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는 23일 조선시대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영(兵馬節度營·지금의 도청급)의 우후(虞候) 집무 공간이었던 진주성 내 중영(中營) 복원 상량식을 복원 현장에서 전통의례에 따라 거행했다. 우후는 종2품인 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종3품의 무반(무인) 관직이다.
상량식은 조규일 진주시장과 유재문 공군교육사령부 사령관(소장), 각계 인사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주성 별무사의 무예 시연을 시작으로 개식, 상량 고유제, 상량문 봉안, 상량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중영의 복원은 진주성 안에서는 처음으로 다시 세워지는 건축물이다. 이전에 진주성 성곽 문인 촉석문과 공북문 등 두 문루(門樓)를 복원했었다.
상량식(上樑式)은 건축물의 뼈대가 갖춰지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상량식은 기둥을 세운 뒤 보,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 등을 건 다음, 마룻대(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종도리, 중도리))를 걸고 마룻대를 받치는 장여(長欐)에 상량문을 봉안해 올리는 의식이다.
장여는 도리 밑에서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진 나무를 말한다.
봉안된 상량문은 경남일보 논설위원과 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을 역임한 장일영 씨가 짓고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장을 지낸 서예가 정문장 씨가 썼다. 상량묵서(上樑墨書)도 이날 함께 썼다.
상량묵서 의식은 건축물이 지어진 날짜를 확인하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도 발복(發福·운이 틔어서 복이 옴)의 마음을 담는 의식이다. 특히 글의 양쪽 끝에 용(龍)과 구(龜) 두 글자를 쓰는데 복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의미다.
상량문에는 ‘뜻깊은 중영 상량을 계기로 420년 전 폐허의 성터에서 경상우병영을 굳건히 세웠던 복원 의지를 되살리고 시민들의 슬기를 모으는 일대 전기로 삼아 칼을 녹여 쟁기를 벼리는 평화의 노래가 여울지는 가운데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앞당겨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2000여자로 담았다.
또 진주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중영 복원의 의미와 공사 참여자 명단도 넣었다.
따라서 상량문은 일종의 타임캡슐로 후세에 건축물의 내력과 조영 동기 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복원되는 중영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3년 왜적에게 분탕된 합포(현 창원)에서 진주성으로 옮긴 이래 1894년 병영 혁파로 폐지될 때까지 291년간 경상우병영의 제2인자인 병마우후의 집무 공간이었다.
이후 대한제국 경무부, 일제 헌병대, 세무서로 바뀐 뒤 훼철(毁撤·헐어서 치워 버림)되었다가 이번에 복원된다.
병마우후는 도내 군사 전반을 다루고 순행하면서 군사 조치 및 훈련, 무기 제작과 정비, 군장, 군사 시설 수축, 군량 등을 담당한 막중한 지위였다.
경상우병영은 서울 기준(서울서 내려다 봄)으로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도 오른쪽 31개 고을과 진주진, 상주진(경북), 김해진 등 3개 진영과 조령산성(경북 문경), 금오산성(경북 구미), 독용산성(경북 성주), 촉석산성(진주) 등 4개 산성의 군사를 총괄 지휘하는 사령부였다.
지난해 12월 착공한 진주성 내의 중영 복원은 총 17억 원을 들여 정면 7칸, 측면 3칸, 1고주 5량가의 규모로 오는 7월 준공 예정이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진주성 외성 복원 의미를 띠고 있는 진주대첩광장 조성과 함께 이번 중영 복원 사업을 시작으로 성내 옛 시설들을 순차적으로 복원해 경남도 행정과 군사 거점지 역할을 했던 진주성의 옛 모습을 되찾고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진주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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