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알고주알 어원이 흥미롭습니다. 미주알은 '창자의 끝 항문'을 뜻하는데, 미주알고주알은 '미주알'에 '고주알'을 합친 말입니다. 어문학계는 고주알이 미주알과 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인 말로 해석합니다. 창자 밑구멍의 끝인 미주알은 '눈으로 보기 어려워 숨은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말하거나 캐묻는 것'을 뜻합니다. 더경남뉴스 기자들이 숨은 기삿거리를 찾아 '사랑방 이야기식'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오늘(29일) 새벽 한국의 낭자들, 여궁사 3명이 프랑스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 역사상 전례 없는 '양궁 10연패'를 달성했습니다. 30도 열대야 더위에 지친 국민들에게 경기 내내 졸깃졸깃한 스릴을 주면서 막판에 청량감을 퍼붓고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축구가 오랜 기간 올림픽에 연속 출전하다가 이번 파리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탈락해 충격을 주었다느니 했지만 이처럼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요. 물론 2002년 '월드컵 4강'이야 말 할 건 없고요.
그런데 옆에서 TV 중계를 지켜보던 가족 중에 "온라인에서는 10연패를 또 10번 연속 패했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겠네"라고 하더군요.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기자의 머리엔 최근의 '우천시'나 오래 전 '사흘'을 두고 온라인을 달구던 논란이 떠올랐습니다.
문해력, 즉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 논란이지요. 하지만 기자도 가끔 '사흘 논란' 이후 이 단어가 나오면 손을 꼽아 세어봅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아라비아 숫자 1, 2, 3에 순치된 세대에선 충분히 혼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참고로 기자는 사흘 논란이 있기 전에 별 생각 없이 잘 구별했습니다. 논란 이후 가끔 헷갈립니다. '아는 게 힘, 모르는 게 약'이란 말처럼 알게 된 게 독이 된 것입니다
10연패에서의 연패(連覇)란 '운동 경기 등에서 연달아 우승한 것'을 뜻합니다. 연결할 연(連), 으뜸 패(覇)입니다. '패권을 잡다' 등 주로 권력에 붙는 단어입니다.
달리 소리(음)로 같은 연패(連敗)란 게 있는데 연결할 연(連), 패할 패(敗)로 '싸움이나 경기에서 계속해 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 개념이지요.
둘의 말소리가 똑같습니다. 발음 높낮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한 네티즌도 댓글에 "10연패를 한글로만 쓰면 두 개의 상반된 뜻이 있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혼돈을 할 수 있다"며 "한자로 쓰든지 '연속 제패'로 풀어 쓰든지 해야지"라며 훈수를 들었습니다.
사흘 논란을 되새김해 보겠습니다.
지난 2022년 8월 '광복절 사흘 연휴'를 다룬 기사에 일부 독자가 '4일간을 논다'고 잘못 알고 댓글을 올려 문해력 논란이 일었습니다.
순수 우리말인 '사흘'(3일)과 '나흘'(4일)을 혼동한 것이지요.
다음 해 1월에는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인 래퍼 노엘(23·본명 장용준)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신곡 '트리포노엘(TRIPONOEL)'의 트랙리스트와 10번 트랙 '라이크 유(Like you)' 가사 일부를 공개했는데 이 노래 가사에 '사흘'과 '나흘'을 혼동한 듯한 구절을 담아 '문해력 논란'을 다시 지폈습니다.
사흘은 3일째 되는 날이고 나흘은 4일입니다. 이어 닷새는 5일, 엿새는 6일, 이레는 7일, 여드레는 8일, 아흐레는 9일, 열흘은 10일입니다.
이 노래 가사에서 나오는 '하루, 이틀, 삼일, 사흘'을 해석을 하면 '1일, 2일, 3일, 3일'이 맞습니다.
또 그해 8월에는 '심심(甚深)하다(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비슷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카페가 웹툰 작가 사인회 예약 오류를 사과하기 위해 SNS에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공지하자 일부 네티즌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심심한 사과라고?" 등으로 비꼬고 비판한 것이지요.
'심심(甚深)'을 한글로 해석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잘못 안 것이지요. 한자의 뜻은 심할 심(甚), 깊을 심(深)입니다.
의미를 모르고 말했을 수도 있지만 알고서도 사고가 미흡하다는 뜻으로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문해력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현직 어린이집 교사가 일부 학부모의 문해력(문맥 해독 능력)을 우려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달 초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어린이집 교사가 '요새 아이 부모들 너무 멍청하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자신을 9년차 어린이집 교사라고 밝힌 그는 "저도 그렇게 똑똑하고 학벌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사람들은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다. 그런데다 고집은 세지고 말은 더 안 통한다"며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글에서 9년 전과 비교해 학부모로부터 어린이집에서 공지한 내용과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그가 직접 겪은 사례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보통 'OO를 금합니다'라고 하면 당연히 금지한다는 뜻이지 않나. 그런데 일부 학부모들은 '금'이 좋은 건 줄 알고 '가장 좋다'는 뜻으로 알아듣는다"고 했습니다.
