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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현장] 신세대 직원들과 군수는 이날,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 했다···경남 의령군 '생각이음 콘서트'

정창현 기자 승인 2022.10.18 17:07 | 최종 수정 2022.10.20 11:10 의견 0

17일 오후 늦은 시간, 경남 의령군 의령읍에 위치한 의병박물관 야외 잔디마당에서는 공무원들만이 모인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의령군 7급 이하 직원들과 군수가 콱 막힌 사무 공간을 박차고 나와 두어시간 터놓고 얘기를 해보자며 마련한 한마당 행사다. 행사 이름도 '터놓고 생각이음 콘서트'로 지어 자유로움을 강조했다. '이야기꾼' 개그맨 정범균 씨가 진행자로 앉았다.

오태완 군수(오른쪽)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기자는 한여름이던 지난 8월, 이날 행사의 시발격인 '생각이음의 날'이란 의령군 보도자료를 접하고 참신하다는 생각에 의미를 붙여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이날은 후속 행사의 분위기가 궁금해 의령 현장을 찾았다.

의령군의 '생각이음의 날' 모임은 부서마다 돌아가며 '의령 살리기운동'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다른 부서는 채택된 아이디어에 지원 사격을 하며 협업에 나선다. 부서와 직급의 '새로운 상상'과 '지혜로운 경험'을 연결해 소멸 위기에 처한 의령을 되살려보자는 취지다. 2개월이 지난 이 모임은 매월 첫 번째와 세 번째 수요일에 열리고 있다.

오후 4시에서 6시까지 이어진 이날 행사는 그 연장선에서 열렸다. 오태완 군수의 취임 100일의 의미도 담겼다. '생각이음의 날' 모임은 8급 이하만 참석 가능하지만 이날은 7급 직원도 참여해 폭을 넓혔다. 의령군 전체 600명의 직원 중 100명이 자리를 채웠다.

'군수와의 대화'에 앞서 긴장을 풀고 분위기를 달구기 위한 가위바위보 게임 모습

개그맨 정범균 씨와 젊은 공무원들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고 있다.

행사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행사의 취지에 맞추려고 해서인지 딱딱하지는 않았다.

진행자 정범균 씨는 30분 진행된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시간을 만들어 가위바위보 게임, 노래 제목 맞추기 등으로 몸 풀기 시동을 걸었다. 정확히 말하면 몸보다 군수가 도착하기 전에 딱딱함과 긴장감을 푸는 '무장 해제 시간'이다. 아이스 브레이킹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것'을 뜻한다.

노래 제목 맞추기 게임에서 당첨된 직원이 선물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정범균 씨는 이어 ▲응답하라 UR▲두근두근 밸런스 ▲들리시나요▲겁 없는 신규들 등 유연한 타이틀로 짜여진 행사 순서대로 진행했다.

'응답하라 UR' 코너에서는 젊은 직원들의 자리여서인지 제안들이 가감없이 쏟아졌다. UR은 채팅에서의 약어로 '너는(You are), 너의(Your)'란 뜻이며, 직원의 질문에 오 군수가 답하라는 뜻이 담겼다.

단상의 군수와 진행자 옆에는 '이음나무'를 둬 직원들이 미리 적은 질문이나 요청 사항 쪽지들을 듬뿍 걸었다.

한 직원은 종종 민원인의 언어 폭력을 겪는 안내센터 '민원 전화'에 '상대를 배려하자'는 안내 멘트를 넣자고 제안했다. 오 군수는 "곧바로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는 "매사에 결정을 빠르게 하는 편"이라며 자신의 업무 스타일을 넌지시 직원들에게 알렸다.

이어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한 의령에서 가장 뜨거운 질의가 등장했다.

쌍둥이 등 아들 셋을 둔 40대 중반 직원이 던진 "의령에서 자식 제대로 키우기 위한 사업들이 성공할까"란 질문이다.

이 직원은 "의령에는 영어 등 체험 및 심화 프로그램이 일반 학원밖에 없다. 인근 창원영재교육원에서는 창의 교육을 하는데 의령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도 이런 특화 (국공립) 어린이집을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

오 군수는 "의령교육지원청과 협의를 하고, 각급 학교 교장들과 만나 논의하겠다"고 답변했다. 예산 마련 방안으로는 "지자체의 일반행정 서비스는 늘었지만 교육청 행정은 학생이 예전의 절반 정도로 줄면서 그 수요가 감소하고 있어 교육부문 예산을 돌려쓰는 방안을 관련 기관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개그맨 정범균 씨가 이음나무에 걸린 직원들의 질의 쪽지를 고르고 있다.

그는 중간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수시로 내달라. 입법도 정책도 가까이서 소통하고 정책에 반영해 (재임 중) 잘 살 수 있는 의령을 분명히 만들겠다"고 직원들에게 다짐을 했다. 오 군수는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군수직을 1년 정도 수행한 이후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도 이겨 지금에서야 제대로 된 의령 발전 구상을 짜고 있다.

