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는 사자성어(四字成語)에서 '생활 속의 지혜'를 배우는 코너를 마련합니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담준론보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른바 사랑채에서 나누는 이야기식으로 보다 쉽게 소개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더경남뉴스가 창간한 이후 첫 사자성어 소개이니 저희의 첫걸음에 의미를 두고, 원대함을 뜻하는 '붕정만리(鵬程萬里)'로 정했습니다.
먼저 훈(뜻)과 음을 살펴보시죠. 붕(鵬)은 붕새 붕, 정(程)은 길 정, 만(萬)은 일만 만, 리(里)는 마을 리입니다.
붕정만리에서의 '리'는 마을이 아닌 단위인 '거리'를 뜻합니다. 옛사람들은 거리를 자로 잰 것이 아니라 '걸어서 가는 시간'으로 쟀다고 하네요.
중년 이상이면 요즘처럼 '몇 km 밖'이 아닌 '몇 리 밖'이란 말을 자주 듣고 말했습니다. 기자도 집안 어르신들로부터 '10리'란 말을 무척 자주 들었는데, 맨날 건성으로 들어 10리가 4km인 것을 명확히 안 것은 '머리가 어느 정도 굵었을 때'입니다.
전통 도량형은 '척근법(尺斤法)'인데 한참 전에 '미터(m)법'으로 제도가 바뀌었지요. 하지만 지금도 혼용을 하고 리, 평 등은 일상에서 많이 씁니다.
붕정만리는 간단히 말해 '붕새가 단숨에 9만리를 난다'는 의미입니다. 9만리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거리이지요. 정확히 1리가 0.392km(392m)이니 10리는 3.92km입니다. 통상 10리라 하면 반올림해 4km라고 합니다.
독자분들이 9만리가 몇 km인지 계산해보시기 바랍니다.
옛사람들은 '한시간 정도 걸어가는 거리'를 어림잡아 10리라고 했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그릴 때 걸어서 한시간 가는 곳마다 점을 찍었다고 합니다. 10리마다 찍은 것이지요.
그런데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 평지의 길은 걸리는 시간이 다르지 않습니까? 대동여지도에 찍은 점의 간격이 다르답니다. 독자분들도 눈치챘을 겁니다. 점이 상대적으로 촘촘하면 오르막길이고, 성기게 찍혔으면 내리막길입니다.
낱말 '리'는 우리의 속담과 민요 등에서도 가끔 나옵니다.
속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에서의 '리'가 이런 단어입니다. 천리는 400km이지요?
진주 사람이라면 잘 아는 가요 '진주라 천리길'(이운정 작곡, 이규남 노래)이 떠오릅니다. 옛날에는 한양~진주 간을 오가려면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야 해 천리길이라고 칭했습니다.
지금은 진주시청~서울시청 간 336km, 진주고속터미널에서 강남고속터미널까지 버스로 333.5km입니다. 항공노선으로는 284km입니다.
잠시 쉬어가시지요. 가사를 소개합니다.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든고/ 촉석루엔 달빛만 나무 기둥을 얼싸 안고/ 아 타향살이 심사를 위로할 줄 모르누나/ 진주라 천리길을 내 어이 왔든고/ 남강가에 외로이 피리 소리를 들을 적에/ 아 모래알을 만지며 옛노래를 불러본다'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애국가 가사 중에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문구가 있죠? 여기서의 '삼천리'는 3000리, 즉 1200km입니다. 많이들 모르셨을 겁니다.
민요 아리랑에서의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와 속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등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나타낸 경우입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살펴보았으니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붕정만리란 큰뜻을 품은 사람의 앞날이 양양함, 머나먼 여정(旅程), 또는 원대한 사업을 비유하는 사자성어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더 크게 멀리 보자'는 뜻입니다.
붕정만리는 중국의 고서 '장자(莊子)'의 '소요유편(逍遙遊篇)' 글 중에서 나옵니다.
상상의 새인 붕(鵬)은 크기가 몇 천리가 되는지 모를 정도이고, 붕이 물을 치면 3천리에 파도가 일고 회오리를 일으킨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날아오르면 그 높이가 9만리에 이르는데 무려 6개월을 날고서야 한 번 쉰다고 전래됩니다.
이는 웅장하고 원대한 뜻을 지닌 사람의 일은 소인배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랗다는 것에 자주 비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