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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사진관] 어쩐지 서러운 꽃,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5.22 04:55 | 최종 수정 2023.05.26 05:36 의견 0

찔레꽃은 수수한 야생화의 품성을 잘 지닌 꽃입니다. 늦봄의 오뉴월 들녘이나 산길에서 아무렇게나 피어 있어 흔한 들꽃이지요. 예쁘다란 정감(情感)보다는 수수하고 애처로운 느낌이 더 와닿는 꽃이라고 할까요.

하얀 찔레꽃은 서럽거나 애처롭거나, 슬퍼져서 어딘지 모르게 마음 구석을 시리게 하는 꽃입니다. 꽃의 색깔이 하얘서? 아니면 화려하지 않고 볼품이 덜해서 그럴까요?

경남 진주시 진성면 월령소류지의 농삿물이 내려오는 도랑가에 핀 찔레꽃을 찾아 앵글에다 담았습니다. 언제 피나 하고 몇 번 들렀다가 찍었는데 이유는 잎보다 먼저 피는 매화나 벚꽃, 개나리, 진달래 등을 보면서 찔레꽃도 당연히 잎이 나기 전에 피겠거니 했는데, 잎보다 나중에 나오는 꽃이었습니다.

무리지어 활짝 핀 찔레꽃

찔레나무는 줄기가 '우거져 덤불을 이루는' 떨기나무과로, 가시덤불이 두서없이 심할 정도로 엉겨있습니다. 과수원에 예취기로 풀을 벨 때 줄기가 튀어 얼굴을 치거나 산행을 힘들게 하는 성가신 나무이기도 합니다.

찔레란 이름이 ‘가시가 찌른다’는 말에서 온 것처럼 자기 몸을 보호하려고 가시를 달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찔레꽃은 봄이 한창 무르익을 5월 중순 이후 하얀색 또는 연분홍색 꽃이 피는데 소박하면서 은은한 향기가 납니다. 흰색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잘 맞는 꽃이지요. 아직 한국적인 것을 많이 갖고 있는 북한의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꽃 중에서 진달래와 찔레꽃은 유독 북한이 연상되는 꽃이지요.

찔레꽃은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꽃이기도 합니다.

연한 찔레순은 1960~1970년대 보릿고개 시절에 아이들의 요긴한 간식거리가 됐는데, 비타민과 각종 미량 원소가 듬뿍 들어 있어 성장에도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익어가는 보리밭 길 옆에는 언제나 찔레꽃이 피어 있었지요. 연한 줄기(순)를 꺾어 껍질을 벗겨서 먹으면 정말 맛있었습니다. 띠의 어린 줄기 이삭인 '삐삐(사투리)'라는 줄기 속의 하얀 솜을 빼내 껌처럼 질겅질겅 씹어먹던 추억이지요.

길 옆 돌무지를 감싸안고 핀 찔레꽃은 처연하기도 합니다. '뻐꾹~뻐꾹' 뻐꾸기나 '구구구~' 멧비둘기 울음소리마저 들려오면 그저 슬픔과 서러움이 겹쳐 느껴진다고나 할까요?찔레꽃 옆을 꽃상여가 지나면 더 처량해지는 꽃이 찔레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가수라는 장사익 씨의 노래 '찔레꽃'을 듣고 있자면 한국인의 심성을 여지없이 끄집어냅니다.

장사익 씨의 '찔레꽃' 노랫말을 우선 보겠습니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간주

햐얀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그래서 울었지(찔레꽃처럼 노래했지)
밤새워 울었지(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 향기는(찔레꽃처럼 사랑했지)
너무 슬퍼요(찔레꽃처럼 살았지)
그래서 울었지(찔레꽃처럼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장사익 씨는 하얀 찔레꽃을 슬프고 서러운 꽃으로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애처로움을 마음의 구석에 갖다놓는 꽃이 찔레꽃입니다. 검은 치마에 하얀 저고리를 입은 시골 처녀의 한쪽 머리에 꽂은 찔레꽃은 더 마음을 시려지게 하지요. 어떤 이유에선지 멀리 떠나간 오빠를 연상시키고, 저 하늘로 가신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꽃입니다.

하지만 찔레꽃은 참 순수한 꽃입니다. 흰옷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순백색 순수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꽃이지요. 영혼이 흰 꽃입니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한국 토속의 예쁨이 꾸밈없이 와닿습니다. 향기도 은은하면서도 깊지요.

요즘엔 가시 있는 찔레꽃은 산골 아니면 보기 힘듭니다. 도시 근교의 길가나 강가에서 접하는 찔레꽃은 거의 가시가 없지요. 꽃은 커졌고 화사해졌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꽃은 지근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좀 알려졌다는 찔레꽃 노래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이연실의 가을밤(찔레꽃)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엄마 엄마 나 죽거던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 좋은 곳 묻어 주.
비 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어 주.
내 친구가 나 찾으면 엄마 엄마 울지 마.
논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기럭 기럭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엄마 엄마 찾으며 날아갑니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시골집 뒷산길이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여기서도 찔레꽃은 서러움과 슬픔으로 연결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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