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 '동외동패총 사적 지정' 위한 발굴 현장 군민 공개회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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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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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군이 지난 21일 ‘고성 동외동패총’의 발굴조사 현장 군민 공개회를 열었다.
고성 동외동패총은 소가야의 최전성기를 대표하는 경남도 기념물 제26호로, 현재 국가사적으로 승격되기 위한 2차 정밀발굴조사 중이다.
1969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8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뤄졌으며 지난해에는 고성군의 ‘소가야사 연구복원사업’, 올해는 경남도의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으로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이번 발굴의 주요 성과로는 지난해 동외리 구릉의 정상부 서쪽에서 확인된 환호가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 국내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삼한~삼국시대의 대지 조성층(대지 조성을 위한 흔적)이 발견됐다.
또 출토 유물로는 최고지배층이 사용한 청동제 칼집 장식 부속구와 수레 부속품의 일종이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평양 일대의 이른바 낙랑유적과 경북 성주군 예산리 유적 등지에서 출토된 적이 있는 개궁모(蓋弓帽, 고대 수레의 일산(日傘)의 살대 끝장식) 등이 출토돼 단순한 주거지역이 아닌 삼한~삼국시대 최상위계층의 생활 중심지임이 확인됐다.
특히 개궁모(蓋弓帽)편은 청동제 가지로 모양을 만든 후 표면을 금박으로 마무리 됐는데, 낙랑과 예산리 유적·경주 조양동 고분군에서의 일산 살대 출토사례는 있었으나 가야권역에서는 최초로 출토된 것으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또 동외동패총에서 확인되는 중국과 일본의 대외교역품과 제철의 흔적은 당시 최첨단기술인 철 생산이 소가야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들을 종합하면 고성 동외동패총 일대는 정상부 광장과 의례수혈을 중심으로 그 아랫단에 주거지를 비롯한 고상건물, 수혈 등을 감싸고 돌아가는 환호까지 확인된 복합적인 구조이며, 오랫동안 조성된 흔적을 확인함에 따라 소가야 성립 전후부터 전성기까지 지속적으로 생활중심지로 활용됐었음을 알 수 있다.
고성군은 이번 발굴 조사를 통해 고성 동외동패총의 공간구조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동외동패총이 단순히 조개무지가 아닌 삼한~삼국시대까지의 소가야의 발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종합유적일 뿐 아니라 당시 남해안 일대의 해상교역 네트워크에 대해 알 수 있는 복합 생활유적임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