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름, 이른바 옛마을 이름은 그 마을이 앉은 주위 지형에 따라 지어진 게 많습니다. '배산임수'가 대표적인데, 여기서도 각 마을의 이름은 저마다 들과 골짜기의 작은 지형이 영향을 줘 붙여졌습니다. 이들 마을 이름은 매우 토속적입니다. 농어촌을 중시하는 더경남뉴스가 긴 호흡으로 마을을 찾고 천착해 보겠습니다. 꽤 흥미로운 기획 시리즈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글을 쓰는 기자들에게 평상시 단어, 즉 낱말은 숙명처럼 다가섭니다. 눈에 '확' 또는 '쏙' 들어섭니다. 허허 하며 웃기론 너무 숙명적 관계입니다.
어제(11일) 보기 힘든 '너뱅이'란 단어가 눈에 밟히더군요.
경남 하동군에서 '하동읍 송림3길 너뱅이꿈 야외마당에서 하동군 귀농귀촌지원센터 이전 개소식을 가졌다'는 보도자료를 냈는데 '너뱅이'란 단어 뜻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어지간해선 듣기 힘든 토속의 순우리말일 거란 짐작에 찾아봤습니다.
너뱅이란 '넓다'란 뜻으로 섬진강 변의 넓은 하동 들판을 이렇게 불렀답니다. 물론 하동의 토속 사투리입니다.
다음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디지털하동문화대전에서 소개한 너뱅이 내용을 토대로 소개합니다.
하동군 서남쪽에 광평리(廣坪里)란 지명이 있습니다. 하동읍에 속하는데 오른쪽 위로는 비파리 평야가 있습니다. 박경리 작가가 쓴 대하소설 '토지'에서 나오는 '하동 평사리'는 이곳에서 섬진강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야 나옵니다.
참고로 박경리 작가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공립고등여학교(4년제)를 졸업했습니다. 이 학교는 이어 일신여고(1925년), 봉산여고(1938년)로 바뀌었고 6·25전쟁 중이던 1951년 지금의 교명인 진주여고가 됐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일본 제국)가 '너뱅'을 한자로 바꾸면서 '넓을 광(廣)'과 '벌 평(坪)'자로 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일제의 한국어 말살정책 일환이었지요. 우리 전통의 이름을 바꾼 일본식으로 '창씨개명'을 서슴없이 했던 자들이었으니까 "다시 물어 무엇하리요" 합니다.
너뱅이들은 하동에서 가장 크고 오곡이 풍요로운 들판으로 은유돼 하동 지역의 설화인 '금오산에 별님과 달님의 사랑이야기', '신선암과 구경암'에서도 표현이 됐다고 합니다.
너뱅이는 섬진강의 옛 물길이 오래도록 토사를 쌓으면서 만들어진 충적평야입니다.
하동 들녘은 북쪽으로는 산(지리산 자락)이 등을 지고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릅니다. 들의 서북쪽에 하동읍이 자리하고 읍내 광평리와 비파리 사이에 하동군청이 있습니다.
너뱅이들 동쪽으로는 '궁항들'과 이어지고 그 아래로는 가옥이 밀집해 있는 작은 구릉이 있습니다.
지금은 복선화(직선화 겸함) 경전선돼 철길 자리가 옆으로 다소 이전됐지만 철로가 너뱅이들을 두르면서 지나고 너뱅이들의 북쪽 끝자락에 하동역이 있습니다. 또 오래 전인 1926년에 너뱅이들 남쪽에는 '비파 제방'이 축조돼 농경지가 새로 개간돼 들이 더 넓어졌습니다.
경남일보 등 지역지의 기사에 따르면, 광평리는 옛 2번 국도의 길목으로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따라서 지역의 학교도 밀집돼 하동초교(1907년 개교), 하동중(1947년 2월 21일 개교), 하동고(1951년 10월 1일 개교), 하동여고(1963년 1월 5일 개교) 등이 자리해 이곳 광평마을은 교육의 요람이었습니다. 1960∼1970년대엔 광평마을은 아침 저녁이면 등·하교 학생들로 거리를 가득 메웠는데 인구 감소 여파로 지금은 한산합니다.
이에 하동군이 ‘건강하고 넉넉한 하동라이프’를 기치로 지역에 활역을 불어넣기 위해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결과로 2년 6개월 전인 2021년 2월 5일 이곳 광평(廣坪)마을에 '너뱅이'를 원용한 쉼터인 '너뱅이꿈'이 문을 열었습니다. 주소는 하동읍 송림3길 31입니다. 전국 300여 도시재생 뉴딜사업지 중 1호로 문을 열었다고 하네요. 광평은 '넓은 벌'입니다.
4층 규모인 이 건물에는 무인편의점인 '마켓무(無)'(1층)와 귀농귀촌지원센터(2층), 게스트하우스 5개(3층), 너뱅이 뜰락 식당 및 더 브릿지 카페(4층)를 갖춘 지역 쉼터입니다. 2136㎡의 부지에 연면적 989.5㎡ 규모입니다. 광평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에서 관리하고 운영합니다.
애초엔 2층에 기존 무인 할인편의점과 관리사무소가 있었는데 귀농귀촌지원센터로 바꾸었습니다.
이 건물과 주변 시설 공사비는 83억 4000만 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거점공간인 너뱅이꿈 건물, 마을녹색길(1.2㎞) 조성, 순환형 공공임대주택 나눔채 3동 건립, 노후 주택 54개 가구 정비, 지역 역량 강화사업 등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하동에 '너뱅이'를 넣은 상호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너뱅이꿈 뜰락', '너뱅이한밭식당'이 눈에 뜨입니다. 너뱅이란 단어는 꽤 토속적입니다. 한번 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낱말이지요. 하동 지역에서 '너뱅이'란 말을 자주 들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충남 서천 홍원항에 '너뱅이등대횟집'이 있네요. 혹여 주인이 하동과 연관된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추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