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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로'의 말에서 찾는 지혜] "아이고, 내 똥강아지"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5.04 19:46 | 최종 수정 2024.05.06 00:02 의견 0

글을 배우지 못한 분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0~70년대 일이지요. 고등교육을 받은 유학생은 동네에선 부러움 대상이자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 있는 잣대가 되곤 했던 때입니다. 하지만 '신식 우쭐'은 일자무식의 '촌로 한마디'에 보기좋게 나가떨어집니다. 짧은 한 마디가 삶의 지혜를 알려줍니다. 밭일 들일 나가며 툭 던지던 그 옛날 우리의 할매·할배들의 말을 찾아 그 속내를 알아봅니다. 항시 농어촌의 살가움을 찾는 더경남뉴스의 또다른 '찾아서 연재' 접근법입니다. 편집자 주

"아이고 우리 새끼, 똥강아지"

젖먹이 어린 애가 있는 가정에선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할머니가 있는 집안에선 더 자주 듣는 말이지요. 아이는 예나 지금이나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집안 복덩이입니다.

말 그대로 아이에겐 '내리사랑'이 듬뿍 담겼습니다.

한 종편의 '현역가왕'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트로트 가수 전유진(고 2년) 양의 외할머니가 최근 찾아온 전 양을 안으며 "아이고, 내 똥강아지"라고 하더군요. 아이 보기 힘든 시절에 오랜만에 듣는 말이고, 옛 감성을 느껴본 말이었다.

이 말은 예전엔 어느 집이나 동네에서나 그냥 하고 듣는 말이었습니다. 예사스런 말이었지요.

따라서 이 말은 굳이 유래까지 찾는 부산을 떨지 않아도 의미가 충분히 유추되는 말입니다.

'똥강아지'는 '똥'과 '강아지'가 합쳐진 말입니다. 똥싸개 아이는 똥오줌을 가리지 못해 엄마나 할머니가 늘 처리해야 합니다. 항시 기저기를 채워놓지요. 이른바 부지불식간에 '응아'를 하면 옆에서는 코를 막지만 엄마나 할머니는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치워냅니다.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의 뒷처리엔 차이가 있습니다. 엄마는 무덤덤한 편이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오구 오구, 응아해~쪄"라며 치우고선 살갑게 안아줍니다. 귀여운 복슬강아지를 대하듯, 안고 비비고 듬뿍 정을 쏟아내는 것이지요.

이렇게 '똥'과 '강아지'란 이질 단어는 묘하게 만나 느낌이 전혀 다른 말을 탄생시킵니다. 이 말 어디에서 똥냄새가 나는지요? 솜이불 같은 포근함이 와닿는 말이 됩니다. 듣는 이에겐 정겨움만을 남깁니다.

따라서 '똥강아지'는 사랑방 아랫목에서 손주를 돌보던 '할머니의 단어'로 쳐도 무방하겠습니다.

집안에 애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무한 헌신, 내리사랑이 없어져가는 요즘입니다. 안타깝게도 '똥강아지'란 말이 주위에서 점점 듣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냄새나는 '똥'을 무한대로 써도 한번도 '똥냄새'가 나지 않는 '똥강아지'입니다. '똥강아지' 말이 집안에서 더 자주 들려야 가정이 사는 맛이 나고 더 화목해지겠지요.

내일(5일)은 어린이 날입니다. 사흘 뒤는 어버이 날(8일)입니다.

할머니는 기저기 치우던 손주에게 계좌 용돈만 보내지 말고 "우리 똥강아지 잘 지냈어? 아이고 많이 컸네", 할머니에게 응석부리며 컸던 청년이면 직접 찾아봬 "할매, 똥강아지 왔어요"라며 큰소리로 기척해보세요.

사립문과 담장, 현관문 너머에 "똥강아지" 말이 잦게 들리는 5월 가정의 달이길 바랍니다. 더불어 '똥강아지'가 그리움의 단어로 자리하지 않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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