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가 창간 특집기획 '한국 3대 재벌 탄생지, 지수 승산을 가다'를 오늘(10일)부터 연재를 시작합니다. 스무 번에 걸친 대장정입니다. 본사 특별취재반은 연재 시작에 앞서 3일 간의 총괄 취재를 마쳤습니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는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자리한 삼성, LG·GS, 효성의 창업주가 코흘리개 때 함께 뛰놀며 동문수학을 한 지수초등학교(옛 지수공립초등보통학교)가 있는 마을입니다. 100년 역사를 지닌 이 학교는 승산리를 '대부호의 마을'로 알린 진원지이고, 승산리는 1500여 주민이 사는 작은 농촌 마을입니다.
이어 삼성 창업주의 생가가 있는 의령군 정곡면과 효성의 창업주 생가인 함안군 군북면도 다녀왔습니다. 두 지역은 남강을 끼고 승산리와 인접해 있습니다.
취재반은 이들 지역의 발자취(역사)와 창업주(인물)들의 흔적을 보물 찾듯이 뒤졌습니다. 또 방계 취재를 통해 마을 토박이분들의 목소리도 담아 그동안 언론 매체들에서 나오지 않은 내용들을 구체화시켰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빠지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 취재에 나서고, 관련 서적 등을 통해 자료도 보충했습니다. 더경남뉴스의 연재물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 연재 순서
◆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1. 들어가는 글
2. 승산마을의 산세와 지세(예정 글)
더경남뉴스의 특별취재반은 지난 7일 진주에서 남해안고속도로를 달려 경남 진주 동부 지역에 위치한 지수면(智水面) 승산리(勝山里)를 찾았다.
이른바 '한국의 부자 마을'로 알려진 집성촌으로, 고속도로 지수 나들목(IC)을 빠져 나오면 3분정도의 거리에 있다.
취재반은 창간 이전에 자료들을 두루 챙겨보고서 출발했지만 내심 셀렜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을 일군 창업자 3명이 같은 시대에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특별함 말고도, 한 마을에서 수십명의 창업자가 배출됐다는 사실 외에도, 승산마을이 어떤 모습으로 길손을 맞을까 하는 궁금증이 더했기 때문이었다.
마을 정경의 첫 느낌은 다른 여느 농촌의 작은 면소재지와 다름이 없이 한적해 보였다. 지수 나들목(IC)을 통과해 내려가니 마을 안내판만 덩그렇게 서서 방문객을 맞았다. 요즘 도로변 작은 음식점에서도 가동하는 흔한 LED 안내판은 보지를 못 했다. 마을 전체가 고즈넉한 분위기다.
마을에 들어선 이후에도 처음 느낀 인상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화-정도경영'(LG,GS), '인재 제일'(삼성) 등의 거창한 슬로건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취재반은 애써 '절제의 경영'이라든지 '느림의 미학' 등 이곳 출신 경영인들의 세평(世評)들을 머리 속에 채운다.
우선 취재 차량을 승산마을의 상징격인 지수초교에 주차했다. 외지인에게 가장 많이 소개돼 귀에 익숙한 곳이고, 동행한 승산마을 전 이장 이병욱(79) 씨도 먼저 방문할 것을 권했다. 교정을 둘러보면서 이충도(62) 총동창회 사무총장에게서 학교 대략적인 내역 설명을 들었다. 곧이어 교문 바로 옆에 마련된 지수초교 총동창회 건물을 찾았다. 때마침 총동창회 허성태(39회·73) 회장 등 동창회 관계자들이 자리하고 있어 큰 어려움 없이 학교와 출신 인물들에 관한 자초지종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허 회장으로부터 기본적인 학교 이야기를 들은 뒤 동네를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공원을 안내를 받았다. '효주원(曉洲苑)'으로, 마을 초행 길손들이 먼저 들러보는 곳이기도 하다. 작지도 크지도 않게 알맞게 보여 단아함과 함께 산뜻함을 느꼈지만 둘러본 후의 '마침 생각'은 이 또한 절제의 미였다. 이 이야기는 세부 항목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이어 마을 탐방에 나섰다. 국내에서 한 마을에서 가장 많은 기업인이 배출되고, 600년 세월의 켜를 지닌 한옥(고택)들이 즐비한 곳인데 방치돼 있다는 '눈대중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관광지화를 할 수 있는 몇몇 방안 생각이 기자의 머리 속에서 자리할 땐, 늦었다는 '배신의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나마 마을에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짓는 광경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관광이란 시각으로 본 마을은 20년 전에 머물러있는 듯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허 씨 가문에서 만들었다는 효주원, 구자경 LG그룹 선대 회장이 희사했다는 상남복지회관 등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간 것이 없어보였다. 디지털 관광시대에 아날로그 분위기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기자의 머리를 지배했다.
작년 승산마을 중앙 도로변에 건립한 현대식 게스트하우스는 완공 후에도 논란에 휩싸여있다. 기자가 보아도 외관은 승산마을 고택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 내막도 세부 내용에서 다룬다.
이미 우리에게 일상화 됐거나 일상화 중인 증강현실(VR), 메타버스 등을 갖춘 흔하디 흔한 첨단 기술을 입힌 홍보영상관 하나도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거슬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국 땅에 이만한 스토리(재계인 탄생 및 수학)와 과거 흔적(한옥 고택)을 갖춘 곳이 드물다는 점 때문이었다. 마을이 번성했을 땐 한옥만도 무려 150채가 넘었다고 한다. 지금 50채 정도 있다는데, 의지만 있다면 옛 자취를 복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중앙 부처와 경남도, 진주시, 의령군, 함안군 등의 지자체,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학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진주에 있는 경상국립대를 중심으로 한 학계의 노력과 함께 인근 지역 사회에 사는 총동창회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지난 흔적 찾기와 복원에 힘썼다면, 지금부터는 미래지향적인 보전 및 관광화 계획을 하나씩 찾아서 접목시켜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이곳에서 뿌리를 다진 대기업의 후손들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는 과거 흔적 찾기와 병행해 현재는 물론 미래와도 어떻게 연결시키면서 한국 대기업의 창업 산실지를 더 많이, 더 정확히 알릴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승산마을이 외지인들의 손 때가 묻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함으로 여겨야 할까? 여러 가지의 만족스럽지 않고, 탐탁지 않은 마음을 안고 스무차례의 '승산골 탐구' 여정을 시작한다.
※ 다음은 '승산마을의 산세와 지세' 글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