또 "'우천시 OO로 장소 변경'이라고 공지하면 '우천시에 있는 OO 지역으로 장소를 바꾸는 거냐'고 묻는 분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우천시는 '비가 올 때' 혹은 '비가 오면'으로 해석하는데 지자체명인 '시'를 연상한다는 지적입니다. 경기도엔 부천시란 지자체가 있지요.
꽤 황당한 해석이지만 '우천시 실내 체육관으로 장소 변경'이란 안내글을 보면 그럴만하겠단 생각도 듭니다. 문해력의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이 어린이집 교사는 "섭취, 급여, 일괄과 같은 말조차 뜻을 모르고 연락해서 묻는 분들이 예전에는 없었는데 요새는 비율이 꽤 늘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이어 "단어뿐 아니라, 말의 맥락도 파악을 잘 못 한다. 'OO해도 되지만,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라고 했더니 '그래서 해도 되냐, 안 되냐'고 문의한 학부모가 네 명이었다"며 "최대한 쉬운 말로 풀어내서 공지해도 가끔 이런다"고 토로했습니다.
완전한 한글 세대인 젊은층에선 한자어인 저런 단어에 헷갈려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사안마다 따박따박 '따져 묻는' 지금의 우리 시대상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네티즌들의 글도 흥미롭네요.
"소풍 가서 중식 제공한다니까 '우리 애는 한식으로 해 주세요'라고 하는 부모도 있다", "'금일'이 '금요일'인 줄 아는 부모도 있다, "'구두 경고'를 구두 신고 발로 찬다고 이해한 대학생도 있다"는 등 흥미로운 사례를 덧댔습니다. "'우천시'를 '우산은 비덮개'라고 하면 이해할까"라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한글 세대가 중추 역할을 하는 시대입니다. 40~50대가 주력 역할을 합니다. 이 말은 소릿말로 구별을 하는 한글로 소통하는 시대란 말입니다.
다만 근본적으로 한자글이 무수히 통용되는, 한글과 한자의 혼용시대이기도 합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선 한자를 기반한 한글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자를 알면 뜻을 보다 빨리,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요.
이런 면에서 국립국어원과 한글학회 등 우리말을 연구하는 기관, 단체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한자어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위의 사례들에서 보듯 사회 전반에서 통용이 안 된다면 홍보를 하든 순수 우리말로 대체해 가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고속도로 등 대로변 옆의 좁은 길인 '갓길'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장관 시절 '노견(路肩·길어깨)'을 바꾼 것인데 대성공작이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일상화돼 많이 쓰지요. 그를 간혹 '갓길 장관'으로 부릅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팩데믹(세계적인 대유행) 2년간 학교 수업을 못해 학생들의 기초학력과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현장 교사들에게 들어봐야 하겠지만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실제 전국의 시도 교육청이 학생들의 이 같은 문해력이 문제가 되자 문해력 향상에 나섰다고 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초중고교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한 문해력·수리력 진단 검사를 올해도 시행하는데 검사 대상을 지난해의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문해력과 수리력 진단 등을 통해 학생의 미래 역량을 신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몇 개월 전 한 경찰청에 취재를 하면서 뒤끝이 씁쓸한 경험을 했습니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각 지방청 명칭을 달리 써놓아 헷갈리니 대별해야 하겠다"고 했더니 '대별'이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며 역정을 내더군요. 구별과 비슷한 말이라고 하며 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오징어'와 '수루미' 이야기도 다시 해봅니다.
아래 내용은 더경남뉴스 '우리말 산책'(2023년 10월 15일자)에서 소개한 내용입니다.
오징어의 경상도 사투리인 '수루미'가 사어(死語)가 돼 간다는 기사입니다.
중년 이상 경상도 사람이면 수루미가 오징어의 사투리라는 것을 아는데 이 지역에서 줄곧 사는 40대 초반의 조카는 '수루미'란 말을 몰랐습니다.
물론 중년 이상도 자주 듣는 말은 아닙니다.
경상도 선술집에서도 "오징어무침 하나 주세요"라고 하지 '수루미무침'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수산물을 사는 마트나 오징어 안주를 파는 호프집에서도 오징어라고 합니다.
수루미는 일본어에서 유래됐습니다. '스루메(するめ)'인데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말린 오징어'나 '오징어 포' 정도로 해석됩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주로 경상·전라 지방에서 자리를 잡은 말로 짐작됩니다.
만약에 이번 파리올림픽 여자 양궁에서 넘기 힘든 징크스라는 '아홉수'에 걸려 10연패를 못 했다면 어떤 말이 돌았을까요?
"결국 '10년' 앞에서 패했다"느니 하는 입에 담기 거북한 말들을 생산해 냈겠지요.
시람의 입에서 나와 작동하는 언어란 게 이런 성격을 지녔는가 봅니다.
웃자고 하는 말, 남을 겨냥한 욕으로 악용되면 안 되겠지요. 이런 우려를 완벽히, 말끔히 없애버린 우리 양국 낭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준결승 경기, 결승 경기에서의 '슛오프' 정말 졸깃졸깃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