 문산성당과 반성시장, 경남도수목원입니다.
하지만 지나는 길에 호젓한 곳이 많아 일상에 지친 분들이 자전거에 몸을 싣고 찾을 만합니다. 모든 코스가 옛 기찻길이어서 급경사와 큰 회전 구간은 없지만 작은 오르내리막은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 연습하기에도 좋은 코스입니다.
오늘은 이 길의 맛배기로 진성역(구천마을)과 갈촌역(갈곡마을) 사이에 있는 '와구(臥狗)터널'을 소개합니다. 길이는 174.94m이고 일제강점기인 1923년 12월 1일 완공한 굴입니다.
와구란 이름이 흥미롭네요. 누울 와(臥), 개 구(狗)인데 개가 누워 있는 형상을 뜻합니다. 산세가 그렇나 봅니다.
이끼가 낀 터널의 안팎에는 6·25전쟁의 상흔이 있습니다. 지금도 터널의 외부벽엔 탄환 흔적이 있습니다. 전국의 어느 터널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기자의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6·25 전쟁때 이 굴에 들어가 잠시 피신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진성에서 반성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터널이 하나 더 나오는데 '장곡(長谷)터널'이라고 하네요. 와구터널보다 많이 짧은 130.76m이며, 진성면 구천리~진성면 천곡리 사이에 있습니다. 와구터널과 같은 해에 완공했고 분위기는 와구터널과 비슷합니다.
와구터널을 포함한 이 길엔 철길을 걷어내고 자갈을 깔아놓았었지요.
이 사진을 바탕으로 조명발을 받고 있는 다음 사진들을 보면 변신의 모습이 훨씬 더 와닿을 것입니다. 사진 속의 출구가 극히 짧게 보이지만 무려 175m입니다.
다음 사진들은 조명을 받은 와구터널의 속것입니다.
이어 와구터널의 입구 정취도 살펴봅니다. 기자가 오래 전에 찍어뒀던 사진들입니다.
진성역과 갈촌역 폐쇄 결정(2012년 10월 23일) 이후 철길에 자갈길을 깔았고, 남문산역∼반성역 간 자전거길(13.2㎞)이 2017년 8월 23일 임시개통 됐으니 2012~2017년 사이의 모습입니다.
터널 입구는 가을, 겨울에는 빛바랜 낙엽들이 쌓여 있어 음산한 분위기 였고, 한여름에 숲이 우거져 자주 오기가 머뭇거려졌던 곳이라고 합니다.
터널 왼쪽 입구에는 작은 샘물 있는데, 맑은 물이 똑똑 떨어져 고이고 넘치면 흐려내려 인근에서 농삿일을 하다가 목 마르면 물을 떠오곤 했답니다. 진주에선 사투리로 '참새미(참샘)'라고 하지요.
와구터널 인근에 사는 진성면 구천마을 60대 정 모씨는 "어릴 때 갈전(갈곡)마을 등 갈촌 쪽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걸어다니던, 추억이 많았던 굴"이라며 "요즘 같은 한여름엔 더위에 집에 있지 못하고 밤엔 마냥 철길을 걸어 이웃마을로 놀러다니곤 했는데 여학생도 만나곤 했던, 낭만이 담긴 굴"이라고 추억했습니다.
실제 이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진성역에서 갈촌역으로 가는 철길이 꽤 오르막이어서 옛날 열차는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 했는데, 열차 통학을 하던 까까머리 개구쟁이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렸다가 다시 타곤 했다는 전설적인 말이 전합니다. 멋 모를 때의 치기(稚氣·어리고 유치한 기분)이지 위험천만의 행동임에 분명합니다.
지금은 터널 인근의 산은 단감과 밤 등의 과수원으로 변했고 사찰의 암자도 생겨나 있습니다. 한때 터널 진성 쪽 바로 밑에 축산분뇨처리장이 들어서기로 했으나 갈촌 주민들의 반대로 막판에 없었던 일이 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터널 위로 진성~갈촌 간을 넘어 오가는 왕복 2차선 지방도로가 잘 닦여져 있습니다.
옛 철도길에 뚫어 놓았던 터널. 폐선 뒤 방치됐던 터널이 빛의 공간으로 변신을 하면서 디지털과 아날로그 감성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이 와구터널 근처에서 추억을 가졌던 분들은 한번 찾아볼만하겠네요. 자전거와 함께!
■ 추가 사진
이 길을 걸어본 독자들께서 추억을 되새김 하라는 뜻에서 사진을 몇장 더 올립니다.
위의 사진은 진주에선 눈 보기가 힘들어 찍은 것인데, 지금은 보니 엄청 귀한 사진이 됐네요. 바로 앞의 철망은 오른쪽 구천마을(당시 이천마을) 주민들이 리어카와 경운기로 '외로 들'로 건너던 농로입니다.
야산 옆을 지나는 굽은 기찻길과 눈이 어우러져 운치가 최고입니다.
햐얗게 눈 내린 윗사진을 찍은 3일 후인 2006년 2월 9일 사진입니다. 눈이 금방 녹아 그늘진 곳에만 조금 남았네요. 아쉬워서 셔터를 눌렀던 사진입니다. 철길은 거두어지고 지금은 자전거길이 됐습니다.
아래는 와구터널이 위치해 있는 간이역 진성역 사진 두장입니다. 지금은 역이 없어져 보기 드문 사진이 됐습니다.
위 사진의 왼쪽은 구천마을 주민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오르내리는 계단과 승강장입니다. 열차가 정차한 지점 아래에는 차량이 구천마을로 들어오고 나가는 시멘트 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굴을 걷어내고 자전거길로 만들어 확 터여져 있지요.
열차 차량이 4량인데, 이후엔 승객이 많지 않아 2량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기관차에 여러 개의 찻간이 없고 짧아 특수목적의 기차인 듯합니다. 경운기가 서 있는 쪽에서 들로 나가는 농로가 철망으로 막혀 있고, 기관차마저 그 위에 서 있으니 사진이 더 특별해 보입니다.
■ 활용 방안
철도의 직선화와 복선화 등으로 철도 폐선이 돼 방치 되던 전국의 터널들이 이처럼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는 와인 숙성 공간으로 만들어 '와인터널'이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밝은 빛을 밝혀 '빛의 테마파크'로 이름 붙여 명물로 만듭니다. 크진 않지만 지역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네요.
반가운 것은 을씨년스런 공간이 밝은 빛의 요술공간으로 바뀌는 등 새롭게 재탄생 한다는 점입니다.
철도시설공단과 지자체들이 머리를 맞대어 보다 적극적인 활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경북 청도의 와인터널은 이곳에서 숙성 중인 와인을 직접 보면서 시음할 수 있는 이색 여행지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고 합니다.
경남 밀양군 삼랑진 트윈터널(옛 무월산터널)은 캐릭터(사람이나 동물 이미지) 조형물과 수족관, 체험 시설 등과 함께 빛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로 개장해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여름 한철 더위를 떨치는 단발성 행사를 기획해도 괜찮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