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의 재가동 문제가 두산중공업 등 원전 업체가 몰려 있는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대선 정국에서의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년 임기 동안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다가 지난 25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 회의’에서 “향후 60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電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경북 울진의 신한울 1·2호기와 울산 울주군 신고리 5·6호기를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내 원전은 현재 24기가 가동 중이고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이 예정돼 있다.
경남 지역 업계에서 문대통령의 이 발언을 주시하고 있다. 대선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여기지만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실패를 자인한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중소업체들은 도산한 상태라는 극한 말도 나온다.
이날 회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석유 등 에너지 값이 폭등하고,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불안 고조에 따른 대책회의였다.
원전 기술 개발과 수출에 대해서도 “세계적 선도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원전 해체 기술, '차세대 원전’으로 각광받고 있는 SMR(중소형 모듈원전) 연구, 핵융합 연구 등에 속도를 내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원전이 필요한 국가들이 한국의 기술과 경험을 높이 사서 우리 원전의 수입을 희망하고 있고,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그동안의 정책 행보와 다른 발언의 배경에 대해선 “경북 포항과 경주의 지진, 국내 자립기술 적용 등에 따라 건설이 지연되었는데 그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준 강화와 선제적 투자가 충분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여야 대선 후보 간의 원전정책의 시각차는 뚜렷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추가 원전은 짓지 않고 기존 원전을 설계수명 내에서 사용하자는 ‘감(減)원전’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양대 축으로 삼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친(親)원전’을 핵심 공약으로 삼아 원전을 주력 전력원으로 삼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지속되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응으로는 탄소중립의 실천이 중요하고 탄소중립의 중심에는 원전이 주요 역할을 한다는 입장이다.
경남의 지역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특히 이 민주당 후보의 기존 주장이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 이후 어떤 식으로 변할지도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인 지난 2017년 6월 부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이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며 “신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을 비롯한 깨끗하고 안전한 청정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이날 발언과는 반대되는 발언을 했다.
이로 인해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은 사업비 8조2600억여원을 들여 1400㎿급 한국 신형 원전(APR1400) 2기를 올해와 내년에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2017년 12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2월22일 연 22차 에너지위원회에서 신한울 3·4호기 공사계획인가 기간을 내년 12월 말까지 2년 연장하기로 했다. 공사비는 이미 7000억원 가량 투자된 상태다.
경남 지역에서 문 대통령 발언을 주목하는 이유는 270여개에 달하는 경남도내 원전 협력 중소업체의 줄도산 우려다. 국내 원전 산업을 이끌고 있는 창원 두산중공업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직격탄을 맞고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관련 협력 중견 및 중소업체는 일감을 찾지 못해 파산하거나 파산 지경에 이른 상태다.
창원시는 지난 1월 13일 확정된 100만명 특례시 직위 획득 과정에서 탈원전 여파로 인구마저 줄어들어 자칫 탈락할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야당과 원전 업계에서는 그동안 “탈원전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신한울과 신고리 발전소 건설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두산중도 4927억원을 들여 신한울 3·4호기에 들어갈 원자로 설비와 터빈발전기 부품 제작을 끝냈지만 납품하지 못하고 있다. 두산중은 현재 3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는 처지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최종 취소돠면 두산중 원전부문의 공장 가동률은 10% 미만으로 떨어지고, 협력사 매출도 15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매입한 신한울 3·4호기 원전 부지 처리를 포함해 총 4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이 중단되면 매몰 비용만도 7900억원으로 추정된다.
주요 여야 대선 후보인 민주당 이재명과 국민의힘 윤석열의 원전 정책 입장차는 확연하다.
◆ 이재명 민주당 후보
건설 중인 원전은 오는 2085년까지 쓰되 신규 원전은 새로 짓지 않는 ‘감(減)원전 정책’을 공약했다.
이 후는 신한울 3·4호기 원전 건설 재개 여부에 대해 “필요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제 판단이 100% 옳은 게 아니기 때문에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의 의사와 객관적 검증을 거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기존 원전을 바로 폐쇄할지에 대해서는 “가동하거나 건설 중인 원전들은 계속 지어서 가동연한까지 사용하고, 신규로 새로 짓지는 않는다. 2084~2085년 현재 계획으로는 그때까지 원전이 (전체 에너지 발전에서)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신한울 3·4호기에 해서는 “설계 중에 중단된 것이기 때문에 ‘건설 중’인 것에 포함되느냐 아니면 ‘계획 단계’니 안 하는 쪽으로 해야 하느냐는 경계선에 있는 문제”라고 에드ㅜㄹ러 답을 피해갔다.
◆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신한울 3·4기 재개와 기존 원전 가동은 물론 원전 신기술 개발에도 적극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윤 후보는 탈원전 백지화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지구 온실가스 피해를 낮추기 위해서는 전체 발전 용량에서의 원전 발전 비중을 30%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 공약을 했다.
예컨대 원전 10기를 운영할 때 연간 약 5000만t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수치도 내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신한울원전 3·4호기 설계 및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나아가 멈춰진 월성 1호기의 재가동 검토, SMR 개발 가속화도 공약했다.
또 원전 수출을 위한 범정부 추진 조직을 꾸리고 오는 2030년까지 원전 관련 일자리 10만개 창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윤 후보는 “원전을 배제하는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매우 비과학적”이라며 “원전·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신재생 등을 적절히 섞어 합리적인 에너지 계획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26일 문 대통령의 '원전 주력 에너지' 언급에 “지난 5년간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고, 향후 60년간 원전이 주력이라며 입장을 바꿨다”며 “정권의 잘못된 판단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심상정 정의당 후보
심 후보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 금지와 함께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 소형 모듈원전(SMR) 기술개발 중단과 수출 금지 등을 공약했다. 특히 “상용화에만 10년이 걸리는 SMR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신규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사용기간이 끝난 노후 원전은 즉각 폐쇄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원전을 당장 폐기하지 않고 수명을 다한 원전은 폐쇄하고 신규 원전은 짓지 않겠다.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이 다하는 오는 2040년에 핵발전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
안 후보는 “기후 위기 대응과 2050년 탄소 중립 목표실현을 위해서는 원자력 에너지가 필수적”이라며 "신한울 3·4호기 공사재개를 즉각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와 관련,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신한울 3·4호기를 완성해 가동할 경우 40.3%의 탄소 감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안 후보의 경제 공약인 ‘G5 전략’의 첫 번째 정책이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 추진’이다. 원전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가 SMR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안 후보는 이에 대해 “SMR은 모듈 형태로 만들어 대형 원전에 비해 건설 기간이 짧고 저렴한 데다 1000배 이상 안전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