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절기 이야기] 오늘(22일)은 첫눈 온다는 소설(小雪)입니다

정창현 기자 승인 2022.11.22 10:15 | 최종 수정 2023.11.22 19:02 의견 0

오늘(22일)은 24절기의 20번째이자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입니다. 벌써 한해 절기는 막바지로 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섰네요. 가정에서는 김장 준비에 바쁜 한철입니다.

기상청은 오늘 오후부터 내일 오전까지 중부이남 곳곳에서 비가 내린다고 예보했네요. 지난해에는 22~23일 눈이 많이 와 10cm가 쌓이는 곳도 있었습니다. 기상청은 비가 그치면 초겨울 날씨를 보인다고 합니다.

소설은 태양의 황경(黃經)이 240도일 때이며 양력으로 11월 22일 또는 23일, 음력으로는 10월에 드는 절기입니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 후 15일, 큰눈이 내린다는 대설(大雪) 전 약 15일에 자리합니다.

중국에서는 모든 절기를 5일씩 나눠 시절을 논하는데 소설 절기도 5일씩 초후(初候), 중후(中候), 말후(末候)로5일씩 3후(三候)로 나눕니다.

초후에는 비가 그치니 무지개가 걷혀 나타나지 않고, 중후에는 천기(天氣)는 오르고 지기(地氣)는 내리며, 말후에는 폐색 되어 겨울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맘 때 눈이 내릴 정도로 추위가 시작돼 겨울 채비를 합니다. 하지만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따뜻한 햇살이 있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소설은 대개 음력 10월 하순에 드는데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급강하 하는 계절입니다. 이때는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고 첫 추위가 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나라 기온은 포근해 영상권입니다.

옛날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소설 전에 김장을 서두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농사철은 지났지만 월동 준비를 위한 잔일은 남아 있습니다.

겨우내 먹을 무청 시래기와 배추 등 푸성귀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합니다. 요즘은 볼 수 없지만 목화를 따서 솜을 만드는 때이기도 합니다.

또 겨우내 소의 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둡니다. 요즘 축산 농가에서는 베일작업을 합니다. 곧이어 래핑을 해 하얀 '마시멜로(공룡알)'을 만듭니다. 논 한 가운데 하얀 공처럼 보이는 것이 이것입니다.

볏짚을 말아놓은 마시멜로(공룡알)와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정취. 정창현 기자

속담으로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사라진 말이지만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 농사가 잘 된다는 뜻입니다.

소설 즈음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하며, 뱃사람들은 이 무렵에는 배를 잘 띄우려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손돌바람과 관련된 전설을 소개합니다.

전설의 시기는 고려 23대 고종이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몽진(蒙塵)을 가던 때라고도 하고, 조선시대에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仁祖)가 한강을 건너던 때라고도 합니다.

참고로 몽진은 먼지 진(塵), 어두울 몽(蒙)으로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입니다. 임금이 난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떠남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 파천(播遷)이라고 하는데 임금에게는 피난, 도망 등의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뱃사공 중에 손돌(孫乭)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피난을 가는 왕을 모시고 뱃길을 서둘렀지만, 왕이 보아하니 손돌이 자꾸 일부러 그런 것처럼 물살이 급한 뱃길을 잡아 노를 저었습니다. 의심이 간 왕은 신하들에게 물살이 세지 않은 안전한 곳으로 뱃길을 잡으라고 했지만 손돌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결국 선상에서 손돌을 참수(斬首·목을 베는 형벌)) 했다고 합니다.

손돌은 억울함을 하소연했지만 소용이 없음을 알고 참수 전에 바가지를 하나 내놓으며 "물에 띄운 바가지가 가는 길을 따라 뱃길을 잡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왕이 탄 물살은 점점 급하게 흐르고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손돌이 가르쳐 준대로 바가지를 물에 띄웠습니다. 바가지는 세찬 물살을 따라 흘러갔고, 왕을 실은 배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무사히 뭍에 내린 왕은 그때야 손돌의 재주와 충심을 알았다고 합니다.

손돌과 관련해 또 다른 이어지는 전설이 있습니다.

왕이 손돌을 죽인 후 바람이 더 세차게 불고 물살이 급해졌고 하는 수 없이 싣고 가던 말의 목을 잘라 제사를 모셨더니 파도가 잠잠해졌다고 합니다.

뭍에 도착한 왕은 곧 후회했지만 손돌의 목숨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지요.

왕은 이후 경기 김포시 대곶면 대명리 덕포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손돌의 장지(葬地)를 정해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합니다. 이때가 음력 10월 20일이었는데 매년 소설 즈음인 이맘 때면 찬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진다고 합니다. 소설 무렵에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른 이유라고 전합니다.

저작권자 ⓒ 더경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