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세상] 참전용사 참기름 훔친 소식에 서울서 부산까지 달려와 놓고 간 것은?
천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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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6 20:42 | 최종 수정 2023.06.2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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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는 참전용사가 경제적 어려움에 식료품을 훔쳤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후원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26일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이날까지 모두 25명이 후원 의사를 밝혔다. 이 말고도 후원이 들어온 2건의 기부물품은 참전용사 A 씨에게 전해졌다. 경찰은 후원 의사를 준 이들은 보훈청으로 연결해 줬다.
A 씨는 지난 4월부터 한 달여간 부산 금정구 한 마트에서 7차례에 걸쳐 젓갈, 참기름, 참치통조림 등 8만원 상당의 식료품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오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범행을 벌였다. 미역국을 끓일 때 쓸 참기름이 필요했고, 젓갈 등 반찬이 필요했다고 한다.
경찰에는 “계산할 돈이 부족해서 물건을 훔쳤다. 죄송하다”고 진술했다. A 씨에게 동종 전과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를 즉결심판에 넘길 예정이다. 즉결심판은 20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경미한 사건을 약식재판에 넘기는 것으로 전과가 남지 않는다.
이들 중 지난 23일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편지와 기부금을 전달한 B 씨의 사연이 이목을 끌고 있다.
B 씨는 직접 쓴 손편지를 통해 “오늘 아침 한 기사를 보고 이렇게 급히 부산진경찰서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며 “늘 고생하시는 경찰분들께 폐가 되지는 않을 까 걱정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B씨는 “대단한 금은보화가 아닌, 그저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반찬거리를 훔친 노인분의 소식을 들은 누구든 가슴 한 편에 먹먹함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거기에 그분이 1950년 6월 25일, 한국인이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한국전의 영웅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천수를 누리며 좋은 것만 보시고 드셔야 할 분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구석진 그늘에서 외롭게 살고 계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며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분들의 피와 땀, 젊음 위에 세워진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후손들이 나설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시작으로 그리 대단치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기게 된 참전용사분께 작은 마음을 전해드리고자 한다”며 소정의 금액이 담긴 카드를 전달했다.
경찰은 B 씨의 편지와 카드를 모두 A 씨에게 전달했다.
부산지방보훈청은 A 씨에 대한 지원 방법을 다방면으로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