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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이야기] 오늘(7일)은 입동(立冬)···김장 준비 철입니다

정기홍 기자 승인 2022.11.07 07:05 | 최종 수정 2023.11.09 00:29 의견 0

오늘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입니다.

24절기 중 19번째 절기로 서리가 내린다는 바로 직전 절기인 상강(霜降)을 지난 뒤 15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전 15일입니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225도일 때이며 양력으로는 11월 7일 또는 8일에 듭니다. 김장 준비 등 겨울채비로 서서히 바빠지는 철이기도 하지요.

지난해에는 30년만에 가장 따뜻한 입동이었는데 오늘 경남 진주 지방의 아침최저기온은 0도로 춥습니다. 진주시 진성에선 살얼음이 관측됐습니다.

지난해 서울(20.2도)과 인천(20.1도)은 지난 1991년 이후 입동 기온으로는 최고였습니다. 최고기온은 오전 9시 1분과 오후 6시 사이에 제일 높은 기온이며 보통 오후 3시 전후에 기록됩니다.

서양에서는 입동일을 성인 대축일, 즉 '핼러윈 데이'를 겨울이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답니다.

지난해 가을 경기 소요산 단풍을 즐기려 나선 시민들. 동두천시 제공, 더경남뉴스 DB

중국에서는 입동 후 시절을 5일씩을 초후(初候), 중후(中候), 말후(末候) 등 3후(三候)로 나눴습니다. 초후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에는 땅이 얼기 시작합니다. 말후가 되면 꿩이 드물어져 먹이였던 조개가 많이 잡힌다고 했습니다.

입동 즈음에는 산과 들에 나뭇잎이 떨어지고 풀들이 말라가고 동면을 하는 동물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습니다.

'회남자(淮南子)'의 '천문훈(天文訓)'에는 '추분(秋分) 46일 후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고 적었습니다. 낙엽이 지는 이유는 나무들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영양분의 소모를 최소로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농업인들의 말을 빌리면 흑염소 등 방목 가축도 겨울이 닥힐 것을 알고 수초 등을 많이 먹어둔다고 하더군요.

옛날 이 무렵에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했습니다. 입동을 전후해 5일 전후에 담근 김장이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배추와 무가 약간 언기가 있어야 맛이 더 든다는 뜻인데, 요즘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김장철이 늦어졌습니다. 올해 경남을 비롯한 부울경 지방의 김장은 좀 더 있어야 합니다. 배추와 무가 김장을 할만큼 다 자라지 않았습니다.

옛날 김장 모습.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오래 전 이 때는 또 농가에서 냉해(冷害)를 줄이기 위해 수확한 무를 땅에 구덕(구덩이)을 파고 저장했습니다. 한겨울 밤에 땅 속에 얼어있는 무를 끄집어내 따뜻한 아랫목에서 깎아먹는 맛은 잊기 어려운 향수이자 추억의 맛입니다.

추수를 하면서 들판에 두었던 볏짚을 모아 겨우내 소의 먹이로 쓸 준비도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겨울철에 다른 먹이가 없어 주로 볏짚을 썰어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였습니다. 요즘 축산 농가는 '공룡알(마시멜로)'이라고, 추수한 볏집을 통째로 구입하지요.

농가에는 입동을 즈음해 고사를 많이 지냈습니다. 대개 음력으로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날을 받아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하고 제물을 장만해 곡물을 저장하는 곳간과 마루, 소를 기르는 외양간에서 고사를 지냈지요. 고사를 지내고 나면 농사철에 애를 쓴 소에게 고사 음식을 가져다주고 이웃 간에도 나누어 먹었습니다.

치계미(雉鷄米)라는 미풍양속이 있었습니다. 지역의 향약(鄕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치계미는 계절별로 마을에서 양로잔치를 벌였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들을 모시고 음식을 준비해 대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치계미는 본래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 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했는데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비롯된 풍속입니다. 마을에서 아무리 살림이 없는 사람이라도 일년에 한 차례 이상은 치계미를 위해 곡식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도랑탕 잔치'로 대신했다고 하네요. 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이 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10월부터 정월까지의 풍속으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겨울철 궁중의 양로(養老) 풍속이 민간에서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입동을 즈음해 ‘입동보기’라고 점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하네요.

충청 지역에서는 속담으로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전해옵니다. 입춘 때 보리를 뽑아 뿌리가 세 개이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점치는데, 입동 때는 뿌리 대신 잎을 보고 점을 칩니다. 입동 전에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 개가 나야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는 속신이지요.

또 경남 지역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 날아온다'고 하는데 특히 밀양 지역에서는 갈가마귀의 흰 뱃바닥이 보이면 이듬해 목화 농사가 잘 될 것으로 여겼답니다.

농사점과 함께 입동에는 날씨점도 쳤다고 하네요.

제주 지역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겨울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하고, 전남 지역에서도 입동 때의 날씨를 보고 그해 겨울 추위를 가늠했습니다. 대개 전국적으로 입동에 날씨가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추울 것이라고 믿었다고 하네요. 올해 입동 낮기온은 30년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입동 절기의 속담으로는 '9월 입동 오나락이 좋고 10월 입동 늦나락이 좋다'가 있는데 이는 음력 9월에 입동이 든 해는 추위가 빨리 오므로 조생종(早生種)이 좋고, 음력 10월에 입동이 든 해는 추위가 늦게 오므로 중만생종(中晩生種)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또 '입동 전 보리씨에 흙먼지만 날려주소'는 남부 지방의 보리 파종은 10월 중순이 적당하나 아무리 일손이 부족해도 입동 전엔 마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입동 후에 보리를 파종하면 발아와 생육이 부진해져 겨울 추위에 해를 입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입동 전에 보리는 묻어라', '입동 전 송곳보리다', '입동 전 가위보리다'가 있습니다. ‘입동 전 송곳보리’는 입동 전에 보리 싹이 송곳 길이로 자라야 이듬해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이고, 가위보리는 보리 잎 두 개가 돋아난 때의 모양이 가위 모양과 같다고 해 붙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입동날 최고기온이 15도 안팎으로 온화한 편이고 딱히 겨울 추위가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실제 24절기가 좀 늦어졌습니다. 겨울 날씨도 산간 지방이 아니면 소설(22일) 무렵에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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