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해마다 단감을 엄청 주었는데 올해는 아예 기척이 없네요"
단감 주산지인 경남 진주시의 한 농업인은 예년에 그렇게 후하던 '단감 인심'이 올해는 딸 잘라졌다며 단감 흉년 인심을 전했다.
과수 재배 농가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수확으로 한창 바쁘지만 올해는 과수원만 올라가면 한숨만 푹푹 나온다. 농가를 덮친 곰팡이병인 '탄저병' 때문이다. 실제 수확 현장에서는 따서 팔만한 단감이 별로 없다는 한탄조 말이 터져나온다.
25일 경남 지역의 단감 및 사과 재배 농가와 경남도에 따르면, 단감 주산지인 창원·진주·김해(진영)·하동 등과 사과 주산지인 밀양 등지에서는 탄저병 피해가 예상보다 크다. 추석 전후에 까만 탄저병이 하나 둘씩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전체 과수로 퍼졌다.
수확 시기인 요즘은 검정색 반점이 생긴 단감과 사과가 수두룩해 시장에 내놓을 수 없을 정도다. 집에서 먹든지 땅에 묻어 폐기를 해야 할 상황이다.
단감 탄저병 피해가 예년보다 큰 것은 고온다습한 날씨 때문이다.
단감 재배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수십 년간 감 농사를 했지만 탄저병이 이렇게 심하게 든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남도가 이달 중순 집계한 시군별 피해 현황을 보면 감과 사과 과수원 피해 면적은 전체 재배 면적 8798㏊의 3155㏊로 집계됐다. 단감이 2403㏊, 사과는 751㏊였다.
시군별로 창원이 918㏊로 피해가 가장 컸고 진주 640㏊, 김해 234㏊로 뒤를 이었다.
단감 피해는 경남도의 집계 며칠이 지나면서 경남 전체 재배면적의 45%에 해당하는 2600여㏊로 더 늘었다.
경남단감원예농협은 올해 경남의 단감 주산지 8곳에서 예상되는 생산량을 1500여t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절반 수준이다.
진주시 문산읍 단감 재배 농민은 "올해는 지독시리(지독스럽게) 긴 장마와 태풍이 지그작(지그재그)으로 지속돼 10여 차례 방제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예상 수확량은 평년의 50~60% 수준"이라고 전했다. 들어간 영농비의 절반도 건지기 힘든 실정이다.
다만 진주시 진성면과 문산면에서 단감 농사를 짓는 한 농업인은 "같은 지역에서도 피해가 심하지 않은 곳도 있다. 장마 기간에 며칠 만에 한 번씩 부지런히 농약을 친 곳"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선 단감 껍질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김해시 진영 단감 과수원의 단감에서도 상당수 시커먼 반점이 나 있었다. 작은 반점으로 시작해 전체가 썩는 탄저병 피해 현장이다. 진영의 단감 농장 규모는 4만 3천㎡다.
이로 인해 수확 철을 맞아 가장 분주해야 할 단감 선별장도 작업할 물량이 적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창원의 한 단감 선별장의 하루 처리 물량은 평년 3분의 1인 400상자 정도다.
윤용환 경남단감원예농협 상무는 "지난해 같으면 농협의 단감 선별기 두개가 돌아가야 하는데 물량이 없어 선별기를 세워놓고 있다"고 심각한 피해 현실을 전했다.
이 여파로 예정됐던 단감 축제의 규모를 줄이거나 판촉 행사 등으로 대체해 치르기로 한 곳이 많다. 창원의 단감축제는 열지 않기로 했고, 하동 대봉감축제도 수확량이 많지 않아 취소했다.
단감뿐 아니라 사과 과수원의 피해도 크다.
사과의 경우 밀양이 716㏊로 피해 면적이 가장 넓었고 작지만 양산(15㏊), 창원(2㏊)에서도 피해를 입었다. 밀양시는 올해 얼음골사과축제를 열지 않기로 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경남도는 기상이변에 따른 단감과 사과의 탄저병을 농작물 재해보험에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국비 지원도 건의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당 249만 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놓고 세부 지원책을 짜고 있다.
경남의 지자체들은 정부 방침이 정해지면 그 기준에 따라 농가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경남도 친환경농업과는 “이달 말 정부의 피해 농가 지원안이 확정된다. 국비가 지원되면 그에 맞는 지원금을 예비비로 편성해 빠르면 11월 중순까지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