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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 벌통이 텅 비었다…꿀벌들의 집단실종 왜?

기온 따뜻한 남부 지방 중심 집단 실종
기후 변화, 해충 발생이 원인인 듯
농진청 등 사례 두고 원인 분석 나서

정창현 기자 승인 2022.03.06 09:02 | 최종 수정 2022.04.15 12:57 의견 0

"양봉 40년에 꿀벌이 이렇게 싹 사라진 건 처음이에요"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전북지회장이 한 언론 매체에 '꿀벌 집단실종' 상황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벌통 1개에 2만~3만 마리의 꿀벌이 산다.

양봉업계가 양봉철을 앞둔 최근 전국에 걸쳐 일어나는 꿀벌의 집단실종을 두고 큰 걱정에 빠졌다. 집단실종은 제주, 경남북, 전남북 등 주로 남부 지역에 집중되지만 전국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벌통 가에 무리지은 꿀벌들 모습. 정창현 기자

▶ 발생 사례 및 규모

경북 성주군 성주읍의 한 양봉농장은 이맘 때면 벌통 사이를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꿀벌이 날아다녔지만 최근에 자취를 감췄다.

양봉농장주 박윤백(63) 씨는 '벌을 깨우기 위해' 벌통 뚜껑을 열어봤더니 나란히 꽂혀 있는 사양기(飼養器·꿀벌의 먹이 그릇) 사이가 텅 비어 있었다고 전했다. 사양기란 꿀벌들이 집을 지어놓고 빼곡하게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꿀벌은 한겨울에 벌통 안에서 겨울을 난다. 날이 풀리는 1월 중순쯤 벌통을 열고 벌을 깨운다.

박 씨도 김 지회장처럼 한 자리에서 20년 가까이 벌을 키워왔는데 처음 겪는다고 했다. 그는 "벌통 400군(개) 중 350군 정도에서 벌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박 씨의 양봉농장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성주군 선남면의 이덕희 씨 농장도 벌통 320군 중 130군에서 꿀벌이 없어졌다.

이 씨는 “벌을 깨운다고 벌통을 열었는데 벌이 없었다. 누가 벌을 몽땅 훔쳐간 줄 알았다”고 황당해했다. 그는 “겨우내 벌이 잘 자라도록 전기 가온 장치를 설치해 적정온도 유지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헛일이 됐다”고 말했다.

피해 규모는 크다.

경남도는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2주간 18개 시·군 양봉농가의 피해 신고를 받은 결과 321개 농가의 벌통 3만 8433군(개)에서 피해가 있었다. 경북도도 2월9~21일 1차 피해 조사에서 양봉농가 6129가구 중 930가구에서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했다. 벌통 기준으로 경북 전체 58만군의 12.9%인 7만4582군에서 꿀벌 50% 이상이 사라졌다.

또 한국양봉협회 전남지회가 1월 27일 발표한 자체 조사에서는 전남의 826농가에서 7만 1655군의 벌통이 피해를 입었다. 전북도의 경우도 한국양봉협회 전북지회 조사 결과 양봉농가 2300곳에서 키우는 벌통 20만 통 중 8만 통에서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적인 피해 통계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양봉 농가는 2020년 12월 기준으로 2만 7000여 곳에 이른다.

▶ 커지는 걱정

양봉 업계의 고민은 심각하다.

날씨가 풀리는 3월은 양봉 농가들이 꿀벌의 몸집과 개체 수를 불릴 시기인데 꿀벌들이 사라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봉 농가들은 1통에 2만5천∼3만 마리의 꿀벌을 기른 뒤 5월에 아카시아꽃밭 등에 꿀벌을 풀어 꿀을 딴다.

김 지회장은 "최근 2∼3년간 꿀벌이 한번씩 사라지긴 했지만 한 철이라고 생각했다. 원인을 제대로 모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 2차 피해 우려돼

김 지회장은 "딸기와 수박, 멜론 등은 꿀벌로 수정을 하는데 벌들이 사라지면 농작물에도 큰 피해가 올 것"이라며 걱정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벌꿀 채취량 감소로 이어지만 더 큰 문제는 농작물과 식물의 생장에 큰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꿀벌이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하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참외 주산지인 경북 성주에서는 꿀벌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참외 농사 피해를 걱정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 성주군지부 전용운 지부장은 “참외 주산지인 성주에는 약 5만 동 정도의 참외 하우스가 있는데 이 중 4만 동이 벌을 이용한 수분을 하고 있다”며 비상 걸린 농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꿀벌과 꽃. 정창현 기자

꿀벌이 꽃속을 파고들어 꿀을 빨고 있다. 정창현 기자

▶ 원인이 뭘까?

꿀벌이 사라진 원인은 아직껏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따뜻해진 기후 탓에 벌들의 면역력이 약해졌다”고 하고 “벌통 밖으로 나간 꿀벌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만드는 꿀벌응애(기생충)가 기승을 부려 그렇다”고도 한다.

한국양봉협회는 농촌진흥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실태 파악과 함께 원인 조사를 요청했다.

농진청 등 관련 기관에서는 이상 기후, 병해충 또는 바이러스 피해, 봉군(蜂群·벌 무리) 관리기술 부족, 약제 과다 사용 등 다양한 원인을 놓고 분석 중이다. 이 가운데 이상 기후 변화와 병해충(응애) 발생이 꿀벌 실종과 깊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농진청은 "지난 2년간 겨울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꽃이 일찍 개화했고, 꿀벌들이 꿀을 먹지 못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져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또 올해는 예년보다 꿀벌에 응애가 빨리 증식했지만 방제가 적기에 이뤄지지 못했다.

농진청 관계자는 "지난해 봄꽃이 빨리 개화했다가 꿀벌들이 활동하는 5월에 비가 와 일찍 졌다"며 "꿀벌들이 변덕스러운 날씨를 이겨내지 못했다"면서 "이상기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꿀벌 양육 주기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연구 중"이라고 전했다.

대안으로 "농가에 기온을 유지해주는 장비와 응애를 방지할 약품 등을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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