오 군수는 직원들에게 "솔직하게 말해서, 발가벗고 (의령 발전을 위해 노력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날 모인 신세대 직원들에게 '특별한 약속' 하나를 더했다.

오 군수는 "군청사가 좁아 직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내년에 군교육청 땅을 매입해 복합문화복합센터를 짓겠다"고 밝혔다.

의령군은 현재 군 청사를 넓히려고 해도 '주민 수에 따른 공간 평수 제한 규정'에 묶여 공간을 확대할 수 없다. 군민 수가 3만 명 아래인 의령군의 큰 고민이다. 지난 2009년 경기 성남시의 호화 청사가 문제가 되면서 관련 규정이 강화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복합센터를 만들려는 이유는 복합센터 공간을 복합적 운용할 수 있어 교육 관련 공간을 만들고 군청의 일부 부서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내년 초엔 경찰서 땅도 매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언급에 직원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젊은 직원들은 근무 환경에 민감한 편이다.

오 군수는 의령의 자랑거리 3개도 들었다.

우선 청정하다고 했다. 물과 공기가 좋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비염이 있다는 오 군수는 "의령에 온 뒤 비염이 나았다"면서 "청정 자연을 돈 가치를 따져 50년을 계산해보니 아파트 한 채더라"고 자신의 견해를 제시했다.

이어 여유롭다고도 했다.

그는 "대도시에서는 숨 쉴 틈이 없이 일해야 한다. 출근길을 보면 눈도 맞추지 않고 바삐 움직인다"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매우 싸 서울 등 대도시보다 2.5~3.5배 더 값어치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 사우나에서는 7000원이면 머리를 깎고, 서울은 고작 10평에 살지만 의령에서는 100평에 살 수 있다"고 의령 생활의 상대적 가치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양반론을 내세웠다. "여유가 있으니 양반처럼 느긋해진다. 의령에서는 도둑질을 하지 않고 열심히만 일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말고도 "의령은 인심이 좋고, 순박함과 순수함을 가진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오태완 군수가 질문을 한 직원을 가르키고 있다.

오 군수는 행사 내내 젊은 직원들과 속내를 터놓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반말투의 사투리 억양을 가끔씩 섞어가며 친근감으로 다가서려는 모습이었다. 중간 중간에 "무겁고 딱딱한 질문 말고 하찮은 질문이 좋다"며 스스럼 없는 질문을 유도하기도 했다.

'공유와 소통'이란 말을 자주 꺼냈다. 그는 젊은 세대와 더 많은 소통을 하기 위해 집에서 외식을 나갈 때도 언제나 애들과 의논을 한다고 했다. 꼰대 이미지가 싫어 집에서 둥근 테이블에 앉고, 짜장면을 먹든 가족의 다수결 결정대로 따른다고 했다.

오 군수는 의령 생활의 속내도 털어놓았다.

그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스트레스 해소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국회나 경남도청에서 근무할 땐 주중의 스트레스는 주말에 몰아 풀었다. 개인적으로 운동, 등산을 다 즐기지만 골프와 사우나를 특히 좋아하는데 군수가 되고선 이제껏 못 가봤다"고 말했다. 바빠서 그렇지만, 개인 청탁 등으로 한번 보자는 사람이 많아 잘 가지 않게 된다고 했다.

이어 "요즘엔 운동을 못해 몸을 벼린다(버린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내년부터는 꼭 좋아하는 운동을 하겠다"는 몸 만들기 계획도 밝혔다.

좌우명 질문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밝혔다. 믿음(신뢰)이 없으면 바로 설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관계 즉,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한번 연을 맺으면 버리지 못한다고 했다. 20대 때 국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지금도 사귀고 울(울타리)이 된다고 했다. 관계의 기본은 신뢰라고 했다. 또한 가만 두면 안 되고 가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근두근 밸런스' 코너에서는 군정을 이끄는 오태완 군수 이름을 딴 '태완이가 궁금해'가 퀴즈 행식으로 진행됐다.

이 게임은 진행자인 정범균 씨가 낸 질문을 직원과 군수가 한쪽 손을 들고, 같이 손을 든 직원 중 마지막으로 남은 직원에게 선물을 주는 코너다.

질문은 ▲개그맨 얼굴로 군수 하기, 군수 얼굴로 개그맨 하기 ▲소바(국수) 1주일 먹기, 국밥 1주일 먹기 ▲과장과 함께 공짜 점심 먹기, 동료와 터치페이 하며 먹기 ▲일은 척척 잘 하는데 성격 파탄 직원, 착한데 일을 정말 못하는 직원 선택 ▲ 햇빛 있는 6층 사무실, 햇빛 안 들어오는 지하 사무실 선택 ▲3박 4일 여행 무계획파와 계획파 선택 ▲군수 얼굴에 현빈 몸매, 현민 얼굴에 군수 몸매 ▲에어컨 없이 여름 보내기, 보일러 없이 겨울 보내기 ▲평상시 안 자도 안 피곤한 스타일, 먹어도 살 안 찌는 스타일 선택 등이었다.

