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20년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피해자 고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가 검찰이 2일 1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된 혐의 중 일부만을 항소하자 “부분 항소는 항소 포기와 마찬가지”라며 격앙했다.
검찰은 항소 기한 만료일인 이날, 당초 제기했던 혐의 중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이 숨진 이 씨와 유족에게 명예 훼손을 한 혐의만 항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 씨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분 항소? 장난하느냐?”며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포기한 중범죄인데 죄를 묻지 않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 것인가”라며 강력 항의했다.
'서해 공무원 피격' 피해자인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 씨의 친형 이래진 씨. 이 씨 페이스북
이 씨는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자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정치적이라는 논리를 들어 무죄라며 대통령과 총리, 여당 대표까지 거든 국정 농단이 국가의 권리를 포기한 사태를 만들었다”며 “스스로 국가이기를 포기한 이번 항소 포기는 책임을 물을 중대한 범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검찰의 결정은 용납할 수 없어 관련자 전원을 고발할 것”이라며 “검찰의 꼼수 부분 항소 결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날 항소 마지막 시간 때까지) 즉각 전원 항소하라”고 했다.
앞서 검찰은 이날 당초 제기한 혐의 중 서 전 실장과 김 전 청장이 숨진 이 씨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만 항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즉, 해경의 1~3차 수사 결과 발표와 관련, 서 전 실장과 김 전 청장의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명예훼손, 사자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만 항소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TV조선 캡처
핵심 쟁점인 직권남용 관련 혐의는 모두 항소를 포기했다.
이에 따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나머지 피고인들은 무죄가 확정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월북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진 월북한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로 인해 망인과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부분 등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며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항소의 실익 등을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증거 관계와 관련 법리를 면밀히 검토한 뒤 대검과의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해양수산부 공무원이던 고 이대준 씨가 지난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격·소각 됐지만, 서 전 실장 등 당시 문재인 정부 안보 라인 관계자들이 이를 은폐했다는 의혹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2022년 6월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고, 국정원도 박 전 원장 등을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 공직자가 남북 관계 악화를 우려해 피살 사실을 고의 축소 및 은폐했다고 판단, 2022년 12월 이들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했다.
서 전 실장은 이 씨가 피살된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합참 관계자와 김 전 청장에게 '보안 유지'를 하라고 지시한 혐의 등을 받았다.
박 전 원장과 서 전 장관도 '보안 유지' 방침에 동조해 국정원과 국방부 직원들에게 관련 첩보와 문건 등을 삭제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5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사건을 은폐·조작 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서 전 실장에게 징역 4년, 박 전 원장에게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 서 전 장관에게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또 김 전 청장에게는 징역 3년을 요청했다.
검찰은 “고위공직자인 피고인들이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공권력을 악용하고 공용전자기록을 삭제한 뒤, 피격 후 소각된 국민을 월북자로 둔갑시켰다”며 “국민을 속이고 유가족을 사회적으로 매장한 심각한 범죄”라고 했다.
이어 “서 전 실장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인물이었음에도 아무런 대응 조치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격과 소각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은폐할 것을 기획·주도한 최종 책임자”라고 밝혔다.
박 전 원장에 대해서는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의 수장임에도 은폐 계획에 적극 동참했다”, 서 전 장관에 대해서는 “군 지휘 감독의 책임자로서 우리 국민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구조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은 이들이 사건 발생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관계장관회의에서 ‘보안 유지’를 명목으로 사실상 사건 은폐를 지시했다고 봤다.
이들은 이후 해경에는 “수색 중”이라는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하고, 국방부·해경·국정원 등에는 ‘자진 월북’이라는 내용의 허위 보고서와 발표 자료를 만들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법정에는 숨진 이대진 씨의 형 이 씨가 참석해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과 연락할 채널이 없어 구조와 송환 요구를 못 했다고 했지만, 이는 대통령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무책임한 대국민 사기 발언 아니냐”며 “국가와 안보라인이 국민을 지키지 않았고, 북한이 저지른 살인 과정을 지켜본 것은 공직자로서 심각한 오류”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인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 전 실장 측은 “보안 유지 지시는 당연한 절차로, 은폐 목적이 있었다면 해경과 해수부에 사실을 알릴 이유가 없었다”며 “이 사건 수사는 정무적 동기로 기획된 것으로,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진 수사였다”고 주장했다.
서 전 장관 측은 “당시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보안 유지를 지시했을 뿐이며, 월북 판단은 최종적으로 수사를 통해 확정하자고 했다”고 했다.
박 전 원장 측도 “이대준 씨가 자진 월북 의사를 밝힌 첩보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 착용 정황 등을 종합하면 자진 월북 판단은 충분히 근거 있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공개한 사망 당시 '무궁화10호'에 실려 있던 방수복. 당시 월북을 하려면 방수복을 입고 가야 하는데 그냥 헤엄쳐 갔겠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씨 페이스북
당시 한국NGO연합 이희범 상임대표는 “국민 한 사람의 생명보다 정치적 이미지 관리가 우선된 정권이었다”며 “적국의 총탄에 희생된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월북자’로 조작해 명예를 짓밟은 것은 사실상 국가의 자기부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양측의 물러서지 않던 주장은 1심에서 모두 무죄로 선고됐다. 그사이 정권도 보수우파에서 진보좌판러 바뀌었다.
지난달 26일 1심 재판부는 “(월북 여부) 판단 시기가 섣부르거나 내용이 치밀하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특정 결론을 정해 놓고 회의를 하거나 수사한 정황을 찾아볼 수 없다”며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1심 선고 후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상한 논리로 기소해 결국 무죄가 났는데, 없는 사건을 수사해 사람을 감옥에 보내려 시도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항소 포기 검토를 사실상 주문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검찰은 항소 포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