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당국이 공교육 과정에서 벗어난 '초고난도(킬러) 문항'을 배제한다고 밝혔던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6일) 난이도 분석이 나왔다.
학교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거나 불필요한 개념을 넣어 실수를 유발하는 킬러 문항은 출제되지 않았지만 최상위권 변별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과목별로 국어가 지난해보다 다소 어려웠고 수학과 영어는 난이도가 비슷했지만 전체적으로 변별력을 갖췄다는 게 공통 의견이다.
■EBS 현장교사단 "전체적으로 변별력 갖춰"···결시율 10.6%(5만 3093명)
올해 수능은 지난 16일 8시 40분 전국 84개 시험지구 1279개 시험장에서 치러졌다.
이번 수능은 3번 치러진 '문·이과 통합' 시험으로, 모든 수험생이 국어와 수학에서 공통 과목을 함께 본 뒤 선택 과목을 골라 응시했다.
국어 선택 과목은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등 2과목이고 수학 선택 과목은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 3과목이었다.
1교시 국어영역을 기준으로 모두 44만 8228명이 응시했고 결시율은 10.6%(5만 3093명)였다.
이번 수능 출제 기조를 분석한 EBS 현장교사단은 국어와 수학에서 킬러문항을 제외하고도 문항 자체의 변별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했다.
■ 과목별 난이도 분석
▶국어 영역
1교시 국어 영역의 경우 지난해 수능보다 어려웠다고 평가했던 지난 9월 모의평가보다 더 까다로웠다고 봤다. EBS 수능 교재와의 연계율은 50% 정도로 유지했다.
지난해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134점이었고 9월 모의평가는 142점이었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시험 문제가 어려워 평균점수가 낮으면 올라간다.
EBS 현장교사단 소속 윤혜정 서울 덕수고 교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국어 영역 출제 경향 브리핑에서 "지난해 수능과 9월 모의평가보다 수험생들이 다소 어렵게 체감했을 것"이라며 "소위 킬러문항은 확실히 배제됐지만 다양한 난이도의 문항·선지(選支·선택할 수 있는 항목)로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통 과목인 10번과 15번, 27번이 점수를 가르는 문항으로 꼽았다.
일반 학원가의 평가도 대체로 비슷하게 나왔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외형상 킬러문항은 없었지만 변별력 있게 출제됐다. EBS와 연계된 지문들도 정답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고 시간도 9월 모의평가보다 부족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학 영역
2교시 수학 영역의 난이도는 지난해 수능과 올해 9월 모의평가 출제 기조를 따르면서도 주관식 단답형 문제가 다소 까다로워 최상위권 학생들의 체감 난도가 높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수학 '표준점수 최고점'은 지난해 수능 땐 145점, 9월 모의평가에서는 144점이었다. 표준점수 최고점 인원은 지난해 수능 때 934명, 9월 모의평가에서는 2520명으로 늘었다.
EBS 현장교사단은 “관련 정의와 개념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주어진 조건들을 종합 분석하는 문제로, 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심주석 인천하늘고 교사는 “9월 모의평가와 구성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지나친 계산을 요구하거나 불필요한 개념으로 실수를 유발하는 문항 등 킬러문항은 배제됐고, 최상위권부터 중하위권까지 충분히 변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난이도의 문항이 골고루 출제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최상위권엔 난이도가 지난해 수능과 9월 모의평가 사이의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며 "(어려웠던) 지난 6월 모의평가보다 쉽고 9월 모의평가보다는 최상위권 변별력 으로 무게감이 느껴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수능 수학 '표준점수 최고점'은 145점으로 소위 말해 ‘불수학’으로 불렸다.
하지만 표준점수 최고점인 만점자가 지난해 수능에서는 934명이 나왔다.
표준점수 최고점이 145점 이상이면 어렵고, 135점 이하이면 쉬운 수능으로 평가한다.
변별력이 높았던 문항은 수학Ⅰ 15번, 수학Ⅱ 22번, 확률과 통계 30번, 미적분 30분, 기하 30번 문항이 꼽혔다.
특히 주관식 단답형인 22번, 30번은 복잡한 계산을 요하지 않으면서도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해 더 어렵게 출제해 만점자 수를 조절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고 평가했다.
심 교사는 "22번처럼 굉장히 어려운 문제도 학교에서 배운 기본 개념을 잘 익히고 생각을 많이 한 학생들은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밀했다. 학원의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이 오히려 더 풀지 못하는 문제였다는 말이다.
▶영어 영역
절대평가인 영어도 지난해 수능에 비해 다소 어려웠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 수능 1등급 비율은 7.8%, 9월 모의평가에서는 4.4%였다.
김보라 서울 삼각산고 교사는 "대부분 문항이 추상도가 높은 소재를 배제하고 학교 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이었지만 지문을 충실하게 읽고 이해해야 하는 문항을 다수 배치해 전체적인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총평
입시계들은 올해 수능은 수학이 최상위권을 좌우했던 지난해와 달리 국어와 수학 모두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난해엔 수학의 표준점수가 국어보다 11점 높아 더 중요했지만 올해는 두 과목 모두 중요한 변수가 됐다"며 "수능이 변별력 있게 출제되면서 정시에 상대적으로 강한 재수생 강세가 예상되며 수학 뿐 아니라 국어에서도 이과 학생의 강세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임 대표는 “9월 모의평가 수학 만점자가 2520명 나와 수능에선 최상위권 변별력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수학 영역에선 선택과목별 난이도 차이가 있어 문·이과 간에 유불리가 엇갈릴 것이란 전망도 있다.
수학 선택과목 중 이과생들이 주로 보는 미적분과 기하는 9월 모의평가보다 비슷하거나 다소 어렵게 출제됐지만 문과생들이 주로 택하는 확률과 통계는 그보다 쉽게 출제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지난해 수능보다 쉽고 9월 모의평가보다 까다롭게 출제됐다. 수학 22번이 상위권 등급 가르는 문항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27년 만에 최대인 N수생이 변수
이번 수능의 가장 큰 변수로 'N수생(졸업생)'의 비중이 27년만에 가장 높다는 점이다. 수험생 50만 4588명이 원서를 냈고 이 중 재수생 등 졸업생은 15만 9742명(31.7%)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예고해 수능을 다시 보려는 수험생이 늘어났고 의대 선호 현상까지 겹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공정 수능'을 지시한 이후 9월 모의평가에서는 킬러문항이 배제됐었다. 이에 대해 정문성 수능 출제위원장은 "6월·9월 모평에서 수험생 특성을 분석했고 N수생도 최대한 고려했다"고 밝혔다.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오는 20일 오후 6시까지 평가원 홈페이지에서 문제와 답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고, 28일 오후 5시 정답을 확정해 발표한다. 수능 성적은 다음 달 8일 수험생들에게 통지된다.