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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멈춰서 읽는 시] 조형식 씨의 '막걸리'

더경남뉴스 승인 2022.11.22 16:40 | 최종 수정 2023.07.03 02:08 의견 0

더경남뉴스는 운동길과 산책길에서 자주 보는 입간판 시를 소개합니다. 대체로 쉬운 시구여서 누구에게나 와닿습니다. 걷다가 잠시 멈추고서 시 한수에 담긴 여유와 그리움, 아쉬움들을 느껴보십시오.

오늘은 아마추어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지난 여름 KTX 시발역인 광명역 구내에 들어섰더니 각종 시를 진열해 놓은 입간판이 발길을 잡더군요. '막걸리' 제목이 눈길을 잡아 찍어둔 것입니다.

'막걸리'···. 텁텁함, 비오는 날, 부침개, 아버지 등 많을 단어가 연상될 겁니다.

기자도 막걸리를 즐깁니다. 소주와 맥주를 즐겨 마시던 시절엔 별종으로 인식되기도 했고, 양주가 인기를 끌 때도 막걸리를 더러 찾았으니 '희한한 종'으로 보았겠지요. 요즘은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먼저 시 한수 음미해보시지요. 평이한 시입니다.

정기홍 기자

풀어낸 연결고리가 돋보입니다. 전체적인 시상(詩想)이 추억과 향수를 돋우네요.

옛날엔 논일과 막걸리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들일 새참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인데 오이, 고추 그리고 된장···. 고구마와 김치도 언제나 막걸리를 따라 나섭니다. 이를 농주(農酒)라고 하지요.

작가는 해가 뉘엿뉘엿 지면 농사일로 어깻죽지에 내려 앉은 피로를 안고서 받은 저녁 밥상에 막걸리를 집어다가 가져왔습니다.

이어 '지나간 이들'의 애잔한 흔적에 서너 잔을 들이키다보면 짓누르던 피곤함은 저만치 달아납니다. 밤의 두께가 겹쳐질수록 취기는 더 포개집니다.

조형식 씨는 이런 감정들을 끌어와 뜨물처럼 희기도 하고 탁하기도 한 '쌀빗술'을 엄마의 '젖빗술'로 농익혀 갈무리를 합니다. 언제나 포근한 엄마의 품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네요.

사실 막걸리는 탁주(濁酒)입니다. 마구(막) 걸려냈다는 뜻에서 막걸리라고 했다지요. 이름이야 이 말고도 메우많습니다.

아버지가 점빵에 가서 막걸리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오다가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셔 정신이 혼몽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를 겁니다. 마신만큼 물을 타 아버지가 "오늘 술은 와 이리 싱겁노"라고 말할 땐 들킬새라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했었지요.

오늘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것, 막걸리와 파전입니다. 갱상도 말로는 '탁배기'입니다.

또렷한 탁배기 기억을 추억거리 삼아 막걸리 한 사발 즐기는 것도 운치가 있겠네요. 늦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 오후 나절, 어디 이화주인들 부럽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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