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경남뉴스가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사고와 사건을 이야기식으로 재구성해 소개합니다. 단순한 사고와 사건이어도, 지역이 다를지라도 여러 사람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사안은 '사회 현상'을 가미해 재구성해 내겠습니다. 이 코너에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지난달 말 서울 지하철 5호선 객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60대 남성이 구속 상태로 25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방화 사고 당시만 해도 상황이 큰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동영상을 보니 입이 열려 닫히지 않네요. 정말 끔찍한 사고를 당할 뻔했습니다.

22년 전 대구에서 비슷한 지하철 방화 사건(2003년 2월 18일)이 발생했는데 방화범 김대한(당시 60대)은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192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돼 사망자 수로 세계 2위를 기록한 철도 참사였지요. 김대한은 뇌졸중 증세 이후 사회에 대한 불만에 "혼자 죽기 억울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후 전국의 지하철 내부 시트 등을 내연재로 바꿔 이번 방화에선 불이 크게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준비해 놓으면 화를 막을 수 있다는 '유비무환'을 절실하게 느낀 사건입니다.

지난 5월 31일 오전 60대 남성 원 모 씨가 지하철 5호선 열차 안 바닥에 자신이 뿌린 휘발유에 불을 붙이고 있다. 원 씨가 가방에 숨겨뒀던 휘발유를 바닥에 쏟아부은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객실 내부에 불이 번지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공개 지하철 내부CCTV 영상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부장 손상희)은 이날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를 받은 원 모(67) 씨를 구속기소했습니다.

앞서 경찰은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만을 적용해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살인미수'와 '철도안전법'(휘발유 열차 탑승) 위반 혐의를 추가해 원 씨를 재판에 넘겼다고 합니다.

당시 영상을 보니 경찰의 판단 잘못됐고, 검찰의 판단이 맞았습니다. 화염이 확산되는 저 순간 한강 바로 아래, 깊은 지하 철로에서 공포에 질린 승객들을 생각하면 선처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여의나루역~마포역은 한강 바로 아래 구간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원 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8시 42분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을 출발해 마포역 방향으로 달리던 열차 안에서 휘발유를 바닥에 쏟아붓고 불을 질러 승객 160명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승객 6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습니다.

당시 이 열차에는 총 481명이 타고 있었으나 검찰은 이중에서 인적사항이 확인된 160명만을 피해자로 봤습니다. 인적사항이 추가로 확인되면 피해자가 더 늘어날 수 있느 것이지요.

원 씨는 지난 5월 14일 아내와의 이혼소송에서 패소해 재산분할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대중교통 지하철에 방화하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방화를 했다고 진술을 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요. 불만 가득한 저런 사람이 지금 시간에 우리 주위, 내 옆에 있다는 것이 매우 불안합니다.

검찰은 원 씨가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이 남았으니 판단이니, 혐의자이란 단어를 붙이지만 현행범이지요.

그는 범행 10일 전인 지난 5월 21일 주유소에서 휘발유 3.6ℓ를 구매하고, 토치형 라이터를 구입한 뒤 범행 전날 오전 8시 58분부터 오후 5시 43분까지 지하철 영등포역(1호선), 삼성역(2호선), 삼각지역(4호선) 등을 돌며 범행 장소를 물색한 것으로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습니다.

원 씨는 특히 범행 전 신변을 정리하면서 정기예탁금과 보험 공제계약을 해지하고, 투자한 펀드도 환매하는 등 모든 재산을 정리한 후 이를 친족에게 송금한 것으로도 확인됐습니다.

검찰은 "불특정 다수의 승객이 이용하는 지하철에 다량의 휘발유를 살포한 후 불을 질러 대규모 화재를 일으키고 유독가스를 확산시키는 것은 테러에 준하는 살상행위"라며 "대피가 늦었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임산부인 승객이 휘발유가 살포된 바닥에 미끌려 넘어져 미처 대피하지 못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터로 휘발유에 불을 붙이는 등 살인의 의도가 객관적으로 확인된다"고 혀를 찼습니다.

대구 지하철 방화범 김대한이 "혼자 죽기 억울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 말과 행동이 비슷합니다.

■객실(4번째 칸) 방화 순간들

▶휘발유 뿌린 순간, 대피 순간

원 씨가 가방에 넣어온 휘발유통을 들고 바닥으로 뿌리고 있다.

그 순간, 한 젊은이가 급히 피하고 있다.

다른 승객들도 휘발유 냄새가 났는지 피하려는 순간이다. 원 씨의 가방이 보인다.

미처 상황을 늦게 파악한 승객들이 뒤늦게 움직이고 있다.

여자 승객들이 긴급히 옆 칸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왼쪽 중년 남성은 이제서야 상황을 인지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승객들이 급히 빠져나오고, 가방 너머에선 푸른색 옷을 입은 승객도 라이터를 꺼내려던 원 씨와 부딪쳐 넘어져 있다.

원 씨가 휘발유에 불을 붙이지 않은 순간 승객들이 혼비백산 피하고 있다. 앞쪽에선 임산부가 휘발유에 넘어지고 원 씨 근처 푸른 상의 승객이 급히 피하려다가 휘발유에 의해 미끄러저 있다. 하지만 승객들은 이날 객차 문을 열고, 소화전으로 불을 꺼 큰 피해를 막았다.

범인 원 씨가 토치로 불을 붙이고 있다. 황급히 옆 칸으로 피하려던 임산부 등 넘어졌던 여성들의 신발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원 씨가 뿌려진 객실 바닥 휘발유에 토치로 불을 붙이고 있다

토치 화염이 가방쪽으로 옮겨붙고 있다. 다행히 승객들이 화재 발생 객실에서 대피했다.

순식간에 불이 가방 쪽으로 붙고 벌건 화염을 뿜어내고 있다.

휘발유가 흘러간 객실 내부로 불이 순식간에 확산되고 있다.

불길이 휘발유가 흐른 바닥 10m 정도로 길게 확산 중이다. 객실 내부가 불기운이 가득해 보인다.

바닥에 화염이 확산된 가운데 객실 내엔 검은 연기가 차고 있다.

검은 연기가 더 많이 차 어두컴컴해진다.

객실 내부가 CCTV로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까맣다.

검은 연기가 객실 가득해 암흑천지로 변하고 불빛만이 보인다. 원 씨가 라이터로 휘발유에 불을 붙인 7초 만에 객실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이상 서울남부지검 공개 동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