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 '수갑 체포' 파장이 만만찮게 흘러갑니다. 이 전 위원장 체포 작전은 '방통위 폐지법' 시행으로 이 전 위원장의 면직 하루 만이자 추석 연휴 전날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기자가 보기에도 체포는 매우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혐의점에 대한 법 집행은 누구에게나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 건 지당의 말입니다. 혹여 '이슈는 이슈로서 덮는다'는 항간의 이상한 논리에 기반한 다른 저의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틀간 벌어진 체포와 반응, 파장을 짚어봅니다.
앞서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소환에 응하지 않는다며 2일 오후 강남구 대치동 이 전 위원장의 자택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한 뒤 압송했습니다. 적용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공무원법 위반이고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도착, 수갑을 찬 채 경찰의 체포에 격하게 항의를 하고 있다. TV조선 캡처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이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에서 그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말한 "좌파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 "다수의 독재로 가게 되면 민주주의가 아닌 최악의 정치형태"라는 등의 발언이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거나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위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단체의 고발도 이어졌습니다
이 전 위원장은 이날 영등포경찰서에 압송된 뒤 수갑을 찬 양손을 들고서 “경찰에서 내게 출석 요구서를 세 차례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방통위 폐지법 관련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예정돼 있었고 기관장인 내가 국회에 출석해야 했다”며 “국회에 출석하느라 경찰서에 못 간 내게 수갑을 채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선출 권력보다 (민주당 지지 기반인) '개딸' 권력이 더 센 것이냐. 대통령 위에 개딸 권력이 있냐”고 격앙하게 항의했습니다..
이 전 위원장의 체포 과정을 지켜본 국민의힘은 3일 경찰의 과잉 대응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국민의힘에선 "섬뜩한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식 드럼통 정치의 서막"이라며 막말성 말이 나왔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영등포경찰서를 항의 방문해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장 대표는 지지환 경찰서장과의 면담 후 취재진과 만나 “이번 체포는 절대 존엄 김현지(대통령실 제1부속실장)를 추석 밥상에서 내리고, 이 전 위원장을 올리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분석했습니다.
장 대표는 “경찰이 체포영장을 신청하면서 이 전 위원장이 낸 불출석 사유서를 숨기고, 기록에 첨부하지 않았다면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이고 심각한 수사 기록 조작 사건”이라며 향후 대처가 매우 강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이번 체포영장에 관여한 경찰과 검사, 법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대구·경북의 한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 단체방에서 심각한 정치 탄압이라며 격한 말이 쏟아졌다”며 “우리 당도 전면전을 벌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전했습니다. 수도권 한 의원도 “이재명에 거역하면 누구든 체포할 수 있다는 공포 정치, 드럼통 정치를 본격화 한 것”이라며 공안 정치의 서막임을 비판했습니다.
이 전 위원장이 받고 있는 혐의와 체포의 적법성도강하게 문제 삼았습니다.
판사 출신인 나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 ‘전격 시사’에 출연해 “이 전 위원장이 (지난해 9월) ‘민주당이나 좌파 집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이고 발언한 것을 선거법 위반으로 문제 삼아 체포했는데 그 때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때 아니냐.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전 위원장이 경찰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는데도 체포한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수사 방식”이라는 반응도 강합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경찰에 출석하기로 했지만, 같은 날 민주당이 ‘방통위 폐지법’ 처리를 강행키로 해 국회 출석 의무가 생기자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전 위원장을 면회한 판사 출신의 조배숙 의원은 3일 “이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을 경찰과 검찰, 법원을 동원해 탄압하겠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라고 격하게 비난했습니다.
반면 정청래 민주당 대표 비서실장인 한민수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 분(이 전 위원장)은 각종 혐의를 받고 있는 그냥 수사대상자일 뿐”이라며 “출석 요구가 오면 제대로 수사를 받고, 본인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소명을 하면 된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 수도권 초선 의원은 “사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명분이 더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경찰이 너무 성급하게 체포했다. 국민의힘이 공세할 명분만 줬다”고 경찰의 행위에 비판했습니다.
이날 체포 사태를 계기로 이 전 위원장의 정치적 체급을 더 키웠다는 말도 나옵니다.
한 야권 인사는 “이 위원장이 체포되면서 수갑을 번쩍 들어 올렸는데 이재명 정권에 맞선 보수 여전사 이미지가 더욱 부각됐다”며 “추석 연휴 내내 이진숙 이름이 뉴스에서 계속 회자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주당과 경찰이 이 전 위원장의 몸값을 높여도 너무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전 위원장은 내년 6·3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