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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 민심] '설마'에 40대 여성 목숨 앗아가···경남 하동 진교파출소 경찰들의 안일함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8.21 01:18 | 최종 수정 2024.08.30 19:13 의견 0

우리 속담에 '물에 빠질 신수면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가 있다. 이 속담이 변형돼 '세숫대야 물에 빠져서도 죽는다'는 말도 한다.

깊이도 없는 접시 물에 빠져 죽는다니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사람이 죽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의식을 잃고 넘어졌는데 하필 깊은 접시에 고인 물에 입과 코가 빠진다면 질식해 사망할 수도 있다. 무슨 일이든 매사 준비하고 조심하란 경종의 말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며칠 전 경남 하동경찰서 진교파출소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40대 여성이 지난 16일 밤 2시 12분쯤 순찰차 안에 들어갔다가 17일 오후 2시쯤 숨진 채 발견됐다. 무려 36시간을 차 안에 갖혀있었다. 순찰차에 탄 지 12시간 뒤인 16일 오후 2시 전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검안의 1차 조사에서 온열질환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당시 하동에는 폭염 특보가 발효 중이었고 16일과 17일 낮 최고 기온은 34~35도를 오르내렸다.

관련 기사에 '저 파출소는 순찰을 하지 않고 근무 태만 했구만. 우리 지역 파출소 근무자들은 의무적으로 순찰차를 운행해야 하기 때문에 순찰차 몰고 돌아 다니다가 한적한 곳에 세워 놓고 낮잠 자다 가든(던)데'란 댓글(pal5 2024.08.20 14:31)이 달렸다.

이글을 보면서 올해 초 기자의 지인이 하던 말이 기시감(데자뷰)으로 다가섰다.

기시감(旣視感)이란 '경험 해본 적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을 뜻한다.

지인은 자신이 사는 농촌의 파출소 경찰들은 순찰차를 으슥한 구석에 세워놓고 낮잠을 자고 나오는 경우를 몇 번 봤다고 했다.

당시 기자는 한적한 농촌이라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다며 넘겼다.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도시처럼 신고가 자주 들어오는 곳이 아닌, 큰 일도 잘 나지 않는 곳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이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론 '과하면 탈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떠올렸다. 온갖 세상사를 접하는 오랜 기자 생활에서 오는 직감 같은 게 더러 있다. 경험에 따른 습관이고 몸에 배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확률적으로도 꽤 맞아떨어진다.

각설하고, 이번 경남 하동의 순찰차 안 여성 사망 사고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거둘 수밖에 없게 됐다.

경남경찰청과 하동경찰서 등에 따르면, 하동경찰서 진교파출소 순찰차 뒷좌석에서 숨진 40대 여성의 1차 부검에서 사망 원인은 '고체온증'으로 추정됐다.

이 여성은 지난 16일 밤 진교파출소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순찰차 뒷좌석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 순찰차의 뒷좌석은 범죄 혐의자 등이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차량 내부에 손잡이가 없어 외부에서만 문을 열 수 있다. 또 앞 좌석과는 안전칸막이로 막아 놓아 외부 도움 없이는 탈출하기 어렵다.

결국 36시간을 차안에서 폭염의 괴로움 속에 갖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하루에 한 번씩 하는 매뉴얼(경찰청 훈령)대로 차량 점검을 했다면 이 여성을 충분히 구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관의 근무 소홀, 근무 태만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다. 시쳇말로 평소 '나사가 빠져 있었다'는 말이다.

하동경찰서 전경. 하동경찰서

진교파출소에서는 총 4개조 16명이 4명이 1개조로 2교대(12간씩 근무) 근무를 한다. 주·야간 근무자들은 매일 오전 8~9시, 오후 8~9시에 근무 교대를 한다.

경찰의 장비관리규칙(제96조 차량의 관리 3항)에 따르면 '차를 주·정차 할 때에는 엔진 시동 정지, 열쇠 분리 제거, 차 문을 잠그는 등 도난방지에 유의해야 하며, 범인 등으로부터의 피탈이나 피습에 대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제96조 차량 관리 4항에는 '근무 교대 때 전임 근무자는 차량 청결 상태와 차량 내 음주측정기 등 각종 장비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해 인계한다'고 돼 있다.

매뉴얼대로라면 진교파출소 근무자들은 지난 16일 밤 2시쯤 숨진 여성이 순찰차에 들어간 뒤인 이날 오전과 오후, 다음 날인 17일 오전 근무 교대 때 차량 점검을 해야 한다.

또 매일 차량 운행기록도 주행 거리를 적어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진교파출소는 사고 직후, 이 순찰차는 비상용으로만 쓰기 때문에 평소엔 활용을 잘 안 한다고 밝혔다. 이 여성이 차 안에 들어가서 발견될 때까지 차량을 운행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이 맞다면 차량 점검은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이 순찰차 차량 블랙박스는 15일 오후 6시쯤부터 꺼져 있었다. 이는 15일 오후 4시 56분쯤부터 이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17일 오후 2시까지 약 45시간 동안 운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17일 오전 10시 58분쯤 이 여성의 부친이 실종 신고를 하고서야 출동을 위해 해당 순찰차를 사용하면서 숨져 있는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근무 경찰들은 이 차량 점검을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근무자가 순찰차 시동을 두 차례 켠 것으로 알려졌다.

앞 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의 명확한 해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차량 점검을 하지 않았든지, 건성건성 점검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CCTV만 틀면 금방 진위가 가려질 수 있다.

실제 어린이들을 태우는 차량에서 뒷좌석에 있는 아이를 발견하지 못해 사망한 사례도 가끔 알려지고 있다. 이 대충 점검했기 때문이다.

근무 태만의 또 다른 사례도 나온다.

진교파출소 주변 방범카메라(CCTV)에는 숨진 여성이 사고 순찰차를 타기 전 옆에 있던 다른 순찰차를 타려고 하려다 문이 열리지 않아 포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근무자는 CCTV로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의 장비관리 규칙 매뉴얼대로 주차할 때는 순찰차 문을 잠갔더라면 당연히 숨진 여성이 들어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이 여성이 순찰차에 타기 전에 진교파출소 입구를 1분 남짓 서성거린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날 근무자는 이도 확인을 하지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숨진 여성이 파출소 문을 두들기거나 초인종을 눌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날 두 대의 순찰차는 출동을 하지 않아 근무자 4명은 파출소에 있었다.

경남 하동군 진교파출소 전경. 하동경찰서

이 사고의 경위를 되짚어보면 이 여성을 사망 추정 6시간 전에 살릴 기회는 두 번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여성이 순찰차에 들어간 6시간 뒤인 16일 오전 8~9시와 30시간 만인 17일 오전 8~9시 순찰차를 제대로 점검했으면 살아 있는 상태에서 구할 수 있었다. 이 여성이 17일 오후 2시 전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차량 운행을 하지 않았다면 인수 인계를 하지 않아 점검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현재 경찰청은 이들 근무자가 규정에 맞게 근무했는지, 허위로 일지를 작성했는지 등 앞 뒤가 맞지 않는 사안을 감찰 중이다.

한편 경찰청은 대대적인 특별 점검에 나섰다.

시·도청별 3급지 지역 경찰관서(11개 청 산하 480개 지역 관서)를 대상으로 20일부터 오는 30일까지 특별점검을 한다.

점검단 54명을 7개 조로 편성해 지정된 근무 상황 준수 여부, 근무 교대 시 팀 간 사무·장비 등 인수·인계 여부, 중간관리자 관리·감독 실태 등을 들여다본다.

만시지탄이다.

기자가 수 년 전에 겪은 경찰관의 막무가내 행태 두 사례를 소개하며 이 사고의 평가를 마친다.

#사례1

기자는 십수 년 전 서울 올림픽고속도로 나들목 근처에서 차량 순찰 경찰관과 언쟁을 벌였다.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한강 자전거 전용길을 이용해 50km를 라이딩 하는 곳이다. 강서구 마곡 쪽으로 나오는 길 횡단보도가 급커브에 설치돼 과속 차량에 사고가 날 우려가 있으니 한 5m 정도 옮기는 내부 건의를 해달라고 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여서 기자는 건널 때마다 정말 신경을 바짝 써야 했다.

보통 경찰관의 스타일을 알기에 조심해서 건의했다. 하지만 듣는 현장 경찰관에겐 거드름이 물씬 풍겨났다. 별 시원찮은 말처럼 듣고 흘리려는 듯했다. 씨알도 먹히지 않은 것 같아 언쟁을 하다가 불쾌하게 자리를 떴다.

#사례2

7~8년 전 어느 날, 자전거 운동을 마치고 집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 자전거를 다시 타려는데 시건 장치에 고장났다. 도저히 풀 수 없어 바퀴 하나를 들고 걸어 오는데 순찰차가 서더니 20대 후반~30대 초반 경찰관이 내려 막무가내 자전거를 어디서 갖고 오느냐고 물었다. 훔쳐서 갖고 가는 게 아니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자초지종을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신분증을 달라고 해서 주면서 이런 식으로 시민을 대해서는 안 된다며 항변했다.

기자가 만만찮게 대응을 하자 차량 안에 있던, 50대로 보이는 고참 경찰관이 내렸다.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젊은 경찰관은 죄송하단 말 한마디도 없이 차를 타고 떠났다. 이것이 경찰관의 현주소라며 자리를 떴다. 저런 경찰관이면 정말 범죄 혐의자로 몰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흔히 경찰관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일반인과 비교해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라고 한다. 한편으론 상대적으로 우락부락한 사람이 많은 조직이란 말도 한다. 이런 성격의 사람이 많다 보니 남을 윽박지르고 이겨려고만 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렇듯 시민들이 만나는 현장 경찰관들은 경직돼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또한 경찰 조직이 한 건 실적주의 시스템이 함몰돼 있는 지 자문해 보기를 바란다. 승진을 향한 발길에 애먼 시민들이 차이는 게 없는 지 되돌아볼 일이다.

혹여 '내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경찰관이 있다면 '민중의 지팡이'를 속히 던져야 한다.

경찰청에 요청한다.

여론의 의구심이 비등하니 언제나 내놓는 전수 점검 식은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만고의 진리'에 기대 피라미 몇 마리 잡고, 처삼촌 벌초하듯 일을 처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의 경찰 조직은 '제복의 겸손함'이 아닌 '제복의 함정'에 깊게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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