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오랜 폭염에 모두가 지쳐가는 입추(立秋)입니다. 설 입(立), 가을 추(秋), 즉 가을을 세운다는 뜻인데 달리 '들가을'로 불립니다.
절기란 뜻은 '한해에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인데 무색합니다. 다만 직전 절기인 대서에서 입추 사이가 가장 덥다고 합니다. 무더위는 더욱 힘을 곧추세워 다음 주에도 폭염은 지속된답니다.
입추는 24절기 중 13번째로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자리합니다. 음력으로는 7월이고 양력 8월 7~9일에 듭니다. 한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든다는 것을 알리는 절기이고,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 석달을 가을이라고 합니다.
입추에 관해 알아봅니다. 입추 절기는 오늘부터 보름간입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입추는 7월의 절기다. 초후(初候)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차후(次候)에 흰 이슬이 내린다. 말후(末候)에 쓰르라미(寒蟬·가을매미)가 운다'고 했습니다.
바깥에는 매미 울음이 쩌렁쩌렁합니다.
하지만 밤을 마다않고 종일토록 며칠 간을 울어대다가 기력이 다해 길가에 떨어져 퍼더덕 하며 잠시 나는 모습을 보노라면 생명체의 유한을 느낍니다. 7년을 유충으로 땅 속에서 지내다가 세상에 나와 7일을 울고 간다지 않습니까?
고려시대에도 더위를 식히려는 얼음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고려사 정종(正宗) 병자(丙子) 2년(1036)에는 '입하(立夏)부터 입추까지 백성들이 조정에 얼음을 진상하면 먼저 대궐에서 쓰고, 남은 것을 조정 대신에게 나눠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입추에는 국사를 돌보느라 더위에 지친 관리에게 하루를 쉬게 했다고 합니다.
더위를 이겨내는 것과 달리 입추 날씨는 농삿일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농업 위주로 살아온 옛날에는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자라는 때여서 맑은 날씨가 지속돼야 했습니다.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속담도 뙤약볕에 벼가 자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잘 큰다는 뜻입니다.
이와 관련, 조선시대에는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모내기철 가뭄에 지내는 기후제와 반대 개념의 제례입니다. 이는 중국에서 농사신에게 행하던 '영성제(靈星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입추 날씨를 보고 점도 쳤습니다.
이날 하늘이 청명하면 만곡(萬穀)이 풍년일 것으로 여겼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했답니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있으면 다음 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가축을 언급한 것은 천둥과 지진으로 놀라 제대로 먹지 못해 비실비실대며 앓다가 죽는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실제 어린 염소는 인근 감 과수원에 까치 등을 쫓느라 쏘아대는 대포 소리에 놀라 죽는 경우가 많다네요.
이 무렵에는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합니다.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이 여기서 생겨났습니다.
또한 입추 절기부터는 가을과 겨울 준비를 시작해야 합니다. 밭에다 겨우내 먹을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어야 합니다.
곧 토담 고샅길의 작은 틈새에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겠지요. 40도의 폭염을 보노라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오긴 올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집안에 연로하신 어르신이 계시면 꼼꼼히 살펴야 할 때입니다. 긴 무더위를 이겨내느라 기력이 쇠해 가을에 큰일을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