오 군수는 다소 멋적은 듯 "애렵네(어렵네)"라면서도 오른손과 왼손을 열심히 이어 들었다.

직원들이 든 치켜든 손이 군수님과 같은 쪽의 손일까? 청춘 공직자들은 행사 내내 활달했다.

일과 관련해서는 일관된 소신을 밝혔다.

그는 "공과 사를 반드시 구별한다. 간부들과 개인적으로 허물없이 지나려 하지만 회의에서는 화도 많이 낸다"고 전했다. '성격 안 좋아도 일 잘 하는 직원'을 선택하면서는 "특정인이 일을 못하면 옆 사람이 해야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태완이가 궁금해' 코너에서 오 군수와 직원들이 손을 드는 모습

이날 행사의 스포트라이트 대상은 군수와 식사권이었다.

최종 우승은 '평상시 안 자도 안 피곤, 먹어도 살 안 쪄'란 마지막 문항에서 오 군수와 같은 왼손을 든 도시재생과 박지민 주무관에게 돌아갔다. 그는 모든 문항에서 오 군수와 같은 쪽의 손을 들어 '행운(?)'을 잡았다. 오 군수는 직원이 좋아하는 음식을 물은 뒤 "맛있는 소고기를 골라 듬뿍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오 군수와의 식사권 행운을 가진 도시재생과 박지민 주무관과 오 군수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오 군수의 입에선 의령을 살리자는 말이 종종 나왔다. 말의 언저리엔 절박함이 뭍어났다. 그만큼 인구 늘리는 것이 급선무다.

즉석 행사도 이어졌다. 직원과 군수가 종이컵 전화로 말을 나누는 이벤트인데 직원이 군수에게 물었다. 이른바 '들리시나요'다.

오 군수는 갠취(개인 취향)의 의령 맛집을 소개해 달라는 말엔 "미식가이지만 청국장에 호박잎 등 채소쌈을 좋아한다. 다만 소바(국수)와 국밥은 잘 안 먹는다"고 소개했다. '짜글이(찌개와 볶음 중간 정도 음식)'에 '소주 한잔'을 비 오는 날에 최고의 별미로 꼽았다.

그는 이러한 의령의 향토 음식을 보다 더 알리기 위해 2019년 처음 연 요리경연대회 규모를 키운 '향토음식 전국요리경연대회를 '리치리치 페스티벌(부자 축제)' 기간에 개최한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28~30일 의령 일원에서 펼쳐지는 첫 '리치리치 페스티벌'을 계기로 의령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내년부터 관광객이 많이 올 찾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직원이 종이컵으로 오 군수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오 군수가 종이컵을 귀에 대고 직원의 질문을 듣고 있다.

행사 마지막에 준비한 것은 '겁 없는 신규들' 타이틀을 단 영상이었다. 오 군수는 단상에서 내려와 대형 스크린 앞에 앉아 새내기들의 다짐 영상을 지켜봤다.

이 영상은 이달에 임용을 앞둔 새내기 직원 14명에게 '나에게 의령이란' 질문을 하고, 짧게 답하는 내용이다.

새내기 직원들이 '나에게 의령이란' 영상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사회자는 이어 '오 군수에게 의령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오 군수는 "희망이다"라고 간결히 답했다.

그는 "의령 산골(화정면)에서 태어나 전교생이 500명인 초등학교를 새마을애향기를 들고 다녔다"면서 "도시화로 지금 고향은 사람이 떠나 힘들어져 있다. 대학에서나 정치를 하면서 배운 경험과 역량을 쏟아붓겠다. 의령은 부족하고, 해야 할 게 많다"고 부연했다.

행사를 끝낸 뒤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상 정창현 기자

이날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가면서 날씨가 추워지자 행사장엔 준비했던 작은 담요와 핫팩이 등장했다.

오태완 군수는 "날씨만 쌀쌀하지 않았으면 작고 소탈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나왔을 것"이라며 아쉬워 하면서도 "솔직히 행사를 앞두고 겁도 먹고 걱정도 세게 했다. 그렇지만 다음엔 더 세게 고민할 정도로 내실을 기하겠다"며 이날 행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더불어 젊은 직원들을 치켜세웠다.

그는 "오늘 토크를 했지만 굉장히 좋은 자리였다. 소중한 추억이 됐으면 한다. 여러분은 그 어렵다는 고시 합격생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달라. 모두가 공감한 것들은 정책으로 만들어 의령 발전에 오롯이 접목시키겠다"고 했다.

오태완 군수의 마지막 말은 "사랑